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상하다, 왜 군사합의 일부만 효력 정지했을까

9·19 군사합의 파기는 정전협정 위반... 유엔사는 침묵할 것인가

23.11.25 17:51l최종 업데이트 23.11.25 17:51l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  (서울=연합뉴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한반도가 군사적 긴장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한국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일부 효력을 정지했고 북한도 이에 대응한 군사적 조치를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윤석열 정부가 폐기를 당연시하던 9·19 군사합의를 '법적 절차'에 따라 그것도 '일부만' 효력을 정지한 것이 말이다. 이 글은 9·19 남북 군사합의가 잠자던 정전협정을 소환한 지점을 분석하고 남북의 치킨 게임에 침묵하고 있는 유엔사령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의 이상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최근까지 윤석열 정부는 9·19 남북 군사합의를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피력해 왔다. 특히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9월 개최된 인사청문회부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효력을 정지시킬 정도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여러 차례 9·19 군사합의 폐기를 공언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1월 21일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긴급 NSC(국가안전보장이사회) 상임위원회와 임시 국무위원회 그리고 대통령 재가를 통해 9·19 군사합의의 제1조 제3항(군사분계선 인근 상공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효력 정지를 의결했다.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런던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런던의 한 호텔에서 북한의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토록 9·19 군사합의 폐기를 자신해 왔던 정부가 '예상과 달리' 남북관계발전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매우 정제된 형태로 군사합의의 '일부 효력'만을 정지했다.

사실 윤석열 정부는 기존의 남북 합의,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체결된 남북 합의에 대해 이행은 고사하고 그 존재 자체를 무시해 왔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왜 유독 9·19 남북군사합의에 이다지도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것일까?
  
9·19 남북 군사합의가 소환한 정전협정

9·19 남북 군사합의는 2018년 4월의 판문점선언을 구체화한 것으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남북은 또한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며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추가적으로, 남북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는데 합의하였다.

관련하여 우리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을 다시 펼쳐볼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에서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하기 위해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에 향하여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적대 쌍방 사령관들은 륙해 공군의 모든 부대와 인원을 포함한 그들의 통제하에 있는 모든 무장력량이 한국에 있어서의 일체 적대행위를 완전히 정지할 것을 명령하고 또 이를 보장"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정전협정의 규정은 "적대 중의 일체 지상, 해상, 공중 군사력량에 적용"된다.

이제 다시 돌아보자. 사실 정전협정이 규정한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 행동의 완전한 정지"는 비무장지대와 접경지대에서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해왔다. 9·19 남북군사합의 이전까지 말이다. 돌이켜 보면 9·19 군사합의는 정전협정에서 규정되었지만 묵인 내지 방치되어온 이 규정들을 되살려낸 것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초치 관련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초치 관련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9·19 군사합의를 폐기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에서 표출됐다. 한국의 국방부 장관은 호기롭게 군사합의 폐기를 장담했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9·19 군사합의를 넘어, 정전협정의 조항을 넘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사문화됐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9·19 군사합의로 되살아난 정전협정의 조항들을 다시 위반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하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는 한국 정부가 유엔사령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정전협정을 위반한 꼴이 되는 것이다.
  
유엔사는 남북의 정전협정 위반에 침묵할 것인가

남북 당국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9·19 군사합의를 폐기하려 하고 있다. 미-중, 미-러 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하고 자신들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9·19 군사합의 폐기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합리적인 답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더 이상 윤석열 정부에 우리 국민의 생명과 한반도 평화를 맡길 수 없다. 이제 유엔사령부가 아니 미국이 남북의 정전협정 위반에 침묵할 것인지 아니 암묵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9·19 군사합의 폐기는 단순히 남북 합의를 폐기하거나 일부 정지하는 문제를 넘어 정전협정 위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서 9·19 남북군사합의가 만들어낸 평화의 공간을 어떻게 지켜내고 남북의 폭주를 막을지 책임 있는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태그:#919남북군사합의, #윤석열정부, #윤엔사령부, #정전협정, #미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