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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풍자' 작가들만 콕 집어 지원금 내역 뒤졌다

[블랙리스트의 밑그림] 만화진흥원에 '대통령 풍자 작가' 지원금 자료 요구했다가 "취소"

조아영, 주보배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  기사입력 2023.09.22. 04:24:18 최종수정 2023.09.22. 10:03:15

 

의원님은 대체 무엇이 알고 싶었을까. 여당 국회의원이 특정 예술가들을 '콕 집어서' 정부 지원금 자료를 요청했다. 대상은 33명.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전시에 참여했다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대구 북구을)은 최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2023 굿바이전 in 서울>(이하 굿바이전)에 참여한 작가들에 관한 지원금 내역 자료를 요청했다. 김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동 중이다.

 

<굿바이전>은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10·29 이태원 참사 등을 소재로 한 풍자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회다. 참여 작가는 고경일, 박재동, 백영욱, 이정헌 등 33명. 만화, 회화, 조각, 일러스트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올렸다. 

 

전시는 지난 1월 9일부터 13일까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작품 내용이 논란이 되자, 국회 사무처는 전시 개막일 당일 새벽, 작품을 기습 철거했다. 그리고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만을 특정해서 지원금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자료 제출 요구의 당사자가 된 작가들은, 정치권이 또 다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 부부 등을 풍자한 '굿바이전'은 본래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1월 9일 공개될 예정이었던 전시는 국회사무처에 의해 그날 새벽 기습 철거됐다.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
여당 국회의원이 대통령 풍자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들만을 '특정해' 정부 지원금 내역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일반적인 자료 요청으로 보기 어렵다. 심지어 기관 직원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정보를 캐묻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위법 소지도 있다.

 

 

"(국회의원이) 누군가를 특정해서 자료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해당 기관의) 기관장이나 장관급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엔 (특정 개인의) 징계 및 경고 내역을 요청하는 사례는 있다. 예를 들면, 유인촌같이 장관 후보자가 된 사람이라면 그렇게 요구한다." -국회의원실 관계자 A씨, 4년 차 선임비서관 

 

다가오는 10월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국정감사는 기관이 본연의 업무를 잘 수행했는지 감사하는 게 목적이다. 기관 소속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건 몹시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의원실에서 민간인 개인을 특정해 자료 요청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관 내부 직원이라 치더라도 이름으로 특정하지 않고 '위원장', '상임위원' 이런 식으로 직책을 써서 자료 요청한다. 하물며 기관 직원도 아닌 민간인을 특정해서 그 사람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 B씨, 대관업무 10년 차

 

▲김신 작가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김승수 국회의원(사진 가운데)과 함께 여러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왜 작가들을 특정해서 이런 자료 요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승수의원실

 

자료 제출 요구를 받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대상 작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개인정보 제공 동의' 여부를 물었다. 김 의원이 요구한 자료를 공개하려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고경일, 박재동, 백영욱, 이정헌 작가가 자료 제공 '동의'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이정헌 작가는 "(한국만화진흥원 관계자가) 국회에서 저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는데 제출할지 말지 얘기해 달라고 했다"며 "제가 어떤 지원사업에 선정됐었는지, 지원사업명, 결과보고서 같은 것들을 요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어제(19일) 연락이 왔다. 한국만화진흥원에서 법률 검토를 해보니, 작가들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런 게 있다고, 내게 동의 여부를 물어봤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내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백영욱 작가

 

"김승수 의원실 자료 요청 개인정보 제공 거부했다." -고경일 작가 

 

김 의원은 <굿바이전> 참여 작가들뿐만 아니라, 박재동 작가와 김신 작가를 각각 따로 지목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신 작가에 대한 경고 내역 및 사유, 박재동 작가에 대한 지원 내역, 사업 선정 과정 등을 캐물었다. 

 

만화계에서는 <굿바이전>뿐만 아니라 <관동대지진, 100년만의 통곡 아이고(AIGO)전>(이하 아이고전) 등 정부를 비판하는 다른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자료 요청 명단에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해당 전시에는 <굿바이전>에 참여했던 고경일, 박재동, 백영욱, 이정헌 등을 포함해, 한일 양국의 작가 37명이 작품을 올렸다. 

 

▲김승수 국회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것으로 논란이 된 <굿바이전>에 참여한 박재동 작가(사진 가운데) 등 특정 작가들을 대상으로 지원금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이호 작가 제공

 

윤석열 대통령 풍자 전시 참여 작가들만을 겨냥한 여당 국회의원의 자료 요구. 만화계는 '블랙리스트'의 부활을 우려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 약 9년간 이어진 블랙리스트의 악몽이 또 다시 실현될지 모른다는 것.

