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열린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답변은 ‘말 바꾸기’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이 후보자는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있던 시절 ‘홍보수석 요청’으로 국정원이 작성하고 홍보수석에게 보고한 ‘방송개입 문건’들에 대해 “거의 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전직 청와대 홍보라인들이 구체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하자 “처음에 한두 번 가져와서 갖고 오지 말라 했다”고 말을 바꿨다. ‘본 적 있으면서 왜 본 적 없는 척 거짓말을 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과 ‘국정원 문건이 정상적인 문건이냐?’라는 질의가 이어지자, 이 후보자는 다시 “좌우지간 본 기억이 없다”고 또 말을 바꿨다.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를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도 했다. 이 후보자는 몇 명 안 되는 행정관 중 일부가 국정원 직원이었다는 사실조차 “최근에야 알았다”는 의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① 국정원 보고서 모르는 척하기
“거의 본 적 없다”
“모니터 보고 수준 아닌가?”
이날 인사청문회 오전 질의에서 고민정(서울 광진구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변인실과 홍보수석실에서 작성되거나 보고된 여러 방송장악 문건 목록을 이 후보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고 의원은 “보고받거나 요청했던 문건이 한 30여 건 정도 발견됐고, 그 가운데 실제로 실행이 확인된 것만 골라내니까 9건 정도”라며 “알고 있느냐?”라고 했다.
이 질문에, 이 후보자는 “언론을 통해서만 봤다”며 본 적 없는 문건이라고 답했다. 고 의원은 재차 “일상적인 보고까지 하나하나 다 보지는 못했다는 말인가?”라고 답변 취지를 물었고, 이 후보자는 “거의 본 일이 없다”고 재차 같은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해당 국정원 문건들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2009년 12월 작성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이라는 문건은 시사프로그램 제작진 및 출연자들을 “좌편향”, “골수좌파”, “노조원” 등으로 칭하며 “퇴출”, “교체”를 권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또 “가시적 성과 미흡 시 봄철 프로개편을 계기로 문제의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문서 가장 앞장 상단에는 “12.18 홍보수석 요청자료”라고 적혀 있고, 마지막 장 하단에는 “배포 : 홍보수석”이라고 적혔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요청에 따라 작성됐고, 홍보수석에게 보고됐다는 의미다. 당시 홍보수석은 이동관 후보자였다.
고 의원은 해당 문서 상단에 적힌 “홍보수석 요청자료”라는 문구를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도 했지만, 이 후보자는 마치 자신은 이런 문건을 전혀 본 적 없었다는 듯 “이미 여러 차례 해명했다. 그 당시 상주하던 국정원 직원이 수시로 각 수석실을 다니면서 뭐가 필요하냐 수집을 해서 보고를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 국정원 보고서를 두고 “이건 모니터 보고서 수준의 것 아닌가?”라며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했다.
“해당 국정원 직원은 대변인실에 있던 사람이냐?”라는 질문에도, 그는 “나중에 홍보수석실에도 누가 한 명 와 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당시에는 몰랐다”라며, 홍보수석실에 국정원 직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② 못 봤다던 이동관의 ‘말 바꾸기’
“한두 번 가져와 갖고 오지 말라 해”
이동관 후보자의 발언은 오후 질의에서 추궁하기 시작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윤영찬(경기 성남시중원구) 민주당 의원은 △ 당시 청와대 홍보라인에서 근무한 5급 이상 행정관이 10~20명이라는 점 △ 노무현·김대중 정부에는 홍보수석실에 국정원 직원을 파견한 적 없었다가 이명박 정부 때 처음 파견했다는 점 △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에서 보면 국정원 파견은 홍보수석의 동의가 없으면 있을 수 없다는 점 등을 짚으며,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국정원 직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홍보수석이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라고 추궁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보고체계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추궁했다.
