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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연금개혁 미루는 정부·여당, 1%p도 합의 못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추가 질문을 더 받겠다는 의사를 김수경 대변인에게 전달하고 있다. 2024.05.09.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연금개혁을 위해 제안한 '원포인트 영수회담·3자회담'을 대통령실이 거부하면서 사실상 연금개혁 시계는 더 뒤로 밀리게 됐다.

21대 국회 마지막 일주일 안에 연금개혁을 조금이라도 진전시키자는 야당의 요구를 무시한 처사다. 윤석열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3대 개혁(교육·노동·연금)' 중 하나로 연금개혁의 속도전을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실의 회담 거부는 실망스럽다.

국민연금 개혁은 애초에 윤석열 정부가 시작한 일이다. 정부가 3대 개혁 중 하나로 밀어붙이고, 여기에 발맞춰 여당에서는 대선 직후부터 연금특위 구성을 주장하면서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연금개혁을 미뤄온 것도 정부였다. 2023년 10월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은 모수개혁 등 아무 내용이 없는 '맹탕 개혁안'이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3가지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국민의힘이 '단일안을 가져오라'며 논의 조차 거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윤석열 정부의 '맹탕 개혁안'은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든다.

당시 정부는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국회에 공을 던졌다. 이에 국회 연금특위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공론화 작업을 시작했다. 국민 500명으로 구성된 시민대표단은 3주 동안 연금개혁 의제에 대해 학습하고 주말마다 4차례에 걸쳐 토론을 진행했다. 이 같은 공론화 결과, 시민대표단은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현행 40%에서 50%로 인상하는 '소득보장안'을 선택했다.

정부가 필요하다고 한 공론화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내지 못한 개혁안, 그것도 단일안을 시민들이 의견을 모아 도출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며 연금개혁을 또 미뤘다. 정부, 여당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공론화 결과를 두고 "현재보다 재정을 더 악화시켜 재정안정을 위한 연금개혁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야당에서는 소득대체율을 대폭 양보하기도 했다. 공론화 결과인 '소득대체율 50%'에서 45%로 낮춘 안을 제안한 것이다. 소득보장 강화를 선택한 시민들의 의견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지만, 여당과의 합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소득대체율 43%를 고수하면서 '2%p(포인트)'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연금특위는 지난 7일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21대 국회 임기를 20여일 남긴 시점에서 이른 포기 선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05.24. ⓒ뉴스1


민주당은 소득대체율 45%에서 44%까지 더 양보하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4일 "연금개혁을 할 의사가 있다면 1%p 범위 내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든 아니면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가 만나든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 타결지어야 한다"고 직접 제안했다. 보험료율이 9%에서 13%로 4%p 상향되는 것을 고려하면, 보험료율이 오른 만큼만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셈이다. '소득보장 강화'라는 연금개혁의 방향성이 퇴색되지만, 여당과 합의를 위한 양보다.

여당 안에서도 모수개혁만큼은 합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보험료를 13%로 올리는 데 여야가 합의를 이뤘다는 것이 중요한 진전이지 소득대체율이 44%냐 45%냐는 큰 차이가 아니"라며 "여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즉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재명 대표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1%p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조차 포기했다.

정부와 여당이 기어이 22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를 다시 하자고 고집하는 것은 것은 공론화 결과를 '없던 일로 하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22대 국회에서 앞선 공론화를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좀 더 폭넓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대합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공론화 결과가 나왔는데 또 다른 '폭넓은 공론화'를 언급한 것은 지금 공론화를 무시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정부·여당의 회담 거부로 결국 연금개혁의 공은 22대 국회로 넘겨졌다. 22대 국회 개원 후에도 원 구성에만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을 고려하면, 빨라도 올해 하반기에나 연금개혁의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구성에 여야가 속도를 낸다고 해도 논의가 본괘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21대 국회 연금특위에서 논의를 주도하던 여야 간사를 포함해 7명의 의원들이 22대 국회에 재입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연금개혁 논의를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안에 연금개혁안이 도출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이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면 윤 대통령 임기 내 연금개혁이 결론 날지도 난망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연금개혁의 의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회적 대합의를 이끌어내서 제 임기 내에 앞으로 백년대계인 연금개혁안이 확정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확언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공론화를 통해 이미 나와 있다. 윤 대통령의 결단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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