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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무단횡단 한덕수, 그가 기득권을 대변한다는 증거

 
한덕수 국무총리의 무단횡단이 연일 화제다. 19일 이태원 시민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의 반발에 돌아가는 과정에서 한 총리는 반대편 도로에 세워 둔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빨간불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넜다. 누가 봐도 무단횡단!

한 시민이 이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고, 국무총리실은 21일 “한 총리는 현장에서 근무 중이던 용산경찰서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는 해명을 내놨다. 절대로 무단횡단이 아니라는 반론!

그런데 웃긴 건, 이왕 아니라고 주장했으면 좀 우기기라도 할 것이지 해명을 내놓은 지 이틀 뒤인 23일 한 총리가 경찰에 범칙금을 납부했다는 사실. 이번에는 또 다시 무단횡단임을 인정!

뭔 나라가 이틀에 한 번씩 무단횡단의 기준이 바뀌냐? 게다가 어떤 국무총리가 무단횡단 기준이 뭔지 몸소 보여주기 위해 국가적 논란을 만들기까지 하냐고? 나라가 대충 엉망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주 구체적으로 개판이다.

선민의식은 불법을 낳는다

한 총리의 이런 행동은 “당연히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선민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선민의식은 기득권층의 전유물이다. 문제는 이런 선민의식을 가진 자들이 법질서 알기를 훨씬 우습게 여긴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버클리 대학교 사회심리학과 폴 피프(Paul Piff) 교수는 부자와 빈자들 중 누가 더 법을 잘 지키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관찰 실험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미국의 부유층들이 대거 모여 사는 로스앤젤레스 해안가 횡단보도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차량이 횡단보도를 만나면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 피프 교수의 관찰 결과 값 싼 소형 차량일수록 이 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고급 차량일수록 규칙을 무시했다. 심지어 보행자가 있는데도 최고급 차량은 멈추지 않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부자들이 법을 훨씬 더 잘 안 지킨다는 뜻이다.

한 총리의 행태가 바로 이런 것이다. 본인이 기득권층에 속해있다는 확신에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역할까지 얻다보니 행동이 자연히 그들을 따라간다. 횡단보도? 그걸 왜 신호등을 기다리나? 나는 기득권인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대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12.18. ⓒ뉴시스

한 발짝 더 나아가보자. 왜 한 총리는 이틀 뒤에 범칙금을 낼 정도로 뻔한 사실을 “무단횡단이 아니다”라며 거짓말을 했을까? 이것은 진실성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피프 교수는 다른 실험을 살펴보면 부자일수록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195명의 참가자들에게 인터넷 컴퓨터로 주사위를 다섯 번 던지는 놀이를 하도록 시켰다. 다섯 번의 합계 결과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사람에게 50달러짜리 상품권을 주는 게임이었다.

문제는 이 게임에서 누가 주사위를 던져도 다섯 번 숫자의 총합은 12가 나오도록 미리 설계를 해 뒀다는 데 있다. 참가자들은 자기의 숫자 총합을 직접 적어내도록 했는데, 이 말은 12보다 높은 숫자를 적어낸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험 결과 연소득이 25만 달러(약 3억 2,000만 원)가 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비율이 가난한 민중들의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까짓 50달러, 우리 돈으로 6만 원 정도 하는데, 이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다. 연봉이 3억 원이 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부자들은 이런 사소한 문제에서까지 거짓말을 태연히 하며 자기 이익을 챙긴다. 이에 관해 피프 교수는 “부와 풍족함이 그들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지게 했다”고 설명한다. 한 총리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태연히 거짓을 말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이유다.

3루에서 태어난 자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나와 널리 알려진 명언이 하나 있다. 원래 미식축구 감독인 배리 스위처(Barry Switzer)의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인생에서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Some people are born on third base and go through life thinking they hit a triple.)

기득권과 선민의식에 쩔어 사는 자들을 보면 진짜 이런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와 관련한 피프 교수의 실험을 하나만 더 살펴보자. 이른바 ‘모노폴리 실험’이라는 것이다.

피프 교수는 세계적 천재들만 다닌다는 버클리 대학교 학생들을 불러 두 명씩 짝을 지은 뒤 모노폴리 게임(부루마블과 비슷한 게임)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이 게임의 규칙이 매우 독특했다.

A와 B 두 사람이 게임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게임 규칙이 절대적으로 A에게 유리하게 설정된 것이다. 예를 들면 A의 밑천은 2,000달러로 B의 밑천 1,000달러보다 갑절이나 많았다.

A는 두 개의 주사위를 던졌고, 같은 숫자가 나오면 한 번 더 던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B에게는 고작 한 개의 주사위만 주어졌다. 출발선을 통과할 때마다 받는 월급도 A가 B의 두 배였다. 심지어 A가 사용하는 말은 휘황찬란한 롤스로이스 모양이었지만, B의 말은 낡은 신발 모양이었다. 이런 게임은 해 볼 필요도 없다. 승리는 무조건 A의 차지다.

이 게임에서 A는 압도적인 ‘3루에서 태어난 자’였다. 애초에 가진 재산도 많았고, 자원을 살 기회도 많았다. 그렇다면 A와 B는 어떤 방법으로 ‘3루에서 태어난 자’와 ‘평범한 민중’으로 나뉘었을까? 그냥 동전 던지기로 결정했다. 100% 운에 의해 A는 금수저가 됐고 B는 흙수저가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매우 흥미롭다. 피프 교수가 15분 동안 몰래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운에 의해 금수저가 된 A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매우 오만해졌다. 게임 판에서 말을 옮길 때 과시하듯 일부로 쿵쾅쿵쾅 소리를 내고 다녔다. 그리고 이들은 “너 이제 큰일 났다. 얼마 갖고 있어? 24달러? 그거 조금 있으면 다 나한테 잃을 거야”라며 상대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잔고가 늘어날수록 가난한 자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게임을 마치고 피프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놀랍게도 금수저 A들은 대부분 “제 전략이 매우 훌륭해서 이겼죠”라며 자신의 뛰어남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들의 승인(勝因)이 단지 동전던지기라는 운에 의해 결정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피프 교수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금수저들은 자신의 성공을 운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스위처 감독의 명언을 피프 교수가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나는 이런 자들이 잘난 척 하며 설치는 세상이 너무나 꼴 보기가 싫다. 그보다 훨씬 성실하고 협동적인 민중들이 기죽어 사는 세상도 싫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 국무총리라는 인간이 ‘3루에서 태어난 자’와 똑같이 법을 어기고 똑같이 거짓말을 한다. 이런 세상이 더더욱 엿 같다. 그렇게 기득권 연 하면서 살 거면 국무총리라는 직함 떼고 ‘기득권총리’라는 이름으로 불러라. 안 그래도 요즘 오만 국가 정책이 전부 부자들 세금 깎아주는 것이던데 그렇게 불리는 게 훨씬 더 솔직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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