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르포] 전원해고 통보받고 공장에 눌러앉은 ‘평균 52세’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  

 

  •  

 

17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의 모습. 청산 절차에 돌입하면서 작업도 모두 멈춰있다. ⓒ민중의소리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 안에 있는 한국와이퍼 공장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안에는 ‘회수용’이라고 적힌 박스가 가득 쌓여 있었다. ‘덴소코리아(주)’와 ‘한국와이퍼(주)’가 함께 나란히 써 있는 이 박스는 이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 와이퍼를 납품할 때 사용되는 것이었다. 빈 박스를 회수해서 다음 납품 때 재사용한다. 그런데 이 박스는 더이상 활용되지 않고 가만히 쌓여만 있었다.

“우리가 일하던 현장인데...가슴이 아파요.”

17일 한국와이퍼 공장 1층 작업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만난 노 모(55) 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노 씨는 한국와이퍼에서 20년을 꼬박 일한 숙련 노동자다. 그동안 와이퍼 생산의 여러 공정을 거쳤던 그가 마지막으로 일하던 곳은 와이퍼 완제품 조립 라인이 있는 2층 작업장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마지막 근무일인 12월 30일 금요일 이후로는 2층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청산 절차에 돌입한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휴업을 통보하고 모든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문을 열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손잡이를 묶었고, 창문을 열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가벽을 세워 작업장 입구를 아예 가려버리기도 했다. 이날 민중의소리와 만난 노 씨는 그날을 떠올리며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판넬로 다 막아놨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믿지 못했어요. 노조 사무실이 3층에 있어서 오며가며 작업장을 볼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막았나 싶어서 토요일에 일부러 제가 회사에 와봤는데, 진짜 깜짝 놀랐어요. 제가 일할 때 신는 안전화 같은 걸 두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탈의실이든 뭐든 다 닫혀 있던 거예요. 비록 하찮은 거지만, 제가 늘 쓰던 것들과 작별할 시간이라도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그렇지 못해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

노 씨를 비롯해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지난 1월 2일부터 한국와이퍼 1층 작업장 안에서 회사의 일방적인 집단해고에 반발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문이 굳게 닫힌 회사 앞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찾던 중 우연히 1층 작업장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회사의 ‘실수’였다.

‘이대로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오겠다’는 생각에 1층 작업장 안에 눌러 앉아 농성을 벌이게 됐다고 최윤미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이 말했다. 그날부터 노동조합 조합원 209명이 조별로 돌아가며 매일 24시간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바로 전날 회사로부터 ‘해고예고 통지서’가 등기로 날라왔다. 그 내용은 2월 18일부로 회사 청산으로 인해 해고가 된다는 것이었다.

 

 

 

17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의 모습.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민중의소리
대부분 중년 여성 노동자들인 한국와이퍼

‘해고’는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해고예고 통지서’를 받아든 조합원들은 담담하게 이날도 1층 작업장을 지키고 있었다. 노동조합 조합원임을 상징하는 주황색 조끼를 맞춰 입고 삼삼오오 모여 뜨개질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작업 기계는 조용히 멈춰 있었다. 더불어 난방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맨바닥에 이불 하나를 깔고,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몰아내며 깜깜한 밤도 함께 지새우고 있었다. 그 단결의 힘은 그 어느 곳보다 끈끈해 보였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대부분 중년의 여성이었다. 평균 연령은 52세라고 한다. 한국와이퍼에서 이들의 근속연수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는다. 이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단지 “정년까지 여기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노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소박한 바람도 현재로선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동에서 10년 살다가 안산에 와서 20년 살았어요. 결혼하고 아들이 4살이 됐을 때 한국와이퍼에 입사해 지금까지 다녔어요. 잔업도 많이 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여기서 제 삶을 꾸려왔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다고 하니까 가슴이 아파요. 퇴직도 6년 정도 남았는데, 퇴직할 때까지 열심히 다니려고 했거든요. 노후자금도 마련해야 하고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

 

 

 

17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 안에서 김미숙(55) 씨가 자신이 만들던 와이퍼를 설명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미숙(55) 씨도 한국와이퍼에서 10년을 꼬박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워냈다. 그에게 한국와이퍼는 생존터이자 자부심이었다.

“저기가 제 자리였어요. 저기서 기아차 트럭에 들어가는 와이퍼를 만들었어요. 아, 여기 있네. 이게 제가 만들던 거예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던 김 씨는 1층 작업장 안에 걸려 있던 와이퍼 샘플을 하나 들고서 공정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빗물을 닦아주는 와이퍼는 어느 자동차에나 들어가는 하는 필수 부품이다. 이런 각종 와이퍼를 생산해 오랫동안 현대기아차에 납품해온 곳이 바로 한국와이퍼였다.

“저희가 회사 입구 문을 열고 들어오니 경비아저씨가 ‘잠깐만요!’ 그러시더니 이 계단(노조 사무실로 향하는 계단)으로만 올라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변이 벽으로 다 막혀 있어서 정말 황당했어요. 불도 안 켜져서 휴대폰 불빛으로 길을 찾아 올라갔는데, 노조 사무실에 더러운 정수기를 가져다 놓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울컥했어요. 우리가 여기서 몸 바쳐서, 젊음 바쳐서 일했는데 남는 건 이것밖에 없구나.”

