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장마,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은 계속 비가 내릴 거라는 현지 일기 예보.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백두산을 오르기로 한 우리에게 기대나 설레임, 낭만과 여유같은 건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백두산에서 온통 장대비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르기전부터 마음이 공연히 비장해진다.
하지만 백두산 가는 길이 어찌 그리 야박하기만 하랴. 백두산 순례에 동행하는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민족의 대단결을 염원하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또한 한평생 간직할 뜻깊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백두산 순례는 우리 민족의 시원 역사와 성스러운 산의 정기, 조상들의 숨결, 여전히 자치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포들, 그리고 동포들이 지켜가는 생활문화를 체험하는 장이다.
이번 순례에서 처음으로 단체 비자를 받았다. 6월 처음 중국 땅을 밟았을 때와 달리 이번엔 사전 비자 없이 중국에 입국했으니, 변화가 많은 현지 사정을 감안하면 하나의 진전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단체비자의 함정들. 아뿔싸! 단체 비자는 숙박업소 '예약 확인서'를 요구했고 우리와 계약한 현지 가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지정한 가이드 한 명을 의무적으로 써야만 했다. 이게 뭐임!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도 발생했다. 단체 비자로 중국에 입국한 여행객은 윤동주 생가, 명동촌, 봉오동 전투전적지나 청산리전투전적지, 조중접경지 등 방문이 금지되고 있었다. 아마도 지안(集安) 고구려박물관이나 환도산성, 광개토대왕비 등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우리 일행도 화룡시에 있는 청산리 전투전적비를 찾아가다가 한국인 관광객 입장금지 소식을 확인하고는 송강하로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백두산. 올해는 시시각각 천변만화하는 백두산의 묘술을 직접 보고 싶었다.
백산시 무송현 송강하진에서 출발한 백두산 서파. 하늘은 맑고 햇살이 따사로운 전형적인 여름 날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튿날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낙석과 추락의 위험이 있어 백두산 북파, 서파, 남파 산문을 폐쇄하고 입산을 금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종일 비는 내리고...온천도 한번 하고 구경삼아 동네산책에 나섰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데... 7월 15일에도 새벽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당연히 백두산 북파, 서파, 남파 산문이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입구까지 가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이번엔 남파 산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간간이 세차게 내리던 비가 점차 잦아들더니 갑자기 해가 뜨고 날씨가 맑아졌다.
남파 산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안개가 많이 끼고 돌개바람이 불어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올라야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져서 입산이 허용됐다.
"정상까지 못올라가고 돌아와야 될 수도 있다. 백두산 정상까지 못올라도 표는 반환되지 않으니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라"는 소리가 연신 시끄럽다.
입구에서 입산을 기다리면서 이제 최소한 중턱까지는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점점 맑아지는 걸 보니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준비한 옷이란 옷을 다 꺼내입고 체온유지를 위해 우비까지 껴입었다.
음식점은 대피소가 되었고 한 여름에 겨울옷을 3만원 정도에 팔았다.
아, 마치 지금의 남북관계를 웅변하는 듯한 백두산의 칼바람이다.
한중관계가 점점 나빠지고 있고 한국 관광객을 그다지 반기지는 않는 상황이지만 통일농사는 8월 23일~27일 '우리민족 대단결을 위한 백두산 순례'를 규모 있게 꾸리고 잘 준비 할 계획이다.
또 2023년 한 해를 정리하고 2024년 새해를 백두산에 맞이할 '2024년 신년 백두산 순례'도 올해 12월 30일~2024년 1월 3일까지 다녀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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