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열세가 굳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까지 여론조사에서 1~2% 포인트 차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박빙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이면서 격차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중순 CBS뉴스와 CNN, 퀴니피액대, 로이터통신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2~4% 포인트 차로 앞서 나갔다. 하버드대미국정치연구소(CAPS)·해리스폴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조사에선 트럼프가 바이든에 7% 포인트 차로 우위에 섰다.
이런 양상은 12월에도 계속 이어져 여러 권위 있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우세가 커지고 있다. 그 원인이 다름 아닌 바이든에게 있다는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의 기사를 소개한다.
조 바이든이 우리 눈앞에서 무너짐으로써 도널드 트럼프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었다. 2024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의 첫 예비 선거가 가까이 다가오는 가운데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줌으로써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고 당내 라이벌들을 약화시켰다.
물론 공화당 유권자를 장악하고 있는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 경쟁에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두 가지 외부 사건 때문에 그가 더 탄력받은 것은 분명하다. 첫째, 민주당 정권의 법무부와 검찰이 트럼프를 기소해 트럼프 지지자를 결집시키면서 트럼프가 한 단계 높은 궤도로 올라섰고, 둘째, 엉망진창인 바이든의 여론조사 결과가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모든 의심을 잠재워 트럼프 경쟁자들의 강력한 무기 하나를 완전히 제거했다.
지금까지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쟁에서 부동층이 트럼프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은 것은 그의 핵심 정책도, 국정운영 능력도, 2020년 대선 이후의 행보도 아니었다. 그것은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었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가 밀었던 후보들의 패배로 공화당의 성적이 예상보다 저조하자 트럼프의 당내 입지가 흔들렸다. 반면 트럼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는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함께하다가 패배할 것인가, 아니면 젊고 참신한 주지사를 지지하고 승리할 것인가’라는 직관적인 논리가 확산됐다.
트럼프의 경쟁자들이 당선가능성을 큰 이슈로 삼은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면 트럼프의 다른 문제점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로는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은 트럼프 개인에 대한 비난도,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비판도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인 주장이 아니라 현실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분노하는 어조가 아닌 슬픈 어조로 말할 수 있는 얘기다.
문제는 바이든의 하락세 때문에 여론조사가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6년 대선 때는 트럼프가 ‘샤이 지지자’를 운운하며 주류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문제 삼았지만, 이번에는 가장 평판이 좋은 여론 조사를 인용할 수 있게 됐다.
바이든의 몰락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는 트럼프와의 양자 대결에서 지고 있고, 지지율도 최하 수준이다. 그는 거의 모든 주요 이슈에서 과반의 지지를 못 받고 있는 반면, 그가 다시 대통령이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반이 넘는다. 바이든은 지미 카터나 조지 H.W. 부시 이후로 가장 약한 현직 대통령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양자 대결에서 바이든에 4% 포인트, 다자대결에서 6% 포인트 앞서고 있다. 바이든의 국정 수행에 대해 37%만 긍정적이고 61%는 부정적이다. ‘바이드노믹스’에 찬성하는 유권자는 30%도 안 된다.
트럼프는 경제, 인플레이션, 범죄, 우크라이나 및 가자지구 전쟁, 국경 문제 모두에서 두 자릿수 차이로 바이든에 앞서고 있다. 또 체력에서는 34% 포인트, 정신상태에서는 16% 포인트 앞서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이 개인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유권자는 49%, 피해를 줬다는 유권자는 25%에 불과하지만, 바이든의 정책이 개인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유권자는 37%에 불과하고 오히려 피해를 줬다는 유권자가 53%에 이른다.
물론 대선 후보 경선이 마무리되려면 많은 시간 필요하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과연 지속될까?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2020년 대선 때와는 달리 트럼프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선 선두 주자 논의에 마침표를 찍기라도 하듯 CNN은 트럼프가 경합주인 조지아에서 5% 포인트, 미시간에서는 무려 10% 포인트 앞선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미 트럼프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 중 상당수가 내년에 어떤 후보를 내세워도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대선 승리가 따놓은 당상이니 트럼프의 과거 선거 성적표나 진행 중인 소송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말이다.
그래도 공화당 지지 유권자는 오랫동안 트럼프가 공화당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라고 생각해 왔다. 게다가 그런 믿음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몬마우스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 유권자 중에서 트럼프가 가장 강력한 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7월의 45%와 9월의 48%보다 높은 54%에 이르렀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다른 출마자를 지지하는 사람의 41%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첫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아이오와에서도 형사 기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당선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있다. 10월에 65%에서 증가해 최근에는 공화당원의 거의 4분의 3이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여전히 자신은 이길 것이고, 특히 유죄 판결을 받으면 트럼프는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디샌티스가 전국적으로 트럼프에게 거의 50% 포인트 가까이 뒤지고 있고, 바이든과의 양자 대결에서도 트럼프보다 성적이 나쁘다. 그러니 드산티스의 말이 설사 옳다고 해도 트럼프에 적대적인 주류 언론 매체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계속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당선 가능성을 가지고 공화당원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
한편 11월부터 지지율을 끌어올려 디샌티스를 바짝 쫓고 있는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바이든과의 양자 대결에서 가장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공화당원에게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다른 후보에게 몇 점의 가산점을 준다고 해서 공화당원들이 그쪽으로 기울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에게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최근 여론조사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는데, 공화당은 그 결과를 믿고 트럼프를 무턱대고 지명했다가 내년 11월에 개표를 하면서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예상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반대로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만큼 바이든의 정치적 입지가 나빠서 바이든이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백악관에 귀환하는 것을 돕고 있울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트럼프의 대진운이 참 좋다는 것이 공화당원 사이에서는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가장 좋은 증거는 바이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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