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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깜깜한 공간서 흩어진 비닐 깔고 커피믹스로 버텼다

등록 :2022-11-05 10:30수정 :2022-11-05 11:17

 
 
봉화 광부 2명 고립에서 기적의 생환까지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서 4일 밤 생환한 고립된 광부 2명이 얼싸안고 있다.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서 4일 밤 생환한 고립된 광부 2명이 얼싸안고 있다.

광부들의 극적 생환 7시간 전인 4일 언론 브리핑이 진행 중이던 오후 4시까지만 해도 구조 예상 시점은 물론 생사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구조를 위한 갱도 개척 작업은 예상 대피 지점 30여m를 앞두고 거대한 암석에 가로막혀 있는 듯했고 개척한 통로에도 쏟아지는 바위와 돌을 치워 내야 하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생사 확인을 위해 이뤄진 시추 작업(지상에서 땅을 수직으로 뚫어 관을 넣는 일)도 목표 지점에 닿았으나, 작업의 목적인 생사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생환 직전 하루를 재구성했다.

 

“아버지,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밖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견뎌주세요.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 매몰된 주 작업자 박아무개(62)씨의 아들 근형(42)씨가 쓴 손편지가 시추로 뚫어 넣은 파이프를 통해 내려간 건 4일 오전이었다. 손편지와 함께 구조 당국이 식음료와 간이용 보온덮게, 진통제 등이 든 생존 키트도 함께 내려보냈다.

 

근형씨는 취재진에게 “이곳(대피 예상 지점)이 아버지가 평소 잘 아는 길입니다. 베테랑이신 아버지는 안전한 곳에 있으실 겁니다”라고 희망을 담아 말했지만 현실은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루 전인 3일 저녁까지 시추공이 3개나 예상 지점에 닿았고 내부를 살필 수 있는 내시경 카메라와 움직임 등을 감지하는 음향탐지기까지 넣었으나 광부들의 모습은 물론 생존 신호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립된 주작업자 박씨와 보조 작업자인 또다른 박씨(56)는 지난달 26일 갱도가 붕괴로 고립된 이후 며칠이 흘렀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칠흑 같은 어둠에 자연스레 시간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갱도 안 온도가 14도 안팎의 유지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극심한 추위는 없었지만 고립이 길어지면서 체온 관리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구조자가 언제 올지는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붕괴 직후 작업 위치에서 신속히 이동해 100㎡ 가량 되는 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자재 등을 쌓아놓는 곳이다. 이 광산에서 수년째 근무한 베테랑 박씨는 붕괴되는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노련하게 대피 공간을 떠올린 것이다. 그곳은 지하수로 바닥이 젖어 있었다. 처음엔 쌓아놓은 패널을 바닥에 깔고 버티다가 이내 흩어진 비닐로 간이 텐트를 만들어 몸을 보호했다. 나무를 긁어모아 불도 지폈다. 마침 휴대하고 있던 커피믹스는 혈당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다른 먹을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고립된 두 광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버텨 나갔다. 불안함이 순간순간 엄습해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4일 오후 4시까지 갱도 개척 작업은 예상 대피 지점 30m를 앞두고 있었다. 코 닿을 곳에 고립 광부들이 있을 법했지만 잔여 30m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개척해 낼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특히나 부순 암석을 밖으로 실어나가는 광차가 지나는 선로에 수시로 바위와 돌들이 떨어지고 있어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부수고 치우고 옮기는 일은 광산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비관과 우려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날 저녁부터 희망의 전조가 보였다. 단단한 암석이라고 여겼던 장애물은 토사와 섞여 있어 헐거웠다. 삽과 곡괭이 등 도구를 쥔 구조 작업자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란 말을 되뇌며 내리치고 찍어냈다. 여러 번 내리쳐도 꼼짝하지 않던 기존 암석과 달리 눈앞의 바위는 쉽게 허물어지면서 한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경북 봉화의 한 광산에서 열흘 가까이 고립된 광부 2명이 4일 야심한 시각 극적 생환 했다. 소방청 제공
경북 봉화의 한 광산에서 열흘 가까이 고립된 광부 2명이 4일 야심한 시각 극적 생환 했다. 소방청 제공

“OO형!”

 

작업자 1명이 작업 동료에게 소리를 친 건 밤 10시30분이 훌쩍 지났을 때였다. 토사가 흩어진 곳에 고립된 두 광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조 작업자를 만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고립자와 구조자들이 만난 순간이었다. 감격하기엔 일분일초가 중요했다. 구조자는 말을 아끼고 그들을 부축했다. '아 이거 정말 대단한 상황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으나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두 명의 광부는 오랜 시간 고립 생활에도 명료한 의식은 물론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기까지 300여m를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광부들의 가족들은 물론 거듭된 구조 실패와 더딘 작업 속도로 애가 타던 구조 지휘부는 ‘생환 소식’에 그들이 밖으로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 9일간의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밖으로 나온 광부들은 대기 중이었던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가 밤 11시 3분께다. 구급차는 한 시간여를 달려 안동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에 <한겨레>의 전화를 받은 보조 작업자 박씨의 조카 임유리(32)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남겼다.“안동 병원으로 이동 중이에요. 열흘 동안 마음고생이 엄청 심했는데…. 구조 당국과 고생하신 모든 분께 너무 감사합니다.”

 

봉하/이정하 김규현 기자, 김영동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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