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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격렬하게 평화의 연대로! 다시 뛰는 정의연 사람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특집] ‘윤미향 사태’ 그 후, 새로운 운동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입구 ⓒ민중의소리


지난 8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한켠에선 한 활동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큰 소리로 안부 전화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 잘 계시나 하고 전화 드렸어요, 할머니 식사도 많이 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귀가 어두운 할머니를 위해 그는 큰 목소리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또 한켠에선 다음날 예정돼 있는 수요시위에 사용할 플래카드를 한 활동가가 바닥에 앉아 손수 만들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선배 활동가가 멈춰 서서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며 또 다른 이야기꽃을 피웠다.

8월 초는 정의연이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14일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의 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림의 날은 32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증거가 없다’는 일본 정부에 맞서 당당히 자신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일본군 성노예제의 진실을 요구한 날이다. 여성인권운동을 발전시킨 역사의 출발선이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2012년 1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이날을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로 정하고,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실천하자고 결의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건 2018년부터다. 그 배경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연을 비롯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선 운동단체의 끊임없는 요구가 있었다.

기림의 날 행사만 준비했다면 정의연 활동가들은 잠시 숨을 돌릴 틈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8.15 광복절 집회,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 집회까지 준비해야 한다. 매주 수요일엔 수요시위, 한 달에 한 번 할머니 댁 방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리 등 일상적인 업무도 동반된다.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에 아직 여름휴가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우린 8월 15일까지 쉴 수 없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황급히 사무실로 복귀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이 말했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정의연 활동가들은 사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세간에서 ‘윤미향 사태’라고 부르는 그 ‘사태’ 때문이었다. 아직 정의연 활동가들도 이 ‘사태’를 뭐라 불러야 할지 정리하지 못한 듯하다. 2020년 5월, 윤 의원이 정의연 이사장직을 사임하고 총선에 나가 비례대표로 당선된 직후에 시작된 일이었다. 언론사 카메라가 정의연 사무실 앞에 집결했고,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정의연에 손가락질을 해댔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쉼터인 ‘평화의우리집’도 마찬가지로 고역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쉼터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있던 손영미 소장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오랜 동료인 윤 의원을 비롯해 정의연 활동가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겪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5년차 A 활동가가 말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사무실에 여러 명이 함께 있었기에 버텼는데, 손 소장님은 혼자 있었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죄송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너무 힘들었다.” 이 말을 하던 그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지는 듯했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올해 1월 6일 윤 의원과 정의연 사무처장을 지냈던 김 모 활동가의 1심 최후변론이 있었다. 검찰은 윤 의원에게 징역 5년을, 김 전 사무처장에겐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지만, 이들은 정의연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활동하면서 결코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재판부의 합당한 판결을 청원했다.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이를 지켜보던 정의연 활동가들과 지지자들 모두가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2월 10일 1심 선고 날, 윤 의원은 횡령죄의 극히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형을 받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전 사무처장은 모두 무죄였다.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이를 지켜본 활동가들과 지지자들도 서로 얼싸안으며 “고생했다”고 다독였다.

 

 

 

이나영 일본군 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 8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8.08 ⓒ민중의소리

사태 3년 후, 이용수 할머니의 수요시위 복귀

상처를 딛고 조직과 연대 확대한 정의연

다행히도 지난 3년간 정의연은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역사부정세력, 혐오세력의 극심한 방해 속에서도 30년 넘게 이어온 수요시위는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태’의 시발점이 된 기자회견을 열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3월 1일부터 정의연이 주최하는 수요시위에 다시 참석하기 시작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을 매섭게 꾸짖었다.

이 이사장은 “이 싸움을 해왔던 피해 당사자를 만나서 용기를 얻고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결심하는 자리가 수요시위인데 언제부턴가 당사자가 수요시위에서 안 보이게 되면서 이전과 양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께서 현장에 나타나니까 우리로선 너무 힘이 되고 용기가 난다”며 “이 할머니는 지금 이 싸움을 당사자로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게다가 정의연의 내부 조직은 더욱 확대되고 탄탄해졌다. 현재 이 이사장을 비롯해 18명의 활동가가 정의연을 이끌고 있다. 3년 전에 비해 정의연의 몸집이 두 배로 커진 것이다. 오랜 활동가 한 명이 힘에 겨워 일을 그만둔 것 말고는 그 ‘사태’로 인해 정의연을 떠난 이는 없었고, 오히려 2030세대의 젊은 활동가들이 새롭게 충원됐다.

