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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 견디는 망원시장, 전통시장의 반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9/21 10:57
  • 수정일
    2013/09/21 10: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형마트가 밀려날지도 몰라"
포위 견디는 망원시장, 전통시장의 반란?

홈플러스 입점 6개월, 망원시장이 '선방'하는 이유는?

13.09.20 20:39l최종 업데이트 13.09.20 21:5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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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의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은 장보러 나온 인파로 시끌벅적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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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인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선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지역의 전통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마트가 들어선 후 상권이 죽어가던 공덕시장처럼 되지는 않았을까.

5일간의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예상과 달리 장보러 온 인파로 붐볐다. 추석 대목을 앞둔 여느 전통시장의 풍경이었다.

"그전까지 하루 손님이 가장 많을 때가 POS(Point Of Sale, 판매관리시점)기기에 2600여 명이 찍혔어요. 근데 홈플러스가 의무휴업하고 '망원시장 난리났네' 이벤트 하던 그날, 3700명을 찍은 거예요."

가게 뒤편에서 재고 정리를 하던 임병근(48) '엄마손 마트' 사장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24평 남짓한 가게에 터를 잡은 지 5년. 가장 큰 위기였던 홈플러스 입점에도 임 사장은 "홈플러스 들어오니까 위기 의식을 느껴 스스로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며 "더 싸게 팔기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나름 선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8년째 속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조태섭(58)씨도 "아직은 여유 있다"고 말했다. 올해 3월까지 시장 상인회 회장을 맡았던 조씨. 홈플러스 입점 직후에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매출에 큰 변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불경기라 매출이 감소할 때가 있지만 홈플러스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조씨는 "입점 이후 서비스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며 "인사도 잘하고 손님들에게 뭘 더 잘해줘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경 1.5km 내에 대형마트·SSM이 3개... 버텨낼까 걱정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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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개점한 홈플러스 합정점. 이곳은 망원시장, 망원동·월드컵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들이 지난해 입점 저지를 위해 천막 농성을 벌이는 등 오랜 갈등을 빚어왔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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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라는 말이 적절했다. 지난 3월 14일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합정점(670m 거리)이 개점하면서 망원시장과 망원동·월드컵시장은 인근의 홈플러스 월드컵점(1.5km 거리),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300m 거리)까지 대형 유통 업체로 둘러싸였다.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오기 전, 두 시장은 지역 사회와 함께 비상대책위를 꾸려 저지 투쟁에 나섰다. 상인들은 입점 예정지인 합정동 메세나 폴리스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다. 다섯 번의 철시(시장, 가게 따위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음)를 하는 등 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서울시의 중재로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 2월, 홈플러스와 두 시장은 상생협약식을 맺었다. 일종의 사회적 타결이었다. 협약문에는 '홈플러스 합정점은 채소·과일·생선·정육 등 1차 식품 중 오징어, 국거리용 쇠고기, 순대, 떡볶이, 알타리무 등 16개 품목의 판매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시장 인근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을 올해 안으로 폐점하기로 했다.

상생협약을 맺었지만 상인들은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생존 대책으로 마케팅 전략을 구상했다. 중소기업청 산하의 시장경영진흥원과 서울시, 마포구청이 컨설팅에 나섰다. 망원시장에는 88개, 망원동·월드컵시장에는 50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다.

상인들은 시장 고객들에게 전단지를 대신해 홍보용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월드컵 시장은 매주 수요일, 망원시장은 매주 화요일 20~30% 특가 세일 행사를 벌인다. 또 대형마트 휴무일인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에는 '전통시장 가는 날'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열고 있다. 망원시장은 '망원시장 난리났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상점마다 세일 기획안을 받은 뒤 30개를 정해 전단지에 소개했다. 한 달에 2번이지만 상인들과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임씨 가게가 최고 고객수를 기록한 날이 바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이다.

서정래 망원시장 상인회 회장은 "전에는 가게 일이 바쁘니까 함께 활동하려는 생각이 없었지만 입점 저지 투쟁을 하면서 상인들이 결집하면, 대자본과 맞설 수 있다는 경험을 갖게 됐다"며 "합의 이후 시장이 정상화되면서 상인들의 결집력이 시장 마케팅 활성화로 이어져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포 공동체'도 큰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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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시장은 화개장터를 열어 지역 사회에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화개장터는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에게 시장을 여는 벼룩시장이다. 팔찌, 목걸이 등 수제품을 팔고 노래 공연도 열린다.
ⓒ 망원시장상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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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회와의 연대도 시장의 큰 버팀목이다. 마포구에는 성미산마을 공동체를 비롯해 민중의 집, 두레생활협동조합 등 주민 단체와 주민 모임이 활성화 돼 있다. 지난해 40여 개의 지역 시민 단체들은 두 시장 상인들과 함께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지역 주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결성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입점 저지 서명 운동에 나서 1만 7000여 명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시장 인근의 망원·성산·서교·합정·연남동 주민 16만여 명의 10%를 넘는 숫자다.

홈플러스 입점 이후에도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망원시장은 화개장터(벼룩시장)를 통해 지역 사회에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팔찌, 목걸이 등 수제품을 팔고 노래 공연도 연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인 '오늘공작소'는 컨설팅을 통해 상인들의 매출 증대를 돕고 있다.

지역 시민 단체인 '민중의 집'의 정경섭 대표는 "홈플러스가 해도 너무한다는 주민들의 의식이 있었고 입점 이후에도 상인들의 눈물 나는 생존 노력이 있어 '마포 공동체'가 결집하고 있다"며 "착한 소비를 원하는 시민들이 이용을 자제하면서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가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는 "대책위는 앞으로 지역경제 살리기 본부로 전환해 지역 상권 지키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두 시장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도 예전처럼 전통시장이 무력하게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마포 시민들과 상인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불투명한 미래, 지속가능한 상생 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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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상인,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지난 2월 서울 마포구청 회의실에서 마포 전통시장과 홈플러스와의 '상생 협약식'을 체결한 뒤 홍지광 전 망원동·월드컵시장조합 이사장이 동료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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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형마트의 영향이 없진 않다. 대형마트의 가격 경쟁력이 높은 고추장, 두부 등 가공식품류가 영향을 받고 있다. 또 홈플러스가 들어선 주상복합 빌딩인 '메세나폴리스'에 상가가 들어서면 업종이 겹치는 화장품, 의류 등도 타격을 받고 있다. 월드컵시장에서 식자재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이성진(46)씨는 "소비자들이 주로 사가는 김, 고추장 등 가공 식품류가 전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면서도 "식당 납품 등 도매를 주로 하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두 시장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상인들의 결집력이 줄어들고 대기업인 홈플러스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응수해오면 시장에 타격이 올 수 있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상인들의 안전 장치는 상생협의체다.

상생협의체 회의는 지난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마포구청의 주관하에 열리고 있다. 두 시장과 구청, 홈플러스 관계자 3명씩 12명이 모이는 자리다. 한 달간의 상생협의 내용을 점검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지만 협약 내용은 권고 수준일 뿐 법적 강제력이 없다. 상생협의체의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15개의 품목제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수천 개의 품목을 파는 대형마트에서 15개를 양보한 것은 생색내기"라며 "그나마도 상인들이 너무 바빠 홈플러스를 일상적으로 감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실장은 "협의체가 단순 권고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홈플러스가 지키지 않으면 상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국회 법안 발의, 자치구 조례 재정으로 지치단체가 감독 권한과 제제 수단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홈플러스 PR팀 관계자는 "상생협약을 맺은 것은 어느 정도는 서로 양보하고 같이 가자는 것으로, 양쪽이 100% 만족할 수 없다"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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