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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나경원 잡던 대학생, 유력 정치인이 되기까지

[인플러스] 유룻 진보당 노원구위원회 청년정책위원장

4년 전, 나경원 의원의 친일 발언(“우리 일본” 등)을 규탄한 대학생. 그의 규탄 발언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220만을 넘었다. 당시 ‘아베 대변인’이라 비판받던 제1야당 원내대표에게 “대한민국 땅에서 꺼져주세요”라는 쓴소리를 던진 당찬 대학생이었던 그는 지금 ‘청년 정치인’이 되어 있다.

지난 4월 서울시의원 보궐선거(노원구 공릉동)에 후보로 출마했던 유룻 진보당 노원구위원회 청년정책위원장. 1996년생, 최연소 서울시의원 도전이었다. 단 한 명을 선출하는 보궐선거에서,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에 이어 15%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윤석열 정권 심판의 열기가 정말 뜨겁구나’를 느꼈다고 했다. 자신이 받은 15% 득표율은 “지역에서도 진보정치를 꽃 피울 수 있다는 주민들의 기대와 희망이 모인 결과”라고 돌아봤다.

그는 어쩌다가 청년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청년 정치인’ 유룻은 어떤 꿈이 있을까?

▲ 유룻 진보당 노원구위원회 청년정책위원장. ⓒ정강산 기자

‘재미있는’ 대학생활

나경원 비판 발언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내가 정치를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청년들의 정치 진출이 쉽지 않은 구조에서 그가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건, “청년들의 힘으로 승리하는 경험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청년’이라고 하면, 사회가 보살펴 줘야 하는 존재, 힘없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미래세대’라고 말하면서 청년들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은 없어요. ‘청년들이 정치를 해야 해’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청년 정치인이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움직이면 가능한 문제 아닐까?’ 생각하면서 ‘청년 정치인’의 삶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아직 20대인 유 위원장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정의로운 20대를 보내왔다’고 자부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그의 꿈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방송 작가나 PD’가 되는 것이었다. 환경미화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빠와 매일 저녁 KBS 9시 뉴스를 봐오던 초등학생. 아빠로부터 “서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길 자주 들었다.

“뉴스를 보시던 아빠는 ‘보수정권 때문에 서민들의 삶이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부르고 다녔던 게 기억나요. 그 단어가 당시 저에겐 너무 익숙한 단어였어요.”

그가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하고 제 발로 ‘학생회’라는 곳에 문을 두드린 때부터다.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고등학교 때 하고 싶었던 학생회를 못 한 아쉬움이라고 했다. 대학의 학생회 활동은 상상하지 못한 때였다.

▲ 선거사무실 개소식에서 청년들과 함께. ⓒ유룻 선본 제공

‘세월호 참사’와 ‘고공농성’

대학에 와서 방송 작가나 PD가 되겠다는 꿈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유 위원장은 대학 1학년 때, 세월호 1주기 추모대회에 갔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1년 전(2013년), 저 역시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1년 뒤 발생한 참사는 고등학생들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고3이다 보니 많은 관심을 쏟진 못했는데, 대학에 와서 세월호 1주기 추모대회에 가게 됐죠.”

세상에 태어나 처음 참가한 집회였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막아 나섰고, 경찰 차벽에, 캡사이신까지 봤다.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궁금증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내가 봐왔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지극히 일부였구나 싶었습니다.”

또 하나의 장면은, 서울광장 옆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다. 역시 1학년 때였다.

“‘기아차 불법파견 해결’을 촉구하는 두 분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태어나서 처음 본 노동자들의 모습이었겠죠.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너무 정당한 요구를 하는데 저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얘기해야 하는 건가? 그런데 왜 아무도 그들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적으로 힘이 필요한 사람들, 이들 옆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대학생’과 ‘정치’

학생들과 사회 문제를 함께 나누고, ‘대학생’과 ‘정치’를 고민하는 시간도 적지 않았다.

학과 통폐합 문제에 처했을 때 느꼈다. “학과 통폐합 문제가 우리 학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구나, 전국의 대학들이 정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구나, 개개의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였어요. 학생들이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었어요.” 대학생활에도 ‘정치’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까지도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이 한창일 때, 그는 ‘코로나대학생119’ 활동에 나섰다. 등록금을 내고도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 ‘등록금·입학금 환불 운동’을 발의했다.

“대학생활을 완전히 빼앗긴 학생들이 혼자서는 아무런 힘을 낼 수 없었어요. 집단의 힘으로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대화방을 만들고, 온라인 서명을 받고, 피해 사례 발표회도 준비했어요.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도 했죠. ‘환불해줘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졌어요.” 학교들에선 ‘장학금’ 형식을 띠고 소정의 금액을 환불해주며 여론 잠재우기에 나섰다. 교육부도, 정치권도 대학생들의 삶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학생들이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들과 동고동락하며 사회 참여 활동을 해오던 그에겐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민중이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었다. 민중당(현 진보당)을 대표하는 문구다. 대학생활을 마무리할 무렵, “대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 하나쯤 꼭 필요하지”라는 생각에 미치며 진보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 지난 1월, 서울시의회 앞에서 연 후보 출마 기자회견.