그중 한 명인 김민서(25) 활동가는 작년 10월 인턴으로 들어와 현재 정의연 연대운동국에서 국내연대와 출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대학원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는 그는 학내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 관심을 두게 됐고, 정의연 활동에 도움이 되고 싶어 박물관과 수요시위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가,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뭐든 시켜만 달라, 도움이 정말 되고 싶다, 제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사태’가 그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던 것일까. 김 활동가는 그 사태가 있을 당시엔 ‘외부자’였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고 경쟁하듯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모두 믿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제기되던 의혹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흔들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 정의연에 들어와 보니 어땠을까. 그는 “(세간의 의혹들과 달리) 너무 문제가 없더라. 그래서 솔직히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검찰이 제기한 문제들이 얼마나 시민단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것인지를, 제가 활동가가 된 지 1년도 안 됐는데도 느껴질 만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김 활동가는 정의연에서 활동하면서 큰 보람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피해 생존자를 직접 만난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지혜롭고 경험도 많으셨다. 존경스러운 어른이었다. 저희 활동가들 세대가 할머니를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만큼 제가 죽을 때까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다. 할머니를 만나 뵙게 되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정의연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됐다는 건 아니다. 윤 의원과 함께 기소된 유일한 활동가였던 김 전 사무처장의 건강은 제대로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악화돼 있었는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이사장은 “재판이 끝나는 게 가장 큰 치료제가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인데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아 완전히 명예회복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쉴 틈 없는 업무의 연장에 잠시 트라우마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내부 상황과는 다르게 굳게 닫혀 있는 정의연 사무실 출입문은 이를 보여주는 듯 했다. 인터뷰를 위해 정의연 사무실을 찾았을 때 안은 보이지 않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열어 달라고 철문을 손으로 ‘쿵쿵’ 두드리자 한 활동가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조심스럽게 누구냐고 물어봤다. ‘인터뷰 약속을 하고 온 기자’라고 답하니 그제서야 문을 활짝 열어줬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모든 활동가들이 놀란 눈으로 목을 쭉 빼고 일제히 기자를 쳐다봤다. 3년 전 그날, 기자도 검찰도 철문을 ‘쿵쿵’ 두드리고 막무가내로 들이닥쳤을 것이다. 그리고 보수단체는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정의연을 위협했을 것이다.

A 활동가가 인터뷰에 조심스럽게 응하며 익명의 보도를 요구한 것도 트라우마 탓이었다. 그를 포함해 현재 정의연의 많은 활동가들이 이제는 본명을 드러내기보다는 활동명을 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 ‘사태’가 벌어지기 1년 전에 정의연에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던 그는 그 ‘사태’가 터진 후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과거의 일을 대신 해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2020년 사건이 있기 전에 정의연은 굉장히 우호적인 언론 환경이었다. 보도자료를 내면 뉴스에 많이 나오더라. 다른 단체에서 활동할 땐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굉장히 놀랐다. 그런데 2020년 사건을 계기로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우리를 너무 악마화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개별적으로 얼굴이나 실명이 드러나는 인터뷰를 굉장히 꺼리게 됐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실수가 언론보도에 어떻게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애써 그 ‘사건’을 숨기려고만 하지는 않는다. 김 활동가는 선배 활동가들이 언제든 그 일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런 선배활동가들의 모습에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보였다. 김 활동가들은 선배 활동가들에 대해 “존경스럽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배 활동가들은 2020년 사태 이후에도 계속해서 ‘위안부’ 문제를 계속 이끌어가고 있다.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단체라고 지탄을 받을 때에도, 나의 소명을 다하겠다고 한 게 대단하다고 본다. 대부분 돈이나 명예, 승진과 같은 가치를 중요시할 텐데 그것 이상으로 더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정의연 사태로 인해 후원회원이 대거 빠져나갔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새로운 후원회원이 생긴 건 정의연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다. 1천 명에서 한때 6천 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덕분에 정의연은 현재 재정에서 정부 지원금이 ‘0원’이어도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정의연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가족부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 등을 담당해서 해오곤 했는데, 그것들이 어느 순간 국고보조금 편취로 둔갑해 있었다. 그것이 그 ‘사태’의 전말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사태’ 이후로 정의연은 정부 지원의 사업은 더 이상 도맡아 하고 있지 않는다. 대신 정의연이 피해 생존자들을 돕는 ‘자선단체’가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해 싸우는 ‘운동단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후원금을 내주는 이들이 이전보다 늘어난 만큼 재정구조는 더 튼튼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사장은 “그분들이 이 운동과 역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발판 삼아 정의연은 시민사회진영에서 연대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전에는 정의연에 사람들이 연대를 해주러 왔다면 지금은 그 반대가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의연 활동가들은 그만큼 더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연대의 범위가 그냥 넓어진 게 아니라 식민지 불법강점에서 일어난 반인도적 범죄 행위라는 속성과 연관돼 있다. 거기서 대표적인 게 ‘위안부’ 문제지만 강제동원 문제도 있고 민간인 학살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많다. 그런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거기다가 여성인권 문제도 있으니까 여성인권 단체들과도 연대를 공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거듭된 역사적 퇴행이 연대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반발하며 지난해 60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에서 이 이사장은 공동대표이자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중점을 두고 하고 있는 일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을 거부한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과 연대해 정부에 올바른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의연은 그동안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싸워온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모두의 노력 끝에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반발하며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이 모금운동을 벌인 지 한 달여 만에 5억 원을 돌파하는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퇴행적 태도를 두고도 우려가 크다. 이 이사장은 “이미 이 정부는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일본 정부와 똑같이 ‘2015 한일 합의’를 준수한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면서 정의연에 초청장을 보내지 않은 것도 그런 면에서 문제가 있다. 그동안 피해자 추모비가 있는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열리던 기념식을 갑자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여는 것도 역사의 몰이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 여가부에 이용수 할머니가 항의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이 이사장이 전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일본의 사죄배상을 요구하는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 용기있는 투쟁을 응원하며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 발표 기자회견에서 약정서 사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06.29 ⓒ민중의소리

