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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고소·고발사주” 변호사도 놀란 경찰의 건설노조 ‘표적수사’

노조에 불리한 내용으로 진술서 미리 작성해 서명 강요, 억지로 피해사실 만들어 조사하기도

아파트 공사 현장 건설노동자들. (본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민중의소리
지난해 12월 인천 영종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별안간 경찰이 찾아와 '노동조합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현장소장에게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뒤이어 광역수사대도 찾아오더니 현장소장을 붙잡아 놓고 수시간 동안 진술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또 다른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고용 문제를 두고 노사 갈등이 없었던 곳이었지만 경찰이 찾아왔고, 사측 관계자에게 교섭 과정에 협박은 없었는지를 캐물었다. 그러고선 미리 작성해 온 진술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이런 일들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듯 보였다.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경찰이) 경북에 있는 현장에 대해 진술 좀 해달라고 해서 진술을 해주고 왔고, 경기지방경찰청도 와달라고 하더라"라며,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는 경찰의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 과정 중 벌어진 일들이라고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주장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법률가단체는 16일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를 포함한 일부 사례를 공개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8일부터 200일간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겠다며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제시한 주요 단속 대상에는 건설사의 불법행위는 빠진 채, 노조 활동에 대한 내용만 나열돼 있다. 최근 단속 과정에서 건설노조 조합원을 구속하는 등 '성과'를 낸 경찰관들은 대거 특진했으며 윤희근 경찰청장은 충북 충주, 울산 등을 찾아 보란듯이 특진 임용장을 전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혐의를 덧씌우기 위한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건설노조의 지적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16일 공개한 서울, 인천 지역 경찰이 건설사 현장소장에게 배포한 고발양식. ⓒ민주노총 건설노조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전하며, "거의 고소, 고발사주 아니냐"고 꼬집었다. 권 변호사는 서울, 인천지역 경찰이 건설사 현장소장에게 배포했다는 고발 양식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문서에는 건설노조에 불리한 내용으로 진술을 유도하는, 상세하고 구체적인 예시가 적혀 있다. '민주노총 교섭위원이 노조원을 채용하지 않을 경우 어려운 길로 가게 될 것이라며 채용을 강요해 어쩔 수 없이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민주노총 노조원을 채용할 경우 일반팀 공사 진행 생산성보다 현저히 떨어지고 현장 운영에 있어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고 있고, 회사의 존립 여부가 걸려 있으므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등 사측 관계자가 진술할 법한 내용을 경찰이 대신 작성해 배포한 것이다. 여기에 "노조원들이 겁을 준 내용을 작성해 주시면 좋습니다"라는 친절한 주문도 덧붙였다. 이 양식에 맞춰 인적 사항과 숫자 몇 개만 고치면 '건설노조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진술서가 뚝딱 만들어진다.

권 변호사는 "이건 인적 사항만 찍어서 내라는 것"이라며 "채용 강요 등의 내용을 아예 예시문을 첨부해서, 이렇게 작성해 내라는 것인데 (이건) 거의 고소, 고발사주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또한 권 변호사는 건설현장 관행처럼 굳어진 '타워크레인 월례비' 수사의 경우, 월례비를 준 건설업체가 오히려 '피해를 본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전했다. 경찰 수사 방향과 달리 월례비는 건설노조 협박에 의해 지급된 것이 아니라, 타워크레인 조정사와 건설업체의 자발적인 협의에 따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월례비가 공갈이 되려면 어떤 내용으로 건설업체를 협박한 것인지를 물어봐야 하는데, 3~4시간 조사하는 동안 그런 건 물어보지 않았다"며 "'월례비 관행이 잘못된 거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만 주구장창했다는데, 이건 수사기관이 할 일이 아니지 않나. 전방위적으로 수사하는 경찰의 현재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이 같은 경찰 수사는 경찰의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으며,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 변호사는 "범죄 혐의를 포착하기 위한 정보 수집 활동은 최소한의 범위여야 한다"며 "그런데 경찰은 고소 사유에 준하는 수준으로 건설현장을 단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실태와 진실 바로보기 민주노총-법률가단체 공동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2.16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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