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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수사하면 대통령직 위험... 채 상병 사건 10가지 의문



[조성식의 통찰] 기자들이 묻지 않는다고 진실이 땅에 묻히는 건 아니다

 

24.05.14 07:14최종 업데이트 24.05.1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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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애초 기대하지 않았기에 딱히 실망할 일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국민적 관심사인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진행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지켜본 후 납득이 안 되면 자신이 특검을 요청하겠다면서.

 

궤변이다. 과거 검찰 수사 중에 특검이 도입된 사례를 들 것도 없다. 더욱이 대통령 자신도 수사 대상에 포만약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라면 권력 남용 소지가 있다. 헌법 84조에 따라 대통령은 내란·외환죄 외에는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지만, 수사 대상은 될 수 있다. 2016년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특검 출범 전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입건해 공범 혐의를 밝힌 전례도 있다.

 

한 군인의 사망사건이 나라를 뒤흔들 정도의 국기문란 또는 국가범죄 사건으로 비화한 것은 딱 한 가지 이유에서다. 최고 권력자 또는 최고 권력기관이 개입한 의혹 때문이다. 공수처든 특검이든 제대로만 수사하면 대통령직이 위험하다는 게 이 사건을 오랫동안 취재해 온 내 판단이다.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첩 보류, 다른 하나는 수사기록 회수다. 전자는 이 사건을 1차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의 적법한 이첩 절차에 제동을 건 것이고, 후자는 해병대 수사단이 '외압'에 맞서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을 군검찰이 회수 또는 탈취한 것이다. 둘 다 전례 없고 괴이한 일이다.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과 동문서답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의혹의 물줄기를 엉뚱한 곳으로 돌렸다. 참으로 어이없는 답변의 연속이었으나, 기자들은 대통령의 논점일탈 오류를 방치하고 더 따지거나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이 묻지 않는다고 진실이 땅에 묻히는 건 아니다. 수사와 기소에 상관 없이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은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중대한 거짓말을 했다면 법 논리와 별개로 퇴진 사유가 될 수 있다.

 

이제 기자들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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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섭 국방부 장관 ⓒ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1. 2023년 7월 31일 오전 대통령실 회의에서 채 상병 사건 혐의자에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포함된 것을 두고 격노했다는 얘기가 사실인가, 아닌가? 대통령이 군 수사기관의 권한이나 직무에 개입하는 발언을 했다면 직권남용인가, 아닌가?

 

채 상병이 죽은 지 12일이 지난 이날 오전 11시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 관련 수석보좌관 회의는 이 사건의 뇌관인 이른바 'VIP 격노설'의 진원지다.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이라고 격노했다고 한다. "국방 관련해 이보다 더 화를 낸 적이 없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전언의 전언이라 법적 증거력은 약하다. 게다가 김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변심'과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개입 등 일련의 객관적 사실과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 통화/문자 기록 등에 따르면 격노 발언의 진위와 별개로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이 이 사건에 개입한 것은 명백해 보인다.

 

범죄혐의가 있는 군인 사망사건을 조사해 경찰에 이첩하는 것은 군 수사기관 책임자의 직무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민간 수사기관으로 넘겨야 하는 군 사건은 지휘권을 가진 국방부 장관도 개입하면 안 된다. 물론 대통령에게도 그런 권한은 없다.

 

2. 임성근 1사단장에 대한 군 지휘부의 문책 인사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지시를 한 적이 있나, 없나?

 

7월 30일 오후 4시 반, 김계환 사령관과 박정훈 수사단장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결재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곧바로 임성근 1사단장 문책 인사 및 후임자 인선을 논의했다. 다음날 오전 11시 17분, 김 사령관은 임 사단장에 대해 '사령부 분리파견'이라는 인사 발령을 냈다. 보직해임을 위한 사전 절차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1사단장 인사는 없던 일이 돼 버렸다. 11시 57분, 이 장관이 김 사령관에게 "1사단장 복귀"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3. 대통령실 일반 전화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전화는 대통령과 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통화기록에 따르면, 7월 31일 오전 11시 45분, 이 장관 휴대전화로 발신지가 대통령실인 일반 전화가 걸려 왔다. 송신자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인사일 개연성이 크다. 이 통화 이후 장관이 1사단장 인사를 번복하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전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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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4.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사령관에게 수사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은 대통령 뜻인가, 아닌가?

