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정준칙안을 발표하면서, 재정준칙 법제화를 본격 추진한다. 공개된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한 기준보다 더 단순해지고 강경해졌다.
전문가들은 재정준칙이 재정의 유동성을 낮추게 되고, 경제적 위기 상황 등 재정을 상황에 맞게 운영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재정준칙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해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것이 큰 틀이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재정수지 등 재정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방만한 재정활동을 경계하고 재정건전성을 추구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관리기준을 충족하도록하는 구조상, 정부의 재정활동이 경직되는 효과도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고금리 등 대외 위기는 물론 내부적으로 고령화, 탄소중립 산업 전환 등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재정의 경직은 역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인 정세은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고령화, 산업 전환 상황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그래서 국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재정이 실업안전망 등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거꾸로 재정관리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하겠다는 건 주객전도"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을 고려하면 취약계층에 대한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극빈층이 가장 힘든 상황이 되는데 여기에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곤란하다"면서 "실업 수당, 생계 수당 등에 물가 상승 고려하는 등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재정준칙에 비해 단순하고 더욱 강경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2020년 발표한 재정준칙 관리기준은 '(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1.0'이다. 풀이하면 국가채무비율을 GDP 60% 이내, 재정수지 비율은 -3% 이내로 관리하되, 두 지표와의 관계를 고려해 융통성을 두고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관리재정수지 적자 GDP 비율 -3%로 단순화했다. 관리기준의 지표 또한 통합재정수지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로 뒀다. 통합재정수지는 재정 총수입에 총지출을 뺀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이들 사회보장성기금이 흑자를 내는 상황인 것을 고려하면 통합재정수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다.
여기에 정부는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가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대비 2%까지 상향하도록 했다.
단순하게 보면 빚(국채)이 늘어났으니 나라살림을 긴축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채가 늘어나는 상황은 경제 위기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더욱 긴축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채를 줄이기 위한 긴축재정은 오히려 국채를 늘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나원준 교수는 "재정 지출을 긴축하면 GDP 성장 속도도 느려진다. 그러면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자동으로 사회지출이 늘어나게 되고 채무는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상황이 2010년 유럽 여러나라에서 입증됐고, 당시 EU(유럽연합) 대부분의 나라가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이 감세 기조와 함께 진행된다는 것이 큰 문제다. 재정 수입도 줄이면서 재정준칙까지 도입하면 지출 경직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세은 교수는 결국 재정준칙의 효과가 복지지출 감소로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지출 축소의 부담이 복지 분야로 전가돼서 결국에는 성장과 분배 양쪽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이상 복지재정 확대는 요원해질 것이란 것"이라며 "산업 구조전환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낙오되는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인 것을 고려하면 긴축재정의 부담은 취약계층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수지에 기반한 재정준칙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데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표만 맞추는 재정준칙은 재정건전화보다는 예산기술자들이 숫자를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라면서 "재정건정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재정준칙대로면 GDP대비 적자수지 3%만 맞추면 재정이 건전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과 지출 숫자만 관리하면 되는 지표로는 얼마든지 재정 관료의 회계 기술로 맞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올해 2차 추경을 보면 융자사업 이차보전전환, 지출시기조절 등으로 지출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항목들이 있다.
이에 재정준칙을 발생주의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발생주의는 현금의 수입·지출과 상관없이 비용이 발생되었을 때 인식되는 개념이다. 현금의 수입·지출의 수지를 따져 관리하는 정부의 재정준칙은 현금주의 개념이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의 준칙을 보면 발생주의적 개념이다. 이번 재정준칙안 같은 현금주의적 개념은 숫자만 조작하기 쉽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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