출마할 결심

대학생 유룻은 기성 정치인들을 보면서 ‘정치를 하면 다들 이렇게 바뀌나?’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386세대라 불리는 정치인들, 젊은 시절 진보적 활동을 해왔다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면 이렇게까지 바뀔 수가 있는 건가, 그들이 20~30대 청년 시기에 꿈꿨던 나라의 모습이 정치인이 되면 다른 나라의 모습으로 바뀌는 걸까? 안타까울 때가 많았어요. 지금 정치인들은 누군가에게 줄을 서기 위해 바쁜 모습이잖아요.”

‘청년 정치’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이유. 기성 정치인들이 ‘나도 저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정치’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할 말을 하는 진보정치, 국민을 위해 행동하는 정치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한다.

대부분의 청년 정치인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비례후보로 정계에 진출한다. 유 위원장은 기라성 같은 거대 양당 후보들과 겨뤘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가 선거에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단순하면서 명쾌했다.

“후보로 출마한다는 건, 거대 정당들에 있는 소위 ‘스타 정치인’처럼 특출난 후보 한 사람의 출마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의 활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당을 대표해 출마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당이 하고자 하는 정치, 진보당이 주민들과 만들고 싶은 정치를 후회없이 보여주고, 이야기 나누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출마했습니다.” 진보당을 알리는 ‘스피커’ 역할을 하겠다는 결심이었다. 2년 전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 올해 4월 두 번째 도전이었다.

15%의 비밀

그는 후보활동을 하며 검게 그을린 얼굴로 인해 ‘감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구운 감자’라는 뜻이라며 웃었다.

수도 서울에서 펼쳐지는 보궐선거에서 득표율 15%의 의미는 적지 않다. 그는 “지역에서도 진보정치를 꽃 피울 수 있다는 주민들의 기대와 희망이 모인 결과”라고 돌아봤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 심판’의 열기 역시 뜨거웠다고 했다.

유 위원장은 시의원 선거에 재도전하며 “서울시의회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것을 넘어, 윤석열 정권의 언론통제, 매국정치, 공안통치를 옹호하는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삼고 있는 것에 탄식이 나온다”면서 “국민의힘 75석, 더불어민주당 35석의 서울시의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자신임을 강조했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선 3.8% 득표했다. 2년 만에 15.8%까지 올랐다. 지지율 10%가 넘으면 정계에선 ‘유력 정치인’이라 불린다. 그는 2년 만에, 단숨에 ‘유력 정치인’이 되었다.

노원구는 전국 최초로 “우리가 낸 세금 어디에 쓸지 우리가 결정하자”는 주민대회를 만든 지역이다. 그중 공릉동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유일의 진보 구의원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 해 유 위원장은 시의원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지만, 진보당은 같은 지역에서 최나영 후보의 구의원 당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15%라는 결과는 유 위원장의 말처럼 특출한 한 명의 후보가 만든 결과가 아닌, “진보당의 생활 속 정치, 주민을 섬기는 정치, 진심을 알아봐 주신 결과”였다. 지역주민들은 진보당을 두고, 선거 때만이 아닌 “사시사철 보이는 정당”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선거에선 “윤석열 정권 심판을 바라는 진보당 후보들의 진심을 느꼈다”는 얘기도 들었다.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민들의 힘을 모아 변화를 만드는 진보당, ‘진보당을 뽑아주니까 많이 바뀌더라’는 주민분들이 많아요. 주민들 속에서 정치에 대한 효능감이 상승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 유룻 후보 선거공보물 갈무리. 유룻 후보와 최나영 구의원(왼쪽).

떨어진 후보에게 전화가 왔다

“떨어진 후보가 저를 기억하고 전화가 왔어요. 한번 만나자고 하네요….”

노원에 살고, 노원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청년들은 놀랍기만 하다. 요즈음 유 위원장은 선거 때 만난 청년들을 다시 만나 ‘청년의 삶’과 ‘청년 정치’를 나눈다.

젊은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확언했다.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정치가 청년들이 기대할 수 없는 정치로 된 것이 문제”라는 것.

그 역시 청년들을 만나면서 놀란다. 1:1 만남으로 만난 청년들, 그런데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 대해 말해요. ‘경찰이 이렇게까지 대응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약자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후진국의 모습이라며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었어요.”

“갈라치기 정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옳은 정치가 아니다”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들렸다. 그들의 입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사회’, ‘평등한 사회’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고 했다.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세월호 추모대회에서 경험하고, 고공농성 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우리사회 상식’과 같은 문제였던 것이다.

청년들은 유룻 후보를 보면서 ‘청년이 정치하는 것’, ‘청년 정치인’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청년 정치인 유룻은 그들과 청년들의 직접정치를 만들고 싶다. 먼저, 올해도 열리는 노원 주민대회에 ‘청년 원탁테이블’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각계각층 테이블에서 주민이 바라는 정치 의제를 심의한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노원 정치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노원 주민대회’ 이야기를 들은 청년들의 호응도 좋다. 그들과 함께 “청년들이 힘을 모아 변화를 만들고, 청년들의 힘으로 승리하는 경험”을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 유룻 위원장의 꿈은 ‘진보집권’이다.

‘진보집권’의 꿈

본지와의 인