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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만능'이라는 환상의 종말

[해외 시각] 미국의 "막강함"이라는 신화, 그 운명은?

 

20세기 들어 미국은 언제나 세계사의 중심이었다. 최소한 세계2차대전 이후부터 미국은 아예 다른 '국가'의 추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믿었고, 실제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영원하지 않을지언정 지식인들은 미국의 '쇠락'도, 만약 그 시작점이 있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대체로 믿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들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위기는 어쩌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미중 대결' 구도나, 잠자고 있던 '늙은 불곰' 러시아의 저항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 수 있다. 세계가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것 자체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21세기 들어 '9.11테러'와 중국의 WTO 가입(세계 무역 체계로의 편입) 등 분명한 신호들이 있었다. 미국은 지금 누가 보아도 힘겨워 보인다. 미국 내부 민주주의의 위기도 이런 미국 주도 '단극 체제'의 수명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세계 지식인들의 객관적 분석을 엿보기 위해 <프레시안>은 마닐로 그라지아노 프랑스 시엥스 포(Sciences Po, 파리정치대학) 지정학 교수가 <아시아타임스> 7월 21일 자에 "'미국은 만능'이라는 환상의 종말(United States : end of an illusion of omnipotence)"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글을 소개한다.  

"나는 미국이 2위로 추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2010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첫 연두교서에서 위의 한 마디로 미국의 세계 전략을 드러냈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의 상대적 쇠락은 계속돼 왔고, 이제 경쟁 국가에 추월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 문제는 상대적 쇠락 그 자체가 아니다. 상대적 쇠락은 기업이나 국가들이 불균등하게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존심 때문이든, 또는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이든, 아니면 그저 단순히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든 간에. 

1986년 역사가 폴 케네디는 대작 <강대국의 흥망>을 통해 강대국들의 흥망성쇠는 그들 간의 성장이 불균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강대국들 간의 성장률 격차가 "장기적으로" 그들 간의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완만했던 미국의 상대적 쇠락

몇 번의 짧은 침체기를 제외하고 미국은 성장을 멈춘 적이 없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미국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성장률이 둔화됐다. 즉 상대적 쇠락에 접어든 것이다. 

1960년에서 2020년 사이 미국의 실질 GDP는 5.5배 증가한 반면 세계의 다른 지역은 8.5배로 늘었다. 미국 경제가 절대적으로는 성장했으나 다른 경쟁 국가들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주요 라이벌 중국과 비교하면 성장의 격차는 더욱 어마어마하다. 미국 경제가 5.5배 성장하는 동안 중국은 무려 92배나 성장했다. 

다시 말해 1960년 미국 경제가 중국의 22배였던 반면 2020년이 되면 겨우 1.3배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 전체의 케이크는 커졌지만 미국 몫은 크게 줄어든 것이다. 

경제와 생산성에서의 상대적 쇠락은 정치적 행동에서의 격차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과대 팽창(overstretching)"에 의한 것으로 (로마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역대 제국들의 멸망을 불러온 원인이 된다. 폴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골치 아프고 해결되지 않는 사실에 직면한다. 세계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의무의 합이 이것들을 동시에 지켜낼 수 있는 미국을 국력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현실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1960년에는 3.46조 달러의 GDP로 세계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의무를 동시에 지켜낼 수 있었지만, 1986년에는 8.6조 달러로도 지켜내기 어려워졌고, 20조 달러인 현재에는 더욱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이러한 곤경은 1960년 미국의 GDP가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거의 절반(46.7%)이었던 반면 2020년에는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30.8%) 사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케네디의 선견지명은 때를 잘못 만났다. <강대국의 흥망>이 출판된 지 3년 후 동유럽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4년 후에는 일본의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5년 후 (역사상 최대의 군사동맹으로 이라크를 무찌름으로써 베트남의 악몽을 극복하고 미 군사력의 위용을 과시한) 걸프전쟁이 발발했고, 1991년 말 드디어 러시아제국(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된 것이다. (즉 탈냉전 전후의 상황은 미국의 상대적 쇠락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막강함"이라는 신화 

세계의 2위의 경제대국(일본)이 급격한 침체를 겪고, (냉전 최대의 숙적) 소련이 사라지면서 미국 GDP의 상대적 쇠락은, 비록 미미하고 짧긴 했지만, 반등의 기미를 보였다. 이처럼 미국의 경쟁 국가들이 무너지거나 급격하게 약화되면서 케네디의 책은 조롱당하거나, 아니면 잊혀졌다. 

