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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은 노동자의 권리다

[건보고객센터 파업 장기화의 원인과 해법 ①] 정규직화는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자격인가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  |  기사입력 2023.11.27. 08:14:39 최종수정 2023.11.27. 08:15:29

 

11월 1일 시작된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의 파업과 집단 단식이 곧 한 달에 접어든다. 장기 파업의 쟁점은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 여부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21년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사무논의협의회'를 통해 고객센터 업무를 공단 소속기관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채용승계를 권고했다. 이미 이뤄진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해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세 편의 기고를 싣는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을 요구하며 11월 1일부터 파업과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무협의에서 2019년 2월 27일 이후 입사자 약 700명에 대한 공개경쟁 채용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공단이 공개경쟁 채용을 주장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 정책 발표 이후 입사자는 채용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크므로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구직자들의 공공부문 채용 기회를 박탈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정규직 전환 지침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전환 채용을 원칙으로 삼았다. 상시지속 업무에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잘못된 구조를 바로 잡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정책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었다. 

 

하지만 전환 채용 원칙은 2018년 11월 크게 후퇴한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이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자 중 100명 이상이 기존 정규직의 친인척이라며 채용 비리·고용 세습으로 서울시와 노조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결국 정부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발표 시점 이후 입사자에 대한 강화된 검증과 경쟁 채용 요소 확대 등을 포함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다. 

 

보수 정당의 조직적 채용 비리 주장은 1년이 지난 후에야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서울교통공사 일반직 전환자 1285명 중 친인척의 청탁으로 부당하게 입사한 경우는 단 2명에 불과했다. 두 경우 모두 정규직 전환 계획 발표 이전의 입사자였다. 정규직 전환과 연관된 채용 비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진실은 드러났지만 후퇴한 원칙은 회복되지 않았다. 정부는 민간위탁의 직접 수행 여부를 기관 자율적으로 판단하라고 한 내용의 정책 발표 시점인 2019년 2월 27일 이후 입사자에 대한 엄격한 평가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2019년 2월 27일 이후 입사자가 정규직 전환을 예상하고 채용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2021년 10월 21일 소속기관 전환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물론 결정 이후에도 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2019년 2월 27일 이전 입사자와 이후 입사자는 크게 다르지 않은 절차를 거쳐 입사했다. 모두 공개채용을 통해 힘든 시험을 통과해서 공정하게 입사했다. 복잡한 건강보험 제도를 꿰고 있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더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전환 채용이 다른 사람의 채용 기회를 박탈한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우선 소속기관이 생겨난다고 해서 국민건강보험공단 기존 정규직의 채용 규모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는 항상 신규 채용을 하고 있다. 일이 힘든데 노동조건은 열악해 10명 중 9명이 1년을 못 버티고 그만두기 때문이다. 지금도 상담사로 일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 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국민건강보험의 고객상담 업무를 지탱해왔다. 이미 실전에서 숙련과 자격을 충분히 검증받았다. 실제 업무 수행과 무관한 형식적 시험과 평가로 이들을 평가하여 누군가를 떨어뜨리겠다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숙련된 노동자가 해고된다면 노동자 개인의 피해는 물론 건강보험의 안정적 운영에 차질이 생기고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 

 

유럽연합(EU)은 1977년부터 '사업이전지침'을 마련해 영업 양도, 합병, 서비스 공급자의 변경 등 사업 이전 시 해고를 금지하고 고용을 포함한 근로관계를 승계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는 사업 이전 시 근로관계의 승계를 국내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사업주만 바뀔 뿐 동일한 사업이 지속된다면 원래 일하던 노동자의 고용 역시 지속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보편적 기준이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직접 수행 역시 사업 이전으로 볼 수 있다. 민간 업체에서 공단 소속기관으로 운영의 주체가 바뀌는 것일 뿐 나머지 경제적 실체는 동일하다. 전환 채용은 입사일에 따라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라 사업의 이전 과정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1일 강원도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 앞에서 '해고 없는 소속기관 전환 쟁취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이날부터 무기한 총파업, 본부 앞 천막농성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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