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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난쏘공’ 작가 조세희 선생님 떠나시는 길목에서

‘칼’의 시간에 작은 ‘펜’으로 작은 노트에

 

고(故) 조세희 소설가 ⓒ뉴시스
‘이 영토(塋土)는 죽어 떠나온 영혼들이 살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꿈꾸어 온 세상, 억울하게 죽는 이 없고, 노동하며 죽지 않고, 가난과 차별에 고통받지 않고, 무분별한 개발과 전쟁으로 자연과 인간을 파괴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뉴스도, 자주 가던 SNS도 보지 않고, 영혼들의 긴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떠난 이들과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영혼의 말을 받아쓰고 나서 산 사람의 말을 쓰려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동료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도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소설가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늘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라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그 시간, 나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인 내게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 그는 알고 있을 테니까.

우리 문학에 ‘난장이 연작’과 같은
작품이 있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었다면
이제 작가 조세희의 침묵에서
‘진짜’ 소설가의 자세를 갖게 되길 바랐다고
선생님 떠나고 나서야 고백한다


‘조세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그가 말했다. 2022년 12월 25일, 7시 무렵이었다고 했다. 3시간이 지나 친구의 연락을 받고서야 나는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에게 메시지를 썼다. 심장이 아프다고. 마음 말고 진짜 심장이 아팠다. 그가 전해준 부고가 마음 까지 닿을 틈도 없이, ‘슬픔’이라는 언어를 떠올릴 새도 없이, 몸부터 아팠다. 아픈 곳에 손을 얹고 몸을 떨면서 우두커니 앉아 있던 20여 분이 세상에서 사라진 시간인 듯 현실감이 없었다. “나도 아파. 우리 선생님이잖아.” 그가 말했다. “그래, 우리 선생님······” 나도 그에게 말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뉴시스

한 번도 그분을 만난 적이 없었다. 멀리서 본 적도 없었다. 펜을 꺾어버린 손에 카메라를 들고 서 계셨을 노동자의 거리와 농민의 거리와 작은 사람들의 거리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르는데, 바람결에도 그분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만나고 보고 들어왔다. 그분의 소설, 더는 소설을 쓰지 않는 작가 조세희가 그분의 모습이고 그분의 소식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의 긴 침묵과 그보다 더 긴 절필을 나는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난장이 연작’과 같은 소설이 있었기에 나도 소설가가 되었다고 허름한 내 소설집 ‘작가의 말’에 쓴 적이 있지만, 그분의 침묵과 절필에서 문학에 대한 어떤 태도를 얻게 되었는지는 쓰지 못했다. 조세희 선생에게서 배운 바가 있었다면 이토록 함부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문학에 ‘난장이 연작’과 같은 작품이 있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었다면, 이제 작가 조세희의 침묵에서 ‘진짜’ 소설가의 자세를 갖게 되길 바랐다고, 선생님 떠나고 나서야 고백한다.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없어 일찍이 작가가 되기를 포기했으나 무시무시한 ‘유신 헌법’ 아래 칼의 시간에 작은 펜을 들고 그토록 담대한 이야기를 써나갔던, 어떤 시간에는 글쓰기에 대한 무서운 욕망을 견뎌내며 자신이 쓴 글을 지켜냈던 소설가 조세희는 ‘우리 선생님’이었다.

조세희와 그의 문학이 있어
우리 시대가 ‘연대라도 한 것처럼
잘 단결해’ 부끄러움에 아주 무감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은
오롯이 당신이라는 문학 때문이었다


‘어떤 종류의 억압·공포·불공평·폭력도 없고, 전제자도 큰 기업도 공장도 경영자도 없는, 독자적인 마을을 열망한 작은 힘들이 세운 세계.’

작가 조세희가 꿈꾼 국제 난장이 마을 ‘릴리푸트읍’으로 향하는 길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저희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지난 2009년 서울 용산 참사현장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소설 ‘칼날’의 이토록 처연한 ‘작은 존재들’과의 일치와 연대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유난히 눈이 탐스럽게 내리는 겨울, 어느 성자가 온 날에 그분의 육체는 생명을 다했으나, 조세희와 그의 문학이 있어 우리 시대가 ‘연대라도 한 것처럼 잘 단결해’ 부끄러움에 아주 무감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은 오롯이 당신이라는 문학 때문이었다.

서둘러 마음을 꺼내놓고 보니 이제야 슬픔이 느껴진다. 영혼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인지, 2년 전 초여름에 먼저 떠나신 작가 조해일 선생님의 영혼이 벗을 마중 오셨을 것만 같다. 나도 그 길목으로 가봐야겠다. 어떤 종류의 억압과 공포와 불공평도 없는,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로 ‘우리 선생님들’ 가시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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