그리고 도취의 시기가 시작됐다. "단극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 또는 "천하무적"이라는 자기도취 속에 미국은 세계를 자신의 이미지대로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더 이상 그럴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새로운 경쟁자가 그 힘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의 상대적 쇠락은 일본의 부상 때문만이 아니며, 소련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은 (각국의) 불균등 발전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추세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빌리면 일본의 침체와 소련의 붕괴가 "사건(accident)"이었다면 (미국의) 상대적 쇠락은 "본질(substance)"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일부 지도자들은 "사건"의 힘을 빌려 "본질"의 진행을 막으려 했다. 걸프전쟁, 보스니아 등 유고 내전 개입, 나토의 동진 등이 그 사례들이다. (톈안먼 학살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확대한 미국 지도자들의 결정을 거론하지는 말자. 미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은 중국 정부의 민주주의 말살을 응징하거나 시정하기보다는 중국과 경제 교류에 따른 거대한 경제적 이익에 훨씬 더 주목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990년대 나토의 동진이 국제적 논쟁의 중심이 됐다. 러시아와 그 우방국들에게 나토의 동진은 그 이후 일어난 모든 문제들을 야기한 "원죄"에 해당된다. 이들에 따르면 푸틴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적으로 워싱턴 책임이다. 

미국-러시아의 (영원한) 대결 

모든 이데올로기에는 (그 이데올로기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는) 일말의 진실이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이데올로기는 크게 단순화되고 맥락이 제거된 상태에서 대중들에게 프로파갠다로서 전달된다. (나토의 동진과 관련된) 일말의 진실은 나토를 앞세워, 냉전 종식 이후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난 중부 및 동부 유럽을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미국의 일방적 결정에서 정확히 비롯된다. 

그러나 그 맥락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나토의 동진과 유럽연합의 확대를 동시에 바라보아야 한다. 유럽연합의 확대는 언제나 나토의 확대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첫 번째 나토 가입 국가들인 폴란드, 체크, 헝가리의 유럽연합 가입은 5년 후 이뤄졌고, 2004년 나토 가입 국가 중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 그리고 발트 3국은 수개월 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3년 후 유럽연합에 가입한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 중앙 사이의 완충 국가들은 두 차례 세계 대전 이후는 물론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국의 최대 관심 지역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이 국가들은 유럽의 독자적이며 배타적인 통제 하에 두어서는 절대 안 되는 지역이다. 그렇게 되면 이 국가들은 더 이상 완충 지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게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전략적 목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유럽이(보다 정확하게는 독일 또는 독일을 중심으로 뭉친 국가들이) 러시아와 어떤 형태로든 협력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지역(heartland)"을 통제하기 

영국으로부터 패권국가의 지위를 계승한 이래 미국은 (20세기 초 영국 지리학자) 핼포드 매킨더가 작성한 "중심지역" 이론도 함께 물려받았다. 이 이론의 핵심은 동유럽(독일)이 중심지역(러시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다면 세계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은 유라시아 대륙이 통합된다면, 영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해 결국은 패권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영국의 지속적 우려를 반영한다. 바로 이러한 우려 때문에 영국은 역사상 세 차례나 유럽 대륙의 전쟁에 개입한 것이다. 한번은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을 막기 위해, 두 번은 독일을 꺾기 위한 세계 대전으로. 

