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가 이승만 덕분이면 항일 운동은 일제 덕분인가
그 외 인터뷰와 나레이션도 문제적이다.
‘이승만이 국민을 교육시켜 민주주의를 깨닫게 했으므로 4.19가 일어난 것도 이승만 덕’ ‘4.19는 이승만 잘못이 아니라 이기붕 등 주변 인물들 잘못’ ‘한국이 일찍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것도 이승만 덕’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다면 미얀마같은 주변부 사회주의국이 됐을 것’ 등 상영 내내 사실관계에서 벗어난 위험한 궤변들이 쏟아진다.
애초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혁명은 반공이념과 군경을 동원한 억압으로 부정선거를 치르고 장기집권을 시도한 이승만과 자유당 일당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만큼 4.19혁명은 이승만식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교육받은 대중의 각성이라기보다는 ‘상식’을 벗어난 패악에 대한 항거의 성격이 짙다. 이는 4.19혁명과 더불어 이승만식 북진통일론이 폐지되고 평화적 남북 교류 분위기가 대중적으로 무르익었던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4.19혁명이 이승만 ‘때문이’ 아니라 이승만 ‘덕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항일 무장투쟁이 일제하 근대화를 통해 들어온 반제국주의 이념에 기인하기에 독립운동은 일본 ‘덕분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패·비리...이승만 재산 5억 환...현재 가치로 110억
또 영화에서는 이승만의 하와이 망명 시절 집과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집을 비교하며 이승만의 검소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있듯 이승만은 독립자금을 횡령하여 임시정부 시절 탄핵 당한 전력이 있다.
무엇보다 정부 기록보존소에 따르면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 일가의 재산은 1960년 당시 각각 ‘5억 환’과 ‘15억 환’으로, 2024년 현재 가치로 계산하면 각각 110억 원과 340억 원 상당이다. 110억 원은 부패가 아니고서야 대통령의 정상적인 급여와 투자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승만 업적? 친일 관료 기용 · 반공 테러 · 분단국가 건설
‘건국전쟁’에는 역사적 사실관계의 오류도 상당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승만이 민중친화적인 인물임을 강조하며, 그의 실정을 당시 좌파들에 돌린다. 이승만 정권이 군경을 동원해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악명 높은 ‘제주 4.3과 여수·순천항쟁에서 좌익 테러가 심각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민중친화적인 지도자이기는커녕, 서구 사대적인 선민의식과 수구 우익들에 친화적인 반동적 지도자였다.
해방 후 한반도의 70% 시민들이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사실에 입각하면, 이승만의 반공 테러와 학살은 벌어져선 안 됐다.
또한 해방 후 압도 대중의 여론이 친일파 청산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이승만은 친일 군경, 관료들을 그대로 기용해선 안 됐다.
무엇보다 해방 후 모든 시민들이 통일 정부 수립을 염원했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만을 위해 미군정을 등에 업고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해선 안 됐다.
그가 ‘민중친화적’이라기보다 민중 정서와 요구의 정반대에 놓이는 이유다.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분쇄...시민학살 주범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은 이 같은 이승만 일당과 미군정의 반민중성에 맞선 민중항쟁이었다. 남로당의 개입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져 있듯 이승만과 미군정은 이 항쟁들을 잔인하게 분쇄했다.
영화가 주장하듯 제주 4.3과 여순항쟁에서 좌익의 테러가 가장 큰 문제였다는 식의 서술은 명백한 거짓이다.
제주 4.3의 경우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6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미군정과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만큼, 당시 전체 인명 피해의 최소 80% 이상, 많게는 90% 이상이 미군정과 군경을 포함한 우익 세력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여수순천항쟁도 마찬가지다.
제주 4.3에서 봉기한 민중들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일당의 명령에 불복한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여순항쟁 역시 무참한 진압 대상이었다.
여기서도 학살을 비롯, 인명 피해의 대다수는 군경 등 우익에 의해 이뤄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진압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626건(2,043명, 75.2%)에 달한 한편, 반란군과 좌익 등에 의한 희생은 74건(189명, 8.9%)에 불과했다.
이승만 체제 본질은 ‘반공 독재 파시즘’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 이승만 정권의 패악을 좋게 포장하는 것은 개똥에 금칠을 하는 시도에 다름없다.
이승만 정권은 자유도 아니었고, 민주주의도 아니었고, 반공 독재 파시즘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늘날 한국의 역사는 이승만을 격퇴한 ‘4.19민주이념 계승’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만큼은 발전했다.
‘건국전쟁’이 대중동원에 실패한 ‘노인들을 위한 영화’에 그치는 이유다.
정강산 기자wjdrkdtks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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