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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마치 총선에서 패배한 사람처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하자

 
지금은 주제파악을 확실히 하고 있지만, 젊었을 때 나는 종종 잘난 척을 하는 좀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 내가 잘난 척 하며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생일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그래도 1년에 하루밖에 없는 날인데 의미 있게 보내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나의 잘난 척이 작렬했다. “생일만 1년에 하루뿐이야? 어제도 1년에 하루뿐이고 내일도 1년에 하루뿐이야. 뭐가 다르냐? 괜히 생일에 의미부여 같은 거 하지 마.”

이러면 뭐가 멋있어 보이는 줄 알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도 없고, 재수도 없고, 싹수도 없고, 공감능력도 없고, 하여간 뭐가 엄청 없었던 시절이었다.

생일도 1년에 하루뿐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1년에 하루뿐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맞다. 이건 전형적인 주류경제학의 시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그 하루뿐인 날이 모두 같은 의미일 수 있으랴? 인간은 감성을 가진 동물이고, 당연히 내가 태어난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기념하고픈 마음이 있다. 논리가 아닌 감성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나는 그 시절 그걸 몰랐다.

시간의 경계표

총선이 끝났다.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은 거칠 것이 없었고, 선거 결과는 전대미문의 야권 압승으로 끝났다. 기뻤고 또 기뻤다. 2024년 4월 10일, 우리는 축배를 들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승리의 기쁨을 4월 10일 그날 하루로 끝내고자 한다. 역사는 유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너무나 많은 날이 남았다. 무엇보다 대선이 3년 뒤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게는 마음껏 기뻐할 여유가 없다.

행동경제학에는 시간의 경계표와 새 출발 효과(fresh start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어느 날이건, 혹은 어느 순간이건, 그 시간을 새로운 경계로 삼아 “자, 이제 새 출발이다!”라고 선언하고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시간의 경계표는 아무 때나 잡아도 좋다.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된다. 새해 첫날도 좋고, 매월 첫날도 좋다. 심지어 이 칼럼을 읽는 그 날을 새 이정표로 삼아도 괜찮다.

칠레를 대표하는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는 새 소설 집필을 반드시 1월 8일에 시작한다. 당연히 사연이 있다. 1981년 1월 8일, 이사벨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이사벨의 할아버지가 아주 위급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사벨은 안타깝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 편지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 편지가 그를 대표하는 소설 ‘영혼의 집’의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1930년대부터 1973년까지 험난했던 칠레의 역사를 한 집안의 이야기로 담아낸 이 소설을 통해 이사벨은 남미를 대표하는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이사벨이 새 작품 집필을 1월 8일에 시작하는 이유다. 그는 그렇게 그날을 새로운 시간의 경계표로 삼고 새 출발을 한다. 1월 8일은 누구에게나 365일 중 똑같은 하루지만,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날에 예의를 갖추는 것은 이렇듯 사람에게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준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일인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윤재옥 공동선대위원장이 상황실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4.4.10. ⓒ뉴스1
 
그런 의미에서 나는 2024년 4월 11일을 나의 새로운 시간의 경계표로 삼고자 한다. 민주진영의 압승이라는 기쁨에 도취하기에는 이르다. 무언가를 성취했노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나의 마음이 방만해질 것 같아 두렵다.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는 것은 언제나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 결심은 독할수록 좋다. 총선에서 이긴 사람처럼 느슨하게 앞으로 3년을 사는 것보다, 마치 총선에서 완패한 사람처럼 와신상담하며 앞으로 3년을 사는 것이 나의 인생은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나는 믿는다.

3년 뒤 되돌아볼 오늘을 상상해보라

나의 결심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 또 한 가지 있다. 내가 지금 먼 미래에 와 있다고 생각하고, 그날을 기준으로 다시 오늘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미래의 나와 대화하기(Conversation with a future)’라는 연구가 있다. 유타 치시마(Yuta Chishima)와 안네 윌슨(Anne E. Wilson) 두 학자의 연구다. 연구 결과는 다소 복잡한데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을 추리면 이렇다.

내 결심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의외로 결심을 단단히 하는 데 효과가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5년 뒤 나는 이런 사람이 될 테야”라고 결심한다고 그 결심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5년 뒤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뒤, 그 5년 뒤의 자신이 다시 5년 전인 오늘과 대화를 나누면 결심을 실천하는 효과가 매우 높아진다. 연구팀의 연구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5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결심을 이어가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반면 5년 뒤 미래의 자신이 오늘의 자신에게 다시 답장을 쓴다면 결심을 이어가는 효과가 매우 높아졌다. 예를 들어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잘 지내지? 지금쯤 너는 내가 결심한 것처럼 이런 사람이 돼있겠지”라고 썼다면(이것만으로는 효과가 별로 없다), 5년 뒤 나 자신의 입장에서 오늘의 나에게 “그래, 네가 5년 전 한 결심 덕분에 성취가 많았어. 그리고 나는 오늘 잘 지내고 있어”라고 답장을 쓰는 것이다. 이게 효과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다.

3년 뒤 대선이 끝난 날 나를 상상해보자. 그리고 그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지를 그려보자.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3년 뒤의 내가 2024년 4월 11일 나에게 어떤 답을 할 지 다시 생각해보자.

3년 뒤 그날 나는 “그래, 네가 2024년 4월 11일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은 덕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었어”라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마음에 담는 것이다. 설마 그날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네가 방심했어.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고! 우리는 다시 암흑에서 5년을 살아야 해”라고 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3년 뒤 나 자신이 되돌아볼 오늘을 생각하면, 오늘 하루는 그 어떤 365일보다 특별하다. 그 특별한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 한다. 승리를 만끽하는 것은 4월 10일 하루로 충분하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하루를 그 어떤 날보다도 의미 있는 중요한 날로 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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