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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저울] 자기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이 되는 정치를 기대하며

 
선거철이 다가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여권은 ‘운동권 청산’을, 이재명 대표와 야권은 ‘검사 정권 심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운동권 청산’이 주제라니,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을 거의 다 범죄자로 보면서 자신만 선의이고 나머지는 모두 부정하는 소아병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

발달 심리의 대가 피아제(Piaget)는 사람의 인지발달을 4단계로 나누고 아동기 심리상태의 특징을 ‘자기중심성’이라고 했다. 자기중심성은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다. 자기중심성에 빠진 사람은 객관과 주관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해 자신의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즉, 남들도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대로 바라본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 유명한 실험이 피아제와 인헬더(Piaget&Inhelder, 1995)의 ‘세 산 실험(three mountains task)’이다.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로 다른 모양의 모형 산 세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테이블을 돌아가며 각각의 위치에서 산이 어떻게 보이는지 관찰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 반대편 의자에 인형을 앉혀두고 “지금 저 인형은 어떤 산 모양을 보고 있을까?”를 물으며 (아까 관찰했던) 다양한 위치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고르게 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보고 있는 모습과 똑같은 사진을 골랐다. 내 위치와 인형의 위치가 다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중심적 인식 ⓒpixabay

자기중심성이 아동기만의 특징인 것은 아니다. 청소년기나 성인기에도 나타난다. 다만 자기 객관화를 해나가는 정도에 따라 상대편에서는 다른 풍경을 본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에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공감대 없이 자기 능력을 과대 지각하며 오직 자신만 특별한 존재라는 망상에 빠져 산다. 운동권이라는 말은 세상의 부정에 대항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민주 정부가 세워지면서 보수 언론이 ‘운동권식 국정운영’, ‘운동권식 권모술수’, ‘운동권식 정략’ 등의 레퍼토리로 진보 진영을 낙인화하는 비판에서 시작된 말이다.

민주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재벌은 수조 원의 비리를 저질러도 무죄가 되고 대통령과 기득권자들은 법을 무력화하며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 죄를 저질러도 언론에서조차 다루지 않는다. 반면, 진보 인사나 시민들에게는 조그마한 법 조항을 문제로 가혹한 처벌을 선동한다. 이것을 시정하고자 자신의 이익보다 공익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운동권이다. 이들은 자유, 인권,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사회에 뿌리내리고자 전직 활동에 들어서고 자기 삶을 바쳐 현장에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 부조리와 부정의가 있는 사회에서 운동권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운동권 청산은 재벌과 기득권을 중심으로 자신의 사익을 지키려는 행위에 대해 근본적인 철퇴를 가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중심성은 아동기만의 특징은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고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친다


오랜 시간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들은 자신이 공천을 못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한다고 한다. 자신의 실패를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난 결과라고 인식하기보다 조직이 부정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주장한 보편적인 정의와 인권, 공익적 가치가 불가능해져 이 사회도 이 조직도 파멸의 길로 간다고 인식하거나,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주고 바탕이 되었던 것을 무너트려야 한다는 논리적 비약마저 생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고 자신만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며 정의의 구현자로 나선 격이다.

이런 광인 모드에 들어서면 기존 질서는 믿을 수 없는 세계가 되고, 공정한 활동은 편파성이 되며, 정의는 당파성으로 대체된다. 자신의 좌절감을 퍼부을 공적을 만들고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려고 드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윤석열 검찰 정권의 무도하고 무정한 권력에 희생당하고 있다. 요즘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입틀막 정권’으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 시기에 필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소아병적인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사람일 것이다. 낙담과 무력감에 압도당하는 것도 사치인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 힘겨운 날에도, 시간은 지나고 내일의 태양이 뜬다. 역사 속에서 언제나 씨알들이 생산과 삶의 주체였듯이 역사의 힘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 중심의 시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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