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대사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은 '임성근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최종 결재한다. 그러나, 뒤 하루 만에 이를 뒤집고 언론 브리핑 취소,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공수처는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이 전 장관이 언론브리핑 취소를 지시하기 직전,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진술서를 통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VIP(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이 '수사 독립성'을 침해했을 수 있다는 중대한 의혹이다. 그리고 그 핵심 피의자는 이 전 장관이다. 그런데 혐의가 인정돼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사건 관련자인 대통령이 해외발령을 냈다? 공범에 의한 명백한 해외 도피다.
둘째, 출국금지가 이렇게 쉽게 풀린다고?
법무부령에 규정된 출국금지 대상자는 “범죄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거나 “출국 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를 현저하게 해칠 염려가 있다고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이다.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고"있어서 출국을 금지당한 사람이, 국가를 대표해 외국으로 파견된다면 그건 '외교관계를 현저히 해칠 염려'가 있는 자가 되는 것 아닌가? 출국 금지된 자에게 외교관 신분을 부여해 출국시키는 것은 일종의 권력 남용이다.
출국 금지 조치를 하는 과정도 엄격하다. '별장 성접대' 사건의 김학의를 긴급출국금지한 법무부 관리와 검사들이 '절차 미비'로 줄줄이 엮여 재판정에 서는 치욕까지 겪었다. 인신을 제한하는 출국 금지는 함부로 아무나에게 조치하지 않는다. 이를 해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외교부는 출국금지된 이 전 장관에게 어떤 명분으로 외교관 여권을 발급했을까? 또 법무부 장관은 무엇때문에 돌연 출국금지를 해제했을까? 대사를 임명하고 장관에게 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셋째, 신임장 원본 대신 ‘사본’만 들고?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부터 출국까지 외교 관례와 상식은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의 신임장 수여식도 하지 않은 채 원본도 없이 신임장 사본을 들고 부임길에 올랐다. 피의자 신분인 이 전 장관을 다급하게 출국시키느라 외교부도 경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상 부임한 대사는 신임장 원본을 제출해야 주재국의 입법, 사법, 행정 수장 등 3부 요인을 만날 수 있다. 외교부는 이 대사의 신임장 원본을 조만간 외교행낭으로 호주 현지에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개구멍 출국’이라 비난하며, 외교부·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예고했다. 시민단체는 윤 대통령과 박성재 법무장관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넷째, 장관급을 호주대사에?
‘격’에 맞지 않다. 현재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주한 호주 대사관의 제프 로빈슨 대사는 부임하기 전 ‘차관보’(Assistant Secretary)가 최종 경력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한국은 호주 주재 대사로 ‘차관급’도 아니고 두 단계 높은 ‘장관급’을 보낸 셈이다. 현직인 김완중 호주 대사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1급) 출신이다.
그 자리는 ‘전 국방부장관’에게 적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전 장관이 호주 전문가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의 경력 어디에도 호주는커녕 외교관 이력도 없다.
다섯째, 이종섭의 영어 실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 전 장관은 1984년 소위 임관 이후 제21보병사단 GP소대장을 시작으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을 두루 거쳐 2010년 별을 달았다. 제7기동군단장과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하고 2019년 중장으로 전역한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국방부장관이 됐다. 그의 경력 어디에도 외교관 이력은 없다. 그러므로 이 전 장관은 이번에 초임대사로 주호주 대사에 임명됐다.
외교부는 2006년 마련된 ‘공관장 적격심사 강화방안’에 따라 초임대사는 영어시험을 쳐 적격여부를 판단한다. 적격심사에 영어시험을 도입한 첫해 24명 중 2명의 탈락자가 생겼다. 이번에 이 전 장관은 영어시험을 통과했을까?
따지고보면 국방부장관 교체가 발표된 지난해 9월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호주대사 임명까지 뭔가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같다. 지난해 야당은 이 전 장관 탄핵 소추를 추진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을 전격 교체했다. 그리고 공수처가 수사망을 좁혀오자 꼬리를 자르듯 해외 도주를 결행한 것. 나머지 지휘계통에 있던 신범철 국방차관과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은 총선 후보로 공천해 입막음하지 않았을까.
강호석 기자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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