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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환각이 아니다

명상은 환각이 아니다

 

법인 스님 2013. 08. 17
조회수 326추천수 0
 

 

<삶의 창> 명상은 환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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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제자가 스승에게 여쭈었다. “더위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더울 때는 더위와 한몸이 되고 추울 때는 추위와 한몸이 되는 거지.” 합일과 몰아의 경지로 몸이 덥다는 ‘사실’과 마음이 괴롭다는 ‘느낌’을 분리하라는 큰스님의 차원 높은 피서법이다.

그러나 찜통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 이 피서법은 통하기 어려운 방법인 것 같다. 푸른 산 깊은 계곡에 앉은 산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했는지 모른다. 사바란 참고 견디며 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계절 더위 속에 살아 가야 하는 인도인들은 극락세계를 청량세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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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하는 사람들. 출처: 봉은사 홈페이지

 

올여름도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계곡으로 해외로 피서를 떠난다. 그런데 이 더위에 특별한 피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번뇌를 씻어내기 위해 산사의 참선수련, 천주교의 관상수도, 각종 마음수련에 참여하며 명상에 몰두한다. 종교를 넘어 영성과 힐링의 바람이 어디에나 불고 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땅끝마을 대흥사에서 세속의 벗들과 참선수련을 진행했다. 수련회 참가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뜻과 행위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경쟁과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의 늪에서도 올곧고 맑은 삶을 가꾸려는 그들의 의지는 견고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탕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정결하고 청초한 자태를 뿜어내는 연꽃처럼 그들의 얼굴은 고결했다. 휴가를 맞아 일터를 벗어나 편히 쉬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산사를 선택한 그들의 선택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세속의 수행자는 순수한 집중과 응시를 통하여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과 습관의 허물을 소멸시키는 작업에 전념한다. “번뇌를 벗어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니/ 한바탕 고삐를 잡고 힘쓸지어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지 않고서/ 어찌 코끝을 찌르는 매화향기 맡을 수 있으랴” 추위와 더위는 내가 이겨내야 할 또다른 내 안의 ‘나’라고 할 수 있다. 중국 황벽 선사의 선시와 같이 세속의 수행자는 심장까지 스미는 더위와 더불어 삶의 고통을 부르는 욕망과 집착을 온몸으로 안으며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또한 그들은 온전히 비움, 낮춤, 내려놓음, 살핌으로 내면의 평온과 희열을 맛본다. 채우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내려놓음으로써 길을 찾는다. 진정한 승자는 자신의 악습과 유혹을 이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땀에 흠뻑 젖어 명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차라리 향기롭고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십년 넘게 참선수련회를 같이 하면서 수행의 함정을 발견한다. 수행 혹은 명상하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그 원인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가. 명상은 번거로운 세속 잡사를 벗어나 잠시의 안온과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직하고 당당하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그저 고요함이 주는 평온에 매몰되는 것은 명상수행이 아니라 환각이다.

명상수행의 또다른 위험은 모든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는 일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의 의미를 그릇되게 파악하기 쉽다. 마음은 세상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그런 주관적 결정체가 아니다.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 행위의 모든 것은 바로 세상과 관계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내 마음으로 환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가.

 

비움과 냉철한 통찰이 함께하지 않으면 명상수행은 또다른 환각제가 된다.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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