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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정신 승리법

  • 기자명 장창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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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29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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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 미국은 어떤 친구인가

    염탐하는 친구

    워싱턴 시각으로 4월 25일.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NBC방송 앵커인 레스터 홀트와 마주 앉았다. 홀트는 “미국이 한국을 도청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미국인 홀트가 보기에도 미국이 한국을 도청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던가 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이 기괴하다. “미국 정부 관료들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 안보 관료들이 이에 대해 미국 카운터파트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앵커가 물은 것은 ‘도청 사건’이었는데, 대통령이 답한 것은 ‘문건 유출’ 사건이었다. 이 정도면 역사에 남을 동문서답이라 하겠다.

    답답했던 것일까. 앵커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친구가 친구를 염탐합니까”

    말문이 막힌 대통령. “일반적으로 친구끼리는 그럴 수는 없지만, 국가 간 관계에서는 서로...” 뜸을 들인다.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현실적으로”라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가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신뢰가 없어 도청하는 미국, 도청당해도 신뢰한다는 대통령. 아큐 버금가는 정신 승리법이다.

    혜택 주는 친구

    4월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장. 윤석열은 답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 양국의 미래세대는 또 다른 70년을 이어갈 한미동맹으로부터 무한한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워싱턴선언’이라는 별도 문건까지 합의했고, 넷플릭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약속받았으니 고무되었을 것은 인지상정. 그러나 ‘앞으로 70년 동안 무한 혜택’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미국 방문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는 다 내줬다.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중 관계, 한러 관계 악화할 말, 미국이 좋아할 말만 골라 했다. 미국의 도청 행위마저 신뢰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미국이 갈구하는 포탄은 이미 한국에서 우크라이나로 이동 중이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 전쟁, 인도·태평양 지역 등 미국이 관심 사항이 앞에 놓였다. 워싱턴선언은 핵협의그룹이라는 ‘새로운 논의기구’ 하나 추가하고, 한반도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핵무기탑재잠수함 전개를 약속받았다.

    23건의 경제 관련 MOU 체결, 59억 달러의 투자유치는 불확실한, 미래형 약속에 불과하다. MOU가 실제 계약 과정에서 취소되고 무산된 사례는 차고 넘친다. 게다가 우리 기업이 대미 투자액 1천억 달러에 비하면 미국의 한국 투자액은 새 발의 피다.

    미국이 우리에게 준 것은 립서비스이고, 우리가 미국에 준 것은 중국과 러시아 대결 전선 동참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전쟁 위기 고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 따른 경제 불안이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받을 혜택은 없다. 우리가 미국에 무한 혜택을 제공하는 일만 남았다. 미국은 더 이상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친구가 아니다. 안보에서도, 경제에서도 미국은 자기 이익 챙기기 급급하다.

    판판히 뜯기면서도 혜택이라는 사고, 또 하나의 정신 승리법이 아닐 수 없다.

    5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우리 대통령이 초청받았다. 히로시마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조율되는 모양이다. 5월 히로시마에서 또 어떤 정신 승리법을 펼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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