정의연의 향후 과제 ‘기억과 기록’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새 역사로

현재 정의연이 진행하고 있는 핵심 사업 중 하나는 ‘기억과 기록’에 관한 것이다. 이 이사장은 취임 이후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에 열중하며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그 성과물로 지난 7월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archives.womenandwar.net)가 정식 공개됐다. 일본군성노예제도에 관한 역사 자료,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기록,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한 만든 것으로, 첫 번째로 공개된 주제는 1992년부터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함께 진행한 아시아연대회의다. 시민사회단체로서는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전문 디지털 아카이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정의연의 향후 과제는 이처럼 “흩어져 있는 자료를 연결하는 일”이라고 이 이사장은 강조했다. 그는 “기억과 기록, 교육, 연구, 이런 부분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특히 기억과 기록 부분은 자료가 많이 흩어져 있고, 체계적으로 집적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어디에 무슨 자료가 있고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이를 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부담도 상당히 크다. 어떻게 이걸 확장시키고 지속 가능하게 할지도 현실적 고민이다.

피해 생존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된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현재 생존자는 9명뿐이다. 만약 피해 생존자들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우리는 무엇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까. 이것이 정의연의 핵심 고민이었다. “결국은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밖에 남지 않겠나”라고 이 이사장이 말했다. 정대협 시절부터 30년 넘게 이어져온 정의연의 활동이 그동안 피해 생존자들과 직접 연대하는 활동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다른 사업에 역량을 쏟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도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는데 영향을 줬다.

외부에서도 정의연의 활동에 기대를 건다. 일본군‘위안부’연구회 회장으로서 2020년 정의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됐던 정의연의 성찰과비전위원회에 학계 대표로 들어가 활동했던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도 그 중 한 명이다.

강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정의연 사태 이후에 정의연 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밖에 있는 명망가나 활동가들, 연구자들이 같이 결합해서 성찰과비전위원회를 만들면서 정의연의 향후 운동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피해 생존자들이 다 돌아가긴 후인 ‘포스트 피해 생존자 시대’에도 ‘위안부’ 운동이란 게 여전히 유효하다면 어떤 운동 전망과 제도적,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과제까지 폭넓게 논의하고 고민했다”며 “그게 지금 정의연의 새로운 운동에 조금씩 반영돼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다만 “여전히 정치적, 운동적 상황이 좋지 않다. 역사부정, 여성혐오, 그리고 ‘위안부’ 문제, 특히 피해 생존자에 대한 조롱과 괴롭힘이 상당히 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건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정당정치 일부가 증오나 혐오를 부추기고 동원하는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정의연이 나가야 할 길이 여전히 험난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위안부’ 운동에서 특히 인권부분에서 국제적인 표준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이 운동에 여전히 선두에 있는 건 정의연과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의 여러 연대가 30년 넘게 쌓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과거의 저력과 역사를 토대로 정의연이 이번 기회를 통해 스스로 다져 이후에 한국의 인권, 특히 국제적 여성인권 등 여러 분야에 보다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전망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연 사무실을 방문한 다음 날, 서울 종로구 평화로에는 여느 때처럼 노래 ‘바위처럼’과 함께 청년들의 율동 무대가 펼쳤다. 기림의 날을 맞아 세계연대집회 형식으로 열린 수요시위였다. 이번 기림일의 기조는 ‘정의도 기억도 연대도 격렬하게’, ‘혐오를 넘어 평화의 연대로’다. 정의연 활동가들의 정의, 기억, 연대를 향한 열정이 이전보다 더 뜨거워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정의연은 한결같이, 아니 더 격렬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9일 서울 종로구 국세청 북측 인도에서 열린 제11차 세계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정 배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3.08.09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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