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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에 핵무기 배치’, 한국 정부 첫 확인



이영석 기자 | 기사입력 2024/04/05 [18:59]

 

 

지난 3월 29일 연합뉴스는 한국 정부가 1993년에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 사실이 담긴 1950년대 외교문서를 공개할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생산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한반도에 핵무기는 배치됐었다

 

이번에 공개된 1993년 외교문서 내용에 따르면, 외무부는 1993년 12월 31일 제1차 외교문서 공개를 앞두고 국방부장관 등에게 협조공문을 보내 ‘한국군 감축 및 재편성, 미국의 핵무기 반입·배치’와 관련한 외교문서를 공개해도 될지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에 국방부는 “북한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거나 남북대결 구조가 해소”될 때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줬다고 한다.

 

당시 공개를 고민한 문서에는, “1958년 1월 22일부터 280밀리미터 원자포가 한국에 반입됐다”라는 문장이 나온다고 한다. (김정렬 국방부장관이 1958년 1월 28일 이승만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

 

또 “발사대 6기와 핵탄두 60발을 갖춘 미 공군 중거리유도탄부대 중 하나가 오산 공군기지(K-55)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언급한 내용도 나온다. (김정렬 국방부장관이 1958년 4월 4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

 

이로써 한반도에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됐었다는 것이 한국 정부 당국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핵무기가 한반도에 배치됐었다는 주장이나 확인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국 정부 당국의 직접적인 확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기밀 해제된 미 국무부 문건을 통해 1958년 1월경 경기도 의정부와 안양 일대에 전술핵이 최초 배치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리고 1991년 철수하기 전까지 최대 1,000개 가까이 배치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술핵 관련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있었던 주한미군의 핵무기 배치와 관련한 주장 몇 개만 살펴보면,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한반도에 처음 전술핵이 배치된 것은 주한미군이 1950년대 후반에 ‘어네스트 존(Honest John)’ 전술핵 로켓을 배치하면서부터였으며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는 핵지뢰, 서전트 단거리 핵미사일, 155밀리미터 핵포탄 등 무려 950여 발의 전술핵탄두가 배치되었다”라고 밝혔다. (박병광,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진지하게 검토하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17.)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5년에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정보공개법(FOIA)에 의해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한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 현황을 설명했다. 최 의원은 “군산의 미 공군기지에 1977년까지 중력탄 192개 등 최소 453개의 핵무기가 존재했으며, 1985년에는 151개의 핵무기가 한반도 지역에 추가 배치되는 등 1958~91년에 11개 종류의 핵무기가 16곳에 배치됐거나 배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핵배치 현황”, <한겨레>, 2005.10.09.)

 

‘선데이저널’은 2016년 1월 17일 자 기사 「핵무기의 그늘-한반도 핵무기...」에서 “미 국방성이 1978년 2월 작성한 ‘1945년부터 1977년까지의 핵무기 배치 역사’라는 일급비밀 문서에 따르면, 1961년 한국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는 611개로 필리핀보다는 10배, 미국령 괌보다는 2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국은 지난 1958년 초 핵무기가 배치된 이래 1964년까지 600개 정도를 유지하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매년 약 100개 정도씩 급격히 늘었으며 1967년 949개가 배치돼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어겼다

 

미국은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했다는 사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왔다. 이는 미국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전협정 13항 ㄹ목은 “한반도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라고 규정했다.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은 한반도 외부에서 어떠한 무기도 증원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계속 무기를 반입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9개월 동안 미국이 반입하다 적발된 무기만 해도 비행기 177대, 대포 465문, 로켓 6,400기, 기관총 1,365정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미국은 1956년 5월 31일 군사정전위원회 제70차 회의에서 남한에서 활동하는 중립국 감시활동을 중지시키겠다고 선언하고, 화이트 미8군 사령관은 1956년 6월 9일 중립국감시위원단 21명을 이동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이로써 중립국감시위원회의 감시활동은 종결되었고, 미국이 한반도에 어떠한 간섭도 없이 군사력을 증강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중립국감시위원회 활동 무력화 이후 미국의 무기 반입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급기야 1957년 6월 21일 군사정전위원회 제75차 회의에서 정전협정 13항 ㄹ목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기를 반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58년에 주한미군을 통해 핵무기가 한반도에 공식적으로 들어왔다.

 

1958년 2월 3일 경기도 의정부의 캠프 라과디아 비행장에서 이임을 앞둔 아서 트뤼도 미 제1군단장 주재로 어니스트 존 미사일과 M65 원자포에 대한 열병식이 열렸다.

 

1958년 5월 1일에는 이승만 대통령 참석 하에 어니스트 존 미사일과 M65 원자포 시범발사가 이뤄졌다.

 

이 열병식과 시범발사 시기를 봤을 때 늦어도 1958년 2월 초순 전에 한반도에 핵무기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미국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해 북한을 위협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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