“황 모 행정관은 홍보수석실 내 유일한 국정원 파견관이었기에 뉴미디어비서관실 포함한 홍보수석실 내 여타 비서관실과 국정원의 업무연락을 맡았다. 이분이 한 일이 뭐냐면 매일 아침 데일리보고서, 기획보고서, 주문보고서 3가지 종류 보고서를 만든다. 김 모 보좌관은 아시죠? 김 보좌관은 수석의 보좌관이다. 그 보좌관에게 데일리보고서 등을 전달한다. 그건 아무한테도 주지 않는다. ... 그러니까 바로 홍보수석한테만 가는 문서라는 것이다. ... 박 모 비서관이 김 보좌관을 통해 (황 행정관에게) 지시했다. 거기에 포함된 게 김제동 등 일부 연예인,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KBS 조직개편 이런 (문건의) 내용들이다. 박 비서관으로부터 받아서 (황 행정관이) 국정원에 연락하면, 거기서 보고서를 가져오는 것. 그래서 다시 보고받고, 박 비서관에게 전달하는 거다. 근데 이 황 행정관의 데일리보고서와 기획보고서 이것은 홍보수석만 보는 건데, 수석만 보는 보고서에서 의문사항이나 수정요청이 있으면 박 비서관을 통해 다시 내려오는 거다. 그럼 그 얘기는 뭐냐면, 후보자가 수석을 할 때 그것을 보고 있었고 보고받아서 박 비서관에게 지시했다는 것. 거꾸로 주문보고서는 국정원에서 작성해서 황 행정관 통해 박 비서관 통해 수석에게 올라가는 거고. 근데 모른다고 할 수 있나?”
그러자, 이 후보자는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기관을 모욕하는 것 같아서 이 말을 안 하려 했는데”라며 보고서를 본 사실이 있다는 점을 실토했다. 그는 “그런 보고서를 처음에 한두 번 가져와서 갖고 오지 말라 했다. 참고가 되지 않는 내용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③ 말 바꾼 이동관의 모르는 척
추궁 이어지자 “좌우지간 본 기억 없어”
‘정상적이냐?’ 질문엔 “무엇이 정상인가?”
이어지는 오후 질의에서, 고민정 의원은 “한두 번 가져와서 가져오지 말라 했다는 것은 봤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 의원은 “문건 관련해서 후보자가 ‘모니터 보고서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서 몇 개만 보여주겠다”며 2009년 작성된 ‘MBC 조기 정상화 추진 방안’ 등의 문건을 보여줬다. 해당 문건 ‘인적쇄신’란에는 “8월 27일 보수성향 이사 주도로 해임건의안 전격 발의, 공개적으로 사진사퇴 압박하라”고 적혔다. 고 의원은 “실제 3~4일 후 여권성향 이사장이 MBC경영진이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며 해임압박이 실행된다”고 부연했다. 또 고 의원은 “정규 편성에서 배제”, “문제프로그램 폐지” 등이 적힌 ‘방송사 가을 프로개편 계기 편파방송 근절 박차’라는 문건을 보여주며 “실제 폐지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파업 주동자 퇴출 등 후속조치 만전”이라고 적힌 문건을 보여주며 “이것 역시 며칠 후 MBC 노조위원장 해고되고, 집행부 18명 징계, KBS 노조위원장 비롯 60명 징계위 회부되며 실행됐다”라고 설명했다.
고 의원은 “이런 게 이동관식 모니터 보고서인가?”라며 “모니터 보고서 수준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사찰문건이다. 적절하고 정상적인 문건이라고 보나?”라고 추궁했다.
그러자, 이 후보자는 다시 말을 바꿨다. “좌우지간 나는 본 기억이 없다. 지시한 적도 없고”
재차 고 의원이 “정상적인 문건이라고 보나?”라고 반복해서 물었고, 그는 “정상이 아닌 것은 무슨 의미냐?”라고 되물었다. 고 의원은 “정상적인 문건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뭔가, 정상적인 문건인가?”라고 또 물었고, 그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정상이 아닌지부터 정의를 해주고 질문해야지”라고 되받았다. 비판적인 언론인, 제작진 쫓아내는 방안이 적혀있고 실제 실행된 문건에 대해 정상적인 문건이냐고 물었는데, ‘정상’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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