매킨더의 이론은 2차 대전 기간 동안, 네덜란드 출신의 예일대 정치학자 니컬러스 스파이크만에 의해 부활한다. 이른바 "연안지대(rimland)" 이론으로 중심지역을 둘러싼 연안지역 국가들의 통제가 세계 지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나중에 봉쇄(containment) 정책으로 발전되는데, 러시아 주변에 완충지역(cordon sanitaire)"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봉쇄정책이란 2차 대전 직후 동아시아에 만들어진 완충국가(일본과 남한, 대만, 남베트남 등) 시스템을 유럽 등 세계로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냉전 기간 동안 봉쇄정책의 목표는 소련의 위협을 "봉쇄‘한다는 식으로, 고의적으로 실제와는 다르게 제시됐다. (봉쇄 정책의 창시자인 조지 케난 자신이 인정했듯이 소련은 서방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1947년 그는 이렇게 썼다. "러시아는 앞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 어떤 의미에서는 무능한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봉쇄정책의 실제 목표는 독일과 일본이었다. 두 국가의 친러시아 분파를 무력화시키는 한편, 연안지역의 통제(소련과의 교류를 봉쇄)는 소련의 무력에 맡겨두었던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이 하나로 통합돼 자신의 세계 패권에 도전하고 결국은 빼앗아 갈 것이라는 우려는 영국에서 미국까지 계속 이어졌다. 키신저도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20세기 전반 미국은 잠재적 적국에 의한 유럽 지배를 저지하기 위해 두 차례 전쟁을 벌였다...20세기 후반(실상은 1941년부터) 미국은 아시아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일본과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세 차례 전쟁을 벌였다." 

"문명화의 사명"이라든가 "자유 수호" "민주주의를 위한 병기고", 또는 군국주의, 파시즘, 공산주의와의 투쟁 등 고상한 수사는 이제 잊어버리자. 이데올로기라는 껍질을 벗겨내면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강대국 정치의 현실이 드러난다. 최고의 강자가 규칙을 정하고, 역사를 새롭게 쓰며 모두가 믿을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011년 푸틴은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대유럽을 형성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로서 유라시아동맹을 제창했다(러시아제국을 부활시키기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당시 미 국무장관 힐라리 클린턴은 즉각적이고도 노골적으로 대응했다. 

"유럽을 다시 소비에트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관세동맹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움직임이다. 분명히 말해 둔다. 우리는 유라시아동맹을 방해하고 저지하기 위한 모든 방안을 추구할 것이다." 

(독일 등) 산업국가와 러시아 중심지역의 결합이 불러올 위험에 대한 매킨더와 스파이크만, 케난, 키신저, 브레진스키, 클린턴의 우려가 사실이라면 현재 미국에 대한 최대 위협은 유럽이나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쐐기 박기 

중국과 러시아를 분리시키는 것은 분명 미국 대외전략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는 미국에 두 가지 이득을 안겨 주었다. 

- 나토를 다시 단결시키고, 확대시키고, 군비 강화를 촉진시킨 반면, 유럽과 러시아의 협력 가능성은 사라졌다.

-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미국이 뜻밖의 이득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상대방의 실수로 전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객관적 전략이 있다고 해서(오바마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이 2등이 되는 것을 막는 것") 이것이 곧바로 지배 계층의 의식적 노력에 의해 조직되고, 계획되며, 이행되는 주관적 전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의 세네카가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목적지를 모르는 항해사에게는 순풍이란 없는 법이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이 바로 목적지를 모르는 항해사와 같다. 자신의 상대적 쇠락이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않으며, 극심한 정치적 분열로 인해 (대통령이 바뀌는) 4년마다 전략 목표가 수정되거나 반대로 뒤집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미국의 대다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취해서 20여년 전 조지 W. 부시의 책략가 칼 로브의 호언장담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 "우리가 행동을 하면 미국이 원하는 현실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전문가들이 이 현실을 연구하고 해독하느라 애쓰는 동안 "미국은 다시 행동을 해서 또 한 번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꿈같은 자신감을 말이다. 

이데올로기에 취한 푸틴의 보좌관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어리석은 실책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정치무대에서 활동하는 수 천명의 "칼 로브들"은 미국을 막다른 골목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들의 선의와, 완강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지정학적 제약에 대한 무지가 인류를 지옥으로 가는 길로 인도하고 있다.

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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