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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에 정보기관 공직자 대거 포함... 그 위험한 메시지

[주장] 정파적 이익 위해 사면권 남용한 윤 대통령, 결국 법치주의 파괴

22.12.29 04:52l최종 업데이트 22.12.29 04:52l
큰사진보기2019년 5월 15일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  2019년 5월 15일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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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vil is in the detail(악마는 세부적인 것에 있다)'.

이 말은 독일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남긴 'God is in the detail', 즉 '세부사항이 더 중요하다'는 뜻의 격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거꾸로 보면, 진짜 문제들은 오히려 세부적인 것에 숨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결국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명박을 비롯해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최경환… 국기문란과 국정 농단을 서슴지 않았기에 재판 받았던 인사들이 대거 사면 복권됐다.

참여연대가 27일 즉각 낸 성명(링크)에서 이번 사면의 성격을 규정했듯, 이는 "국민이 대통령에 위임한 사면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악용한 것으로, 민주질서를 훼손한 범죄자를 사면함으로서 법치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그러나 "범국민적 통합", "국력" 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직접 발표한 법무부 측 보도자료(링크)를 찬찬히 톺아 보면, 이번 특별사면이 그저 "폭넓은 국민통합"만을 의도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번 사면의 진짜 문제는 디테일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사면 주요 대상 공직자 명단에는 4명의 국정원장들을 비롯해 전 국정원과 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사이버작전사령부 등 정보나 안보 관련 기관의 인사들이 대다수 포함됐다.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인 국정원 감찰실장을 맡아 국정원 댓글 공작 수사를 방해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국정원 법률보좌관실 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같은 범행을 저질러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던 이제영 전 대전고검 검사까지 포함하면, 법무부가 발표한 사면대상 주요 공직자 66명 중 정보·안보 관련 인사는 17명에 이른다.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효 등 전직 국정원장들을 비롯해 지난 10월 유죄가 확정된 김태효 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지난 12월 13일에 형이 확정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까지 특별사면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 2023년 신년 특별사면 대상 주요 공직자 중 국정원ㆍ기무사령부 등 정보 및 안보 관련기관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효 등 전직 국정원장들을 비롯해 지난 10월 유죄가 확정된 김태효 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지난 12월 13일에 형이 확정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까지 특별사면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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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사실 가장 잘 알 사람들... 과거 수사 사건에 대한 자기 부정 

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에게 사면안을 보고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명박을 비롯한 사면대상 주요 공직자들의 범죄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검찰 재직 때 직접 수사했거나 수사를 지휘하며 기소에 관여했던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특별사면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이들을 수사해 기소한 검사로서 스스로 다룬 사건 자체를 부정하며 되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정원 댓글 공작 수사를 방해했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과 이제영 전 대전고검 검사까지 사면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검찰 출신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제 식구 봐주기' 수준을 넘어서는 만행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성격의 사면에 단골로 따라붙는 명분인 '국민 대통합'만 내세우려 했다면 이명박 등 몇몇 상징적 인사만 대상으로 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이렇듯 전직 정보기관 공직자들을 대거 사면대상에 포함시킨 배경이 무엇인지 더욱 의문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국무회의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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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핵심축에는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대선 여론조작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징역 14년 2개월형을 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챙겨 징역 5년형이 확정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박근혜에게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전 국정원장 남재준(징역 5년), 이병기(징역 3년), 이병호(징역 3년6개월), 국정원을 통해 공직자들을 불법 사찰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징역 1년) 모두 혐의 자체가 국정원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3월부터 2013년 초까지 기무사령부 안에 공작조직인 '스파르타'를 운영하면서 온라인에 정치 관련 글 2만여 건을 게시토록 지시한 혐의로 지난 12월 13일에야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그런데 형이 확정된 지 2주 만에 사면 복권됐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2012년 이명박 정부 대외전략기획관에서 물러나면서 군사기밀을 담고 있는 국정원과 기무사령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0월에 벌금 300만 원형이 확정됐는데, 불과 두 달 만에 사면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국정농단 범죄세력의 복원... 사라진 법치주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신년 특사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신년 특사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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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방첩사령부, 사이버사령부의 전직 공직자들에 대한 대거 사면은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쥐어주는 것으로만 볼 수 없다. '조직적 범죄세력의 복원'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는 정보기관에 재직 중인 공직자들을 향해 '국가가 아닌 특정 정권에 충성하면 끝까지 책임져 준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는 것으로도 읽힌다.

사면 복권된 인사들이 정보기관들로 복귀하거나 안팎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윤석열 정권의 정보 및 안보라인으로 가동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일례로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사찰을 지시한 행위로 지난 2021년 10월에 유죄가 확정됐던 김병철 전 기무사령부 3처장은 올해 6월에 방첩사령부의 전신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안에 만들어진 '부대 혁신 TF'에 몰래 자문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보기관 개혁은 이미 퇴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외교 안보 요직을 두루 거친 김규현 전 외교안보수석을 국정원장에 앉혔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무사령부에서 간판을 바꿔 단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바꾸었다. 동시에 국정원 등 정보기관들은 관련 법령, 보안업무규정과 방첩업무규정 등을 속속 개정하면서 직무 범위를 넓히고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면권을 남용해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민주적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이 대통령에 위임한 사면권은 '국민통합'과 '경제 활성화'는커녕 내 편인 인사들과 재벌들의 면죄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과 신년을 맞아 단행한 두 차례 특별사면을 통해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제왕적 권력 행사의 상징이 된 대통령 사면권, 이제는 반드시 제한해야 한다. 사면권 남용 방지를 위한 사면법의 개정 노력이 절실하다. 국회가 응답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동엽씨는 참여연대 권력감시국 선임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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