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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과 특수 관계... '외교 실세' 김태효의 위험한 폭주

[분석] 굴욕외교 주도... 윤 대통령은 민심을 택할 것인가, 그를 택할 것인가

23.04.18 20:12l최종 업데이트 23.04.18 20:12l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4월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4월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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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때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2008~2011년)과 대외전략기획관(2012년)을 지낸 김태효씨가 윤석열 정권 출범과 함께 국가안보실 1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걸 보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의 전력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의 노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윤 정권의 외교·안보 분야를 책임지는 국가안보실 1차장에 임명될 당시,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차장으로 일하던 2022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벌금 300만 원의 선고유예)을 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로 범법자가 됐는데도 계속 자리를 지켰습니다. 급기야 두 달 뒤인 12월 27일에는, 윤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명분 삼아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사면하면서 끼워 넣는 방식으로 그의 형을 세탁해줬습니다.

윤 대통령과 '특수 관계' 빼놓곤 설명할 수 없는 파격 인사

기소만 돼도 직위해제 당하는 공직 사회의 풍토에서, 아무리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자리라고는 하지만 상식 파괴의 설명 불가 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외교·안보 분야를 책임지는 요직 중의 요직에 군사기밀 유출범을 앉혔으니 말입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받고 기소될 당시의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기야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일제하 강제 동원 피해자 관련 재판을 연기한 '사법 농단' 혐의로 감옥에 보냈으면서도 정작 대통령이 된 뒤에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제3자 변제 방안을 '대승적 결단'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으니 더 할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씨의 수수께끼 같은 인사비밀은 윤 대통령과 그 사이의 '특수 관계'가 알려지면서 많이 풀렸습니다. 둘은 서초동 법원 옆에 있는 고급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이웃이자 술친구이며 목욕을 같이하는 '사우나 동지'였다고 하더군요. 더구나 김씨의 아버지는 대검찰청 중수부장을 지낸, 윤 대통령의 '특수부 검사' 한참 선배였으니 둘의 관계가 더욱 끈적끈적했을 법합니다.

아직 무슨 이유인지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오리무중이지만, 한 달 사이에 안보실장과 외교 비서관, 의전 비서관이 추풍낙엽처럼 줄줄이 날아간 와중에서도 김씨만 살아남은 이유를 이런 사적인 특수 관계를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외교 대통령 김태효'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세

파격 인사보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런 사적인 특수 관계가 자리보전에만 그치지 않고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하는 나라의 외교·안보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씨는 한국 학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한일 군사협력의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한일 군사 동맹론자'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가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2년 7월 대외전략기획관으로 일하면서 밀어붙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입니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밀실 협정' 체결을 추진하다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협정 조인 1시간 전에 무산됐고 그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거침 없는 친일·보수 성향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조선일보> 2015년 8월 3일 자 '사과받는 나라와 사과하는 나라' 칼럼
▲  <조선일보> 2015년 8월 3일 자 '사과받는 나라와 사과하는 나라' 칼럼
ⓒ 조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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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직에서 사퇴한 뒤 윤 정권에서 재등용될 때까지, <조선일보>의 칼럼 등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친일·보수 성향을 드러냈습니다. 2015년 8월 3일자 '사과받는 나라와 사과하는 나라'라는 칼럼에서 "일본인의 마음을 간단하게 축약하면 약속하고 합의한 내용을 어기는 한국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강제 징용 문제는 분명히 1965년 수교 당시 정부 간 약속으로 명문화해 사과하고 보상했는데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 한국인의 여론은 일본의 책임을 묻고 있어 곤혹스럽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3월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제3자 변제를 내용으로 한 정부의 강제 노동 해결 방안을 발표한 뒤, 대통령실의 고위 관계자가 익명을 전제로 "우리가 대법원판결을 부정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만, 어쨌든 국제법적으로 그리고 한일 양국 정부의 약속에 비춰보면 2018년 대법원판결은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합의를 어긴 것이다'라는 결론이 된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는데, 앞글과 뒷말의 논리 전개가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요.

또 그는 2018년 9월 18일 자 '한·미·일 안보 협력 말고 다른 길은 없다' 는 제목의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는 안보 협력으로 일본과 신뢰를 쌓고 협력의 관행을 정착시켜 가다 보면 과거사 문제의 해결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는 역발상을 꾀해야 한다. 작년에 체결한 한·일 정보보호협정으로 양국이 북한에 관한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 7년간 보류돼 온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조속히 체결하여 대북 억지력을 배가하고 한반도의 돌발상황에 공동 대처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극보수적인 시각이지만, 그는 이미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역할 : 미·일 신방위협력지침을 중심으로' (2001), '한일관계 민주동맹으로 거듭나기' (2006) 등의 논문을 통해 한반도 유사시에 자위대의 개입까지 주장해온 터였기 때문에 새로운 주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자의 주장과 정책 책임자의 말은 무게가 크게 다릅니다. 학자의 주장을 정책화할 때는 전후좌우를 잘 살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윤 대통령의 '귀와 입'을 장악하고 있는 그의 주장이 아무런 견제와 여과 없이 현실에서 그대로 추진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나라의 안위에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한반도 유사 때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에서부터 치욕적인 일제하 강제 노동 해결 방안과 한일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 우크라이나 전쟁의 살상 무기 지원까지 윤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외교·안보 정책에 그의 입김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강제 동원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양보를 더 끌어내야 한다는 외교부 쪽의 속도 조절론을 찍어누르고 굴욕이고 반헌법적 방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도록 강요한 주역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윤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에 작용하는 그의 위세가 워낙 세다 보니, '이제 외교·안보 대통령은 김태효'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한국 외교의 핵심에 포진한 '나카소네파' 학자들

