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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겨누는 감사원, 이번엔 소득주도성장 정조준

등록 :2022-10-24 07:00수정 :2022-10-24 08:29

‘국가통계시스템 운영’ 감사한다며
‘소득주도성장’ 등 파일 샅샅이 뒤져

상관없는 홍민기 연구원도 감사대상
“감사방해죄 처벌” 자료제출 요구도
그래픽 장광석
그래픽 장광석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방위적인 감사를 벌이고 있는 감사원이 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이던 ‘소득주도성장’까지 정조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통계청 감사를 구실로, 통계청이 발주하지 않았던 국책연구기관의 과거 소득주도성장 관련 연구 결과까지 포렌식한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23일 <한겨레21>이 국책연구기관 관계자 등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최근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때 통계청장이던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컴퓨터를 포렌식(디지털 저장장치에 남은 자료를 추출)했다. 대표적인 불평등 연구자인 두 사람은 2018년 5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분배지표가 전년보다 나빠졌다는 발표가 나온 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졌을 당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득주도성장 추진에 힘을 보태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해 8월 강신욱 선임연구위원은 통계청장에 임명됐다.

 

감사원의 이런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다음 순서로 경제정책에 관여한 인사들까지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감사원은 그동안 잘못된 정책을 통계 조작으로 가려왔다고 판단하면서 ‘국가통계시스템 운영 및 관리’를 감사하겠다고 밝혔고, 최근 통계청 직원들의 컴퓨터도 포렌식했다.

 

이어 감사원 쪽은 9월27일과 10월5일 각각 강 선임연구위원과 홍 선임연구위원의 연구실을 예고 없이 찾아가 컴퓨터 포렌식을 요구했다. 감사관은 ‘가계동향조사 등에 관한 사항’이라는 감사 공문을 제시하면서 ‘소득주도성장’ ‘소득분배’ ‘청와대’ ‘기재부’ 등의 단어가 들어간 파일을 샅샅이 뒤졌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전해 들은 관계자들에 따르면, 감사관들은 강 선임연구위원이 제출에 동의하지 않은 연구 노트 파일 등까지 모두 가져갔다. 특히 홍 선임연구위원은 통계청에서 일한 적이 없어 ‘국가통계시스템 감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감사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관들은 2018년 연구 결과의 분석 방법 등 학술적인 내용도 자세히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정치집단이 추진하는 정책 사안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판단을 받는 것이지, 평가할 능력이 없는 감사원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공무원들이 ‘연구 결과를 조작하라’고 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정책에 따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연구 결과를 (감사 대상으로 삼고) 마구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는 “분석하고 제출한 내용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 앞으로 어떤 연구자가 나서겠느냐. 지난 정부의 잘못을 들춰내겠다는 욕심 때문에 연구기관과 공무원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키고 정책 연구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감사원 쪽은 ‘감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는 감사원법 제51조와 최근 기준을 대폭 완화한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이하 디지털 규정)을 적극 활용했다. 앞서 감사원은 유병호 사무총장이 취임한 뒤 ‘직무 수행과 관련한 디지털 자료만 선별해 추출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등 디지털 규정을 대폭 축소했다.
 
한 전직 감사원 감사위원은 “과거에는 감사원법 제50조(민간인에게도 자료 제출 요구), 제51조 조항을 문제 삼는 것을 굉장히 자제했는데 지금은 감사방해죄로 처벌하겠다고 사실상 협조를 강요하는 등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완 <한겨레21> 기자 wani@hani.co.kr
 
한겨레21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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