 

7월 31일 오전 11시 57분, 이 장관은 김 사령관에게 이날 오후 2시에 예정된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를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언론 브리핑은 박 대령이, 국회 보고는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 장관은 이어 유선전화로 김 사령관에게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김 사령관은 12시 2분 박 대령에게 장관 지시를 전달했다. 박 대령은 사령관 지시에 따라 일정을 취소하고 부대로 복귀했다.

 

5.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해병대 수사단장과 사령관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혐의자에서 임 사단장을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전달한 것은 대통령 의중을 반영한 것인가, 아닌가?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7월 31일~8월 1일 이틀간 박정훈 대령과 네 번 통화했는데, 그때마다 장관 지침을 내세우며 사건 인계서에 기재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특정하지 말고 "직접적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고 요구했다. 유 법무관리관은 8월 1~2일 김 사령관과도 6번 통화하면서 같은 요구를 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 2조(신분적 재판권) 2항과 228조(군검사, 군사법경찰관의 수사) 3항, 대통령령 제32520호(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7조)와 연계된 국방부 훈령 제2682호(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 7조)에 따르면, 군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민간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때 인지통보서를 작성해 송부해야 한다. 인지통보서 양식을 보면 피의자 인적사항과, 죄명, 인지 경위, 범죄사실 등을 적게 돼 있다.

 

6.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1사단장 인사 문제를 지속적으로 챙긴 것은 대통령 지시인가, 아닌가?

 

7월 31일 이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오후 4시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하기 전 임 사단장의 인사부터 챙겼다. 사령부 파견 인사를 취소하고 정상 복귀시키라는 명령이었다.

 

이어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인 오후 2시 17분 관계자들을 소집해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강조한다. 국방부 법무관리관, 대변인 등이 배석한 이 회의에서 정종범 부사령관에게 임 사단장을 휴가 처리하라고 깨알 지시를 내린다.

 

장관의 임 사단장 챙기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박진희 장관 군사보좌관은 장관과 함께 공항으로 가는 도중 정 부사령관에게 전화해 "임 사단장 휴가 처리 후 복귀"를 주문한다. 이어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던 8월 2일 오후 12시 42분에도 김 사령관에게 1사단장의 정상 근무 여부를 확인하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 강행 사실이 알려져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1사단장을 각별히 챙긴 것이다.

 

사령관에게 맡겨둬도 될 사단장 인사 문제에 장관이 지속적으로 관여한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장관은 왜 그토록 임 사단장 인사를 살뜰히 챙겼을까? 그것도 휴가 처리까지.

 

어쩌면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공수처나 특검 수사의 성패를 가를지 모른다. 과연 대통령의 지시였는지, 아니면 항간의 소문대로 대통령실과 안보실, 군검찰, 경찰을 움직이는 비선 라인의 강력한 구명 로비가 있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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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7. 김계환 사령관이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이종섭 장관에게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 강행 사실을 보고한 직후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개입한 것은 대통령의 지시인가, 아닌가? 만약 대통령의 지시 없이 공직기강비서관이 나섰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박 대령이 김 사령관에게 경찰 이첩 사실을 보고한 것은 8월 2일 오전 10시. 별말이 없던 김 사령관은 그로부터 40분 뒤 이첩 중단을 지시한다. 하지만 해병대 수사단 제1광역수사대 소속 수사관들은 이미 경북경찰청에 도착해 이첩 절차에 착수한 상태였다.

 

김 사령관은 11시 13분에야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이 장관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그즈음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몇 차례 전화하지만 유 법무관리관이 받지 않아 통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11시 52분 박 군사보좌관이 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 지시 이행 여부를 재확인한 후 오후 12시 4분에는 장관이 직접 사령관과 통화한다.