그의 친일·보수 성향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미 공인받은 바 있습니다. 일본 역대 총리 중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처음 참배한 사람이 바로 나카소네 야스히로입니다. 군사력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의 개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방위비의 예산 1% 이내 원칙을 최초로 깬 총리도 나카소네였습니다. 그는 1980년대 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연대해 소련 압박 정책을 펼치며 일본을 '불침 항모'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한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우익 정치인입니다.

지금 일본을 풍미하고 있는 보수 우경화 흐름의 선구자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나카소네가 총리 퇴임 뒤, 1998년에 만든 연구소가 '나카소네 야스히로 세계평화연구소(회장,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입니다. 연구소 설립 당시 일본 내각이, 관련 행정기관이 연구소 활동에 긴밀하게 협조하도록 하는 내각 결의까지 했으니 일본의 국책연구소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김씨는 이 연구소가 주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상'의 수상자입니다.

이 연구소는 2005년부터 일본에 보탬이 될 만한 각 나라의 젊은 연구자에게 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까지 18회에 걸쳐 모두 62명(우수상 19명, 장려상 43명)이 상을 탔고, 이 중 한국 사람은 3명뿐입니다. 첫 회 우수상을 탄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외교관을 교육하고 외교정책을 연구·개발하는 일을 책임지는 국립외교원장에 임명됐습니다. 4회(2008년) 우수상 수상자인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해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로 기용됐습니다.

김씨는 5회(2009년)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가 상을 받은 시점이 바로 청와대 대외협력 비서관을 맡고 있던 때라는 사실입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다른 나라 관료가 재직 때 이 상을 받은 건 그가 유일합니다. 일본 보수세력으로서는 당시 청와대에서 대외정책을 주무르고 있는 핵심 인물을 어떻게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의 수상 이유를 보니, "미국 및 일본에서 정치학 연구를 한 경험을 기초로,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 미국과 일본, 각국 상호 간에 있는 상황과 문제 등을 분석하고 …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안전보장을 위해 해야 할 협력관계 등에 관해 연구와 제언을 해 온 것은 … 앞으로 크게 기대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기대를 하면서 그에게 상을 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글입니다. 아마 지금 그들은 나카소네 상을 받은 세 사람의 한국 학자가 모두 윤 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환호작약하고 있을 겁니다.

민심을 무시하는 '김태효 리스크'의 재연
 
‘한일정상회담 규탄!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강제동원 해법 폐기!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제3차 범국민대회’가 3월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6.15남측위,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공동주최로 열렸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외교부와 일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한일정상회담 규탄! 윤석열 정부 망국외교 심판! 강제동원 해법 폐기!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제3차 범국민대회’가 3월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6.15남측위,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공동주최로 열렸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외교부와 일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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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일이 꼭 권력자가 뜻한 대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80년대의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90년대 민주화를 거치며 민도가 한층 성숙해진 요즘 한국 사회에서 시민의 뜻을 반영하지 않은 대외정책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15년에 한일 정부 사이에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한일 두 정부는 이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했지만, 피해자를 비롯한 대다수 국민의 반발로 합의가 사실상 무효가 됐습니다. 김씨가 추진했다 실패한 2012년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윤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을 치고 있습니다. 내각제라면 정권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매우 낮은 지지율입니다. 그런 지지율 추락의 기점이 바로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3.6 강제 동원 해결 방안'과 '3.16 한일 정상회담'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10년 전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실에서 추진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김씨가 그에 관해 아무런 성찰이나 반성도 없이 대통령의 뒷배만 믿고 다시 그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 처리하다가 벌어지고 있는 참사입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진 최근의 안보 위기에 대해서도 불을 끌 생각은커녕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주권국의 책임 있는 외교·안보 담당 관료로서 당당하게 미국이 저지른 불법 도청 활동을 비판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마땅할 터인데도 "허위 문서", "악의 없는 도청", "정보동맹" 등의 망발만 늘어놓으면서 '상전'인 미국을 변호하기에 바쁩니다.

러시아의 보복이 두려워 포탄 지원 사실을 감추려는 깊은 뜻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과 일본 앞에만 서면 작아지곤 했던 그의 태도를 보면 사대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시민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다 미국과 일본의 뜻을 먼저 헤아리는 듯한 그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프란츠 파농이 살아 있다면, 그를 '노란 피부, 하얀 가면'의 대표 인물로 묘사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제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민심을 택할 것인가, 김태효를 택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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