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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유가족 실신시킨 폭언, 어디서 시작됐나

그날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서 있었던 일

 

참사 유가족에게 폭언하는 영상 ⓒ유튜브 채널 '캉캉콩콩' 영상화면 갈무리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이태원에 진짜 주민 등장”이라고 시작하는 제목의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지난 19일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서 벌어진 일을 찍은 영상으로, 폭언의 수위를 최대한 낮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당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은 참사 유가족을 향해 “니네 집 앞에 가서 XX팔이 해서 살어”라고 소리치며 입에 담기 힘든 온갖 폭언을 퍼부었다. 이를 듣고 있던 유가족은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는데, 이 여성은 더 심한 폭언을 쏟아내며 “요것들이 세월호에 재미 봐 가지고 ... 대통령이 인간답게 대해주니까 이것들이 상투 끝까지 올라서려고 XX이야”라고 소리친다. 영상에는 유가족을 조롱하는 설명도 붙었다.

실제, 이날 녹사평 시민분향소에 있던 유가족 두 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도저히 기사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듣다, 쓰러진 것이다.

해당 영상은 보수단체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온라인커뮤니티,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유통되더니, 28일 기준 226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상의 내용에 동조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해당 영상이 게시된 날을 기점으로 이 채널은 구독자 4만 명을 돌파하며 일주일 사이 구독자 5천 명을 모았다. 유튜브 채널 데이터를 분석하는 녹스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조회수가 전날에 비해 97만 건 증가한 지난 21일 이 채널의 하루 수익은 52만 원~419만 원에 이르렀다. 이후로도 이 채널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 관한 조롱 영상과 혐오를 유발하는 영상을 연이어 올리면서 높은 조회수를 이어갔다.

혐오를 유발하는 영상으로 채널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참사 생존자가 폭언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는 등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이 같은 비인간적 행태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유튜브 채널 데이터를 분석하는 녹스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조회수가 전날에 비해 97만 건 증가한 지난 12월 21일 이 채널의 하루 수익은 52만 원~419만 원으로 추정된다. ⓒ녹스인플루언서

세월호 참사 때 이미 겪었음에도
대통령실·정치권, 반복적으로 배·보상 언급
의도적으로 기름 부었나?


유가족에 대한 폭언과 조롱은 지난 19일 하루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 49재 무렵부터 녹사평 시민분향소에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시민들에 따르면, 시민분향소에서는 종종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는 모 단체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크게 틀어놓고 추모를 방해했다.

지난 26일 기자가 분향소를 찾았을 때는, 분향소 사방이 추모를 방해하는 현수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유가족이 참사를 잊지 말아 달라며 내 건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현수막 위아래로 이태원 참사와는 별개의 현수막이 걸렸다. ‘신자유연대’ 단체 등이 내 건 현수막이었다. 이 단체들이 내건 현수막은 노란색 배경에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혐오를 유발하는 사진과 붉은색 글귀로 눈길을 끌었다. 이태원 참사 추모에 관한 현수막은 흑백인 데다, 노란색을 당 상징으로 여기는 정의당조차 추모 현수막을 흑백으로 걸어두었기에, 혐오를 유발하는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겉에서 보면, 추모 분향소인지 아니면 혐오 유발 단체 농성장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또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이 걸려 있는 분향소 바로 앞에는, “이제 그만 합시다. 우리 좀 살려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유가족 텐트와 분향소를 실시간으로 찍는 유튜버들이 진을 치고 앉아 유가족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도무지 온전히 추모를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지난 12월 26일 녹사평역에 위치한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전경이다. 2022.12.26. ⓒ민중의소리

 

2022년 12월 26일 일일 집회·행사 신고 기록 ⓒ경찰 집시표


혐오 유발 현수막을 내 건 단체는 분향소가 차려질 때부터 이곳을 집회시위 장소로 삼았다. 경찰의 일일 집회·행사 신고 기록을 보면, 신자유단체는 이달 15일 무렵부터 매일 이곳 분향소 앞에서 집회·시위를 하겠다고 신고했다. 시민분향소가 일상적인 혐오와 괴롭힘에 노출된 상태로 운영되어온 셈이다.

유가족을 향한 폭언과 괴롭힘은 유가족들이 언론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유가족이 지난 11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일베저장소 등 커뮤니티에서도 유가족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마약 등의 가짜뉴스로 참사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글이 주를 이루다, 유가족이 참사 대응 및 예측에 실패한 점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이 같은 비난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정치권, 언론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유가족들이 국가에 배·보상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적도 없는데, 유족이 처음 기자회견을 개최한 날 연합뉴스는 대통령실이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과실이 명확하게 드러날 경우 국가배상도 신속하게 논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유가족이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취지의 폭언과 조롱이 빗발치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커뮤니티 등에는 “XX팔이한다” 따위의 모욕적인 글이 올라왔다.

사실 국가배상에 대한 언급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뻔히 예상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4.16연대 관계자는 지난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와 똑같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언론과 대통령실은 배·보상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지난 11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을 앞두고 수석비서관 간담회에서 배·보상을 언급한 뒤, 대통령실은 11월 13일과 11월 22일에 이어 12월 12일에도 배·보상 얘기를 꺼냈다. 대통령실이 배·보상을 반복해서 언급하도록 일부 기자들도 질문했다.

그러자, 정부·여당 측 인사도 폭언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김미나 창원시의회 의원은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등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으로 임명됐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혐오 발언으로 물러난 바 있는 김성회 씨도 페이스북을 통해 “다 큰 자식들이 놀러가는 것을 부모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느냐? 언제부터 자유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버이 수령님이 되었나?”라고 유가족을 조롱했다. 혐오 발언이 논란이 된 후 김미나 창원시의원은 시의회 회의에서 머리 숙여 사죄하는 듯했으나,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라고 말했다. 김성회 씨는 언론이 해당 발언을 보도하자 “외눈박이들”이라고 비하했다.

 

 

 

이종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협의회 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정조사특위 위원-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서 오열을 하며 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12.20. ⓒ뉴스1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채팅창에 올라온 글들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여권에서의 폭언과 막말 수위가 점점 높아지자, 유가족들은 지난 20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폭언을 멈추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故 이지한의 아버지 이종철 씨는 주 원내대표를 붙잡고 통곡하며 “시체팔이? 인간이면 그런 말 못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장은 탄식과 울음바다였다.

주 원내대표도 유가족을 만난 뒤 유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 원내대표는 이틀 뒤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회의에서 “희생자나 부모들은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분들이지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희생자나 유족을 상대로 폭언을 한다든지 비난하는 일은 옳지 않다”라며 “유족이나 희생자들에 대해 폭언을 한다든지,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 일은 삼가 해 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의 발언만으로는 폭언을 멈추지 못했다. 이날 비대위원 회의를 생중계한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에는 “주호영 사퇴하라”, “주호영 니(네) 돈으로 보상해줘라”, “주호영 앞에서는 잘낝덕(잘난 척) 뒤로는 더듬당 도우미” 등의 글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이 같은 글을 올리는 일부는 유가족을 지원하는 일을 마치 특혜를 베푸는 일처럼 여기고 있었다.

한편, 폭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분향소에서 벌어지는 폭언에 대해 “향후에 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대응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에서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지난 26일 “2차 가해 대응팀이 꾸려져 가동되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 이승훈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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