 

이후 공직기강비서관실과 경찰, 국방부, 안보실 등이 급박하게 움직인다. 12시 20분, 공직기강비서관실 박모 행정관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이모 과장에게 전화하고, 12시 40분에는 국수본 이모 과장이 경북경찰청 노규호 수사부장에게 연락한다. 12시 50분에는 휴가 중이던 임종득 안보실 2차장이 김 사령관에게 전화한다. 두 사람은 이후 두 차례 더 통화한다.

 

1시 50분에는 유 법무관리관이 노 수사부장에게 전화해 업무협조를 요청한다. 절차상 문제가 있으니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접수한 수사기록을 돌려달라는 요구였다. 7시 20분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에서 수사기록을 회수한다. 이 비서관과 유 법무관리관은 이날 오후에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직사회에서 대통령 비서관의 말은 곧 대통령의 지시나 지침으로 읽힌다. 만약 공직기강비서관이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또는 비선 라인과 연계해 사건에 개입했다면 또 다른 국기문란이다.

 

8. 이종섭 전 장관은 "이첩 보류를 지시한 건 맞지만, 수사기록 회수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그렇다면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은 대통령실의 지시로 움직인 것인가, 아닌가?

 

이 전 장관 변호를 맡은 김재훈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배포한 문서를 통해 "(사건기록) 회수는 이 전 장관이 귀국 뒤 사후 보고받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애초 수사기록 회수에 대해 "위법하지 않다"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던 이 전 장관이 공수처 소환 조사를 앞두고 '발뺌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사전이든 사후든 자신의 지휘를 받는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의 움직임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의 해명은 '관여는 했지만 주도하지는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9. 박정훈 수사단장의 보직해임과 군검찰의 기소는 대통령의 지시인가, 아닌가?

 

8월 2일 오후 김 사령관은 해병대 군사경찰의 병과장인 박 대령을 보직해임했다. 8월 8일 박 대령을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한 국방부 검찰단은 이후 죄명을 항명으로 바꾸고 상관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그 과정에서 박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하기도 했다. 박 대령이 대통령 격노설을 폭로한 직후였다.

 

만약 대통령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2017년 검찰이 기소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범죄 중에는 승마협회 감사업무와 관련해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을 좌천시켜 사직하도록 압력을 넣은 행위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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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 ⓒ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10. 언론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는데 박정훈 대령이 월권을 했다"며 외압 논란과 관련해서는 "설사 대통령실이 개입했더라도 잘못된 장관 결재와 경찰 이첩 등 절차상 문제를 조정한 것이니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홍철호 정무수석도 언론 인터뷰에서 비슷한 논리를 펴면서 "수사 외압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혹시 관련 군사법원법과 대통령령, 국방부 훈령을 읽어는 봤는가? 대통령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법령 해석도 바꾸는 게 맞는가?

 

2021년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군인 사망의 원인이 된 범죄, 입대 전 범죄 등 이른바 3대 범죄는 군 수사기관에서 '인지'하는 대로 민간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 여느 군 사건과 달리 지휘관이 개입하지 말라는 취지다.

 

그런데 사건 인계 시 인지통보서를 작성해야 하기에 기초 수사 또는 조사를 해서 범죄혐의를 파악해야 한다. 지금까지 죽 그렇게 해왔다. 물론 수사를 해서 검찰에 송치할지 말지는 경찰이 판단할 일이다.

 

만약 대통령실 논리가 맞는다면 관련 국방부 훈령은 유령 취급당해야 한다. 아울러 여태껏 이런 방식으로 민간 수사기관에 사건을 인계한 군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모두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관련 법령을 제대로 알지 못해 국민에게 그릇된 주장을 편다면 자질 문제다. 만약 알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호도한다면 도덕성 문제이자 범죄 은폐 행위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대통령직 수행의 결격 사유다.

 

이 법이 시행된 2022년 7월 이후 군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기 전에 장관에게 보고해 결재받은 것도, 군사경찰(해병대 수사단)이 민간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을 군검찰이 빼앗다시피 회수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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