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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개 현수막 들고 ‘정부 심판’ 행진한 유가족 “국민 선택 받는 날 후회할 것”

야당에도 “거부권 남발하지 못하게 200석 이상 압도적 승리로 무도한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결의 보여달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3일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159개 현수막을 들고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을 거부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을 촉구하는 행진에 나섰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3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개 보라색 현수막이 줄지어 나부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거부한 정부에 대한 심판을 호소하기 위해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참사 희생자를 상징하는 159개의 현수막을 들고 도심 행진에 나선 것이다. 유가족들은 이 행진을 ‘국민의힘·윤석열 정권 심판 대행진’이라고 명명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광장 앞 분향소 앞에서부터 종로, 을지로를 거쳐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행진했다. 이들이 든 현수막에는 ‘거부권 통치 막아내고 민주주의 지켜내자’, ‘헌법 유린! 국회 부정! 윤석열 정권이 위헌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가족의 행진에 박수로 응원을 보내는 시민도 여럿 눈에 띄었다.

고 신애진 님의 어머니 김남희 씨는 “사회적 참사라는 아픈 기억을 지우지 않고, 안전한 사회의 초석으로 삼고자 제정했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우리가 뽑은 대표자들의 손으로 논리도 없는 이유로 내팽개쳐진 오늘, 살아있음이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지난 1년여 동안 진상을 규명하겠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 재난에 대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앵무새처럼 반복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참사 초기부터 자식을 팔아 돈을 벌려 한다, 시체팔이를 한다는 패륜적인 댓글이 난무했다. 그 말들은 독이 되어, 칼날이 되어 저희들의 가슴을 난도질했다”며 “정부가 특별법을 거부하고 지원책을 내놓자 다시 댓글이 난무한다. 저들은 우리 유가족들의 바람인 진상규명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발가벗은 저희들을 댓글부대의 먹잇감으로 내던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저의 바람은 단 하나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고, 그래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랐던 제 아이의 죽음이 의미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저희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온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이태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월호와 오송 지하차도와, 채 상병과 함께 안전한 대한민국, 인권이 존중받는 대한민국, 진실이 묻히지 않는 대한민국의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3일 159개 현수막을 들고 '국민의힘·윤석열 정권 심판 대행진'에 나서기 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행진의 종착지는 정부가 지난달 30일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논의했던 국무회의가 열린 정부서울청사 앞이었다. 당시 유가족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특별법 공포를 간절하게 촉구했지만, 정부는 끝내 유가족들의 염원을 외면했다. 유가족들은 159개 현수막을 정부서울청사 건물 주위에 묶으며 항의의 뜻을 전하려 했으나 경찰의 제지에 가로막혔다. 결국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 곳곳에 설치된 경찰 펜스에 현수막을 달고 행진을 마무리했다. 경찰은 신고한 행진 경로를 이탈했다며 경고 방송을 반복했다. 

고 이주영 님 아버지인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힘이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끝내 거부했다. 어떻게 정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민의를 대변한다는 자들이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무책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나 믿기 어려웠다”며 “야당에 묻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도한 정권을 보고만 있을 겁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무능한 국회를 지켜봐야 합니까. 자신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정부에 맞서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입니까”라고 물했다.

이 위원장은 “이런 현실에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해달라. 두 번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두 번 다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민의 아픔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두 번 다시 입법부를 무시하며 거부권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 200석 이상의 압도적인 승리로 이 무도한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이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무책임한지,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고 방치하는지 그 책임을 물을 것이며, 잘못된 정치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그대로 고스란히 돌려주고 제대로 된 심판을 받게 할 것임을 경고한다”며 “두고 보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의 그 맺힌 한이 얼마나 크게 당신들의 가슴과 눈에 박히게 될지. 몸서리치도록 사무치는 이 한을 당신들은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국민의 선택을 받는 날, 다가오는 그날에 우리에게 피눈물을 맺히게 했던 잔인한 집권여당은 자신들의 판단이 얼마나 우매한 짓이었는지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거침없이 갈 것”이라며 “어떠한 짓을 해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이미 지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시민들에게도 연대를 거듭 당부했다. 그는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 안전 사회로 한 발 나아가는 길에 함께 해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이 길에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달 30일 오후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취임 후 2년만에 국회를 통과한 법안 9개를 거부해,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이어갔다.

정부는 반복된 거부권 행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유가족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유가족과의 소통은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단 한 줌의 진정성도 없다”며 독립된 조사기구를 통한 진상규명 외에 어떠한 것도 정부와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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