김 씨는 “여기엔 혼자서 애들을 키우고 있는 ‘여성 가장’도 많다. 다들 정년을 바라보고 이때까지 일해 왔는데 회사에서 해고를 통지하니 답답하다”며 “우리는 이제 어디 갈 데도 없다. 나이가 있으니 비정규직으로 써주지도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17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 안에서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대부분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다. ⓒ민중의소리

한국와이퍼가 ‘위장 청산’이라고 보는 이유

노조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건 회사가 ‘적자로 인한 청산’이 아니라 ‘노조를 깨기 위한 위장 청산’을 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당한 해고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위장 청산이라는 정황 근거는 이미 많이 있다. 한국와이퍼가 위장 청산을 계획한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들이 수차례 폭로됐고, 한국와이퍼 매각처로 알려진 DY오토에서 대체 생산을 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회사가 정말 사정이 어려워서 ‘청산’이 아니라 ‘매각’이 되는 것이라면, 숙련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고용도 승계하면 된다. 그런데 회사는 ‘매각이 아니라 청산’이라고 우기며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그러다보니 생산직부터 관리직까지 한국와이퍼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조로 똘똘 뭉쳐 회사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더욱 화가 나게 하는 건, 지난 2021년 10월 한국와이퍼 노사가 체결한 ‘고용안정 협약서’가 한 순간에 휴짓조각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 핵심 내용은 “회사는 와이퍼 이외의 아이템 중 일부를 가져와 총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회사 매출이 떨어지자,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합의했던 것이다. 특히 청산 또는 구조조정 시 노조와 사전합의를 해야 하고, 이 협약을 어기면 1인당 1억 원씩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담겼다.

게다가 이 협약서에는 한국와이퍼 노사 각 대표의 도장뿐만 아니라 ‘연대보증’으로 한국와이퍼의 원청이라고 볼 수 있는 일본 덴소(DENSO)의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 대표이사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덴소 자본이 100% 출자한 회사다. 연대보증은 원·하청이 모두 합의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분명한 근거였다. 노조는 이 협약서를 믿었다.

그런데 이 무거운 합의서가 너무나 가볍게 무시됐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입장에선 별안간 회사로부터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격이다. 강명지 한국와이퍼분회 조직부장은 “잘 맺어진 단체협약(고용안정 협약서)임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이 우릴 보호해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일본 덴소와 한국와이퍼의 이런 태도는 윤석열 정부가 반노동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친 데 따른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노조는 판단하고 있다. 정현철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지회장은 “화물연대 파업에서 봤듯이, 노동자 투쟁에 관련해선 굉장히 엄격하고 없는 제도까지 만들어서라도 탄압하겠다는 태세지만, 사용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하는 선별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그런 정부의 정책들이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17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의 모습. ⓒ민중의소리

외국투자자본의 ‘먹튀’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두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큰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기업인 일본 덴소가 한국에 만든 자회사엔 고의적으로 적자만 남기고, 와이퍼를 판매한 이익은 일본 본사로 모두 가져간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외교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노조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덴소코리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지 고용승계만을 위한 게 아니게 됐다. 한국와이퍼 사태와 같은 일이 더 이상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 분회장은 “저희들 문제를 끝까지 알려서 적어도 ‘제2의 한국와이퍼 사태’가 나오지 않게 하는 투쟁을 반드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17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 안에서 노동조합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민중의소리
남은 시간은 한 달 뿐
“진짜 황당한 일” 정치권도 나섰다


이제 남은 시간은 사실상 ‘한 달’뿐이다. 정 지회장은 “회사는 3월 말까지 청산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이고, 그 시나리오대로 지금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2월 18일에 조합원들을 모두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 3월이 되면 또 다른 국면이 되고, 여기 공간조차도 없는 상태가 될 것 같다. 그렇게 가지 않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정치권에 역할을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이유다. 이에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응답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올해 첫 민생 현장 방문 일정으로 이날 한국와이퍼를 찾아 노조와 간담회를 했다.

한국와이퍼 사태 책임의원으로 꼽히는 우원식 의원은 “세계 2위 자동차 부품 생산 그룹이라는 덴소가 앞에서는 단체협약을 맺고 뒤로는 대체 생산을 하고 사기로 적자를 내고 회사를 철수하려는 짓을 하고 있다. 진짜 황당한 짓이다”라며 “여러 노사분규를 보고 겪어왔지만 외투기업이 이렇게 백주대낮에 노골적으로 우리 국민을 속이고 노동자를 속이고 정부도 속이는 짓을 하는 건 처음 보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노동부에 조사를 하라고 했더니 한국와이퍼만 조사하고 덴소는 조사하지 않고 끝을 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저에겐 ‘계속 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하지 않았다. 한국와이퍼 조사 결과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아무리 노조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더라도, 그걸 넘어서서 일본 기업이 국민들에게 사기 행각을 벌이는 건 막아야 하지 않나”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우 의원은 “정부가 나서서 덴소를 조사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겠다”며 “과거 외투기업이 저질렀던 ‘먹튀’ 행각을 덴소가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일본 대사관 등에도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박주민 의원은 “참 답답하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 같다”며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해결 방향으로 “고용이 승계되는 게 핵심”이라며 “고용안정 협약서를 이행하도록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17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의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 노동조합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모습. ⓒ민중의소리 

관련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