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 기자들 앞에서 머리 발언으로 하는 게 더욱 자연스러웠을 법한 일을 굳이 분리해 집무실 연설 형식으로 만든 것은 권위주의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인 나 한 사람뿐'이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인상을 받았다면 저의 과민한 반응일까요. 어쨌든 국민 보고와 기자회견을 분리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대표하는 기자의 자격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풍겨 줬습니다.
둘째, 사대주의입니다. 기자회견은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네 분야로 나눠 진행됐습니다. 이중 추가 질문까지 합쳐 정치가 9개, 외교 4개, 경제 4개, 사회 3개 등 모두 20개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외교 분야 4개 질문은 모두 외국의 외신기자들이 독차지했습니다. 아니 작정하고 외신에만 질문권을 줬습니다. <로이터통신>(영국)과 <에이에프피통신>(프랑스), <닛케이신문>(일본)과 <비비시>(영국)입니다.
이전 정권에서도 외신기자에 질문권을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외교 분야 질문에서 한국 기자를 완전히 배제한 적은 없습니다. 외교는 다른 나라의 관심사이기에 앞서 외교를 행하는 당사국 국민의 큰 관심사입니다. 외신이 아무리 한국의 외교정책에 관심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관심은 한국과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국익과 거리가 있습니다. 내부의 시선보다 외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우대하는 사대주의가 아니고서는, 이날 같은 외신 칙사 대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집무실 앉아 국민 보고를 할 때 내내 카메라에 비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문구가 적힌 탁상용 패까지 더하니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이 명패는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재임 중 자기 집무실 책상 위에 놓아뒀던 패를 본뜬 것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5월 방한했을 때 윤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알기 어려운 한국 사람들에게 이 명패를 그렇게도 과시하고 싶었던 심리는 무엇일까요. 외신기자에만 외교 분야 질문권을 독점적으로 준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MBC 질문권 배제, 보복이었나
셋째, 보복입니다. 20개의 질문이 나왔고 한 기자가 한 개의 질문을 했으니, 모두 20명이 질문에 나선 셈입니다. 그런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문화방송> 기자가 끝내 20명에서 배제된 일입니다. 지상파 방송 3사 중에서도 문화방송만 쏙 빠졌습니다.
잘 알다시피 문화방송은 윤 정권과 악연이 매우 깊습니다. '바이든-날리면' 파동을 비롯해 4·10 총선 보도까지 윤 정권은 집권 이후 사사건건 문화방송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적대시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문화방송은 한국에서 시청률뿐 아니라 공정성과 신뢰성 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가장 유력한 매체입니다. 윤 대통령이 문화방송에 질문권을 주지 말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겠지만, 문화방송 기자의 질문 배제를 보면서 '치졸한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또 20명의 질문자 중에 단 하나의 지역신문 기자가 간택됐습니다. 바로 대구의 <영남일보>입니다. 이 또한 윤 정권에 대한 지지가 가장 강한 지역에 대한 배려가 작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복과 시혜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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