 

"너무 불쾌하다. 왜 나를 콕 찍어서 알아보려고 하는지 김승수 의원에게 따지고 싶다. 이건 블랙리스트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박재동 작가 

 

"제가 뭔가 죄를 지은 사람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든다. 내 뒤를 캐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백영욱 작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두 차례 이름을 올린 김신 작가. 그는 김 의원의 이런 행동이 문화예술계를 위축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블랙리스트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다시 노골적으로 그런 모습들이 보인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건 작가들이 위축된다는 거다. 정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작가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지 않느냐. 그런 사회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김신 작가

 

이정헌 작가도 이명박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피해자였다. 그는 "내년에 지원사업을 또 해야 하는데, 아마 내년부터는 (선정이) 안 될 것 같다는 공포가 가장 크다"고 밝혔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정권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 문화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사찰·감시·검열했다.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고 작품 활동을 사전에 검열하는 등 권력을 휘둘렀다.

 

 

약 9년 동안 이뤄진 블랙리스트 사태의 특징은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사전에 작가 개인 및 단체를 특정해 문건을 작성했다'는 것. 이번 김승수 의원의 자료 요구도 특정 작가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과거 블랙리스트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랙리스트 법률 대응을 맡아온 강신하 변호사는 "특정인에게 수사하듯이,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민간인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라며, "특정 전시에 참여한 특정 작가를 콕 집어 자료를 요구한 건 블랙리스트의 색채가 굉장히 짙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블랙리스트가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지난 2020년 12월 23일 서울연극협회 등이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을 결정했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전 정부 인사들의 형사 재판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집행한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의 파기환송심이 재개됐다.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장관 등 블랙리스트 관여 인사 7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지난 7월 12일 기소됐다.

 

▲2022년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인 '윤석열차' 작품 사진 ⓒ이정헌 작가 제공

 

만화계가 블랙리스트 부활을 걱정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번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그 두려움의 근거를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부천만화축제에서 윤석열 정부를 풍자한 카툰인 '윤석열차'가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으로 전시됐다. 이 작품에 대해 행사 후원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엄중 경고' 조치를 내렸다. "행사 취지에 어긋난 정치적 주제의 작품"이라는 게 이유였다. 

 

블랙리스트 피해예술인 모임인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차 검열 사건'에 대해 비판했다. 

 

올해도 축제는 돌아왔지만, 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 전시는 취소됐다. 지난 14~17일 사이에 만화영상진흥원 주최로 열린 부천만화국제축제는 문체부의 후원을 받지 못했다. 

 

'윤석열차' 논란 이후 약 3개월이 지나, <굿바이전> 강제 철거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월 9일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시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시 개최 당일 새벽, 국회 사무처에서 작품 80여 점을 기습 철거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블랙리스트 부활에 대한 우려는 최근 가속화됐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인촌 문화특별보좌관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유인촌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초대 문체부 장관을 지냈다. 문화예술계는 유인촌 후보자에게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해왔다. 

 

유인촌 후보자는 지난달 2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속칭 좌파 예술인들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부 예산을 요구해선 안 된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라고 밝혔다.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문화예술인 단체들로 구성된 '유인촌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문화예술인 일동'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인촌 장관 지명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유인촌 장관 내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 ⓒ셜록

 

'윤석열차' 논란, <굿바이전> 기습 철거 사태, '블랙리스트 관여' 의혹을 받는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의 재지명, '대통령 풍자' 작가들을 특정한 여당 국회의원의 자료 수집, 이 모든 일들이 최근 1년 사이 일어났다. 문화예술계가 블랙리스트 부활의 조짐을 점점 더 크게 느끼는 이유다. 

 

한편 김승수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0일 <셜록>과의 통화에서 '특정 작가들을 대상으로 지원금 자료를 요구'한 사실을 전부 인정했다. <굿바이전>에 참여한 작가들의 정부 지원금 내역 자료를 전부 요청했고, 박재동 작가와 김신 작가는 따로 지목해 별도의 자료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아이고전> 참여 작가들에 대한 자료 요청은 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굿바이전>은) 국회에서 논란이 있어서 혹시 국비가 지원된 적 있는지 확인 차원에서 그렇게 (자료 요구)했다. 단순히 확인 차원에서 한 것." -김승수 의원실 관계자 

 

그리고 김승수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한 지 약 1시간이 지나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료 요구는 취소했습니다." 

 

<셜록>은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직후 관계자와의 통화를 다시 시도했으나, 의원실 관계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승수 의원실 관계자가 보낸 문자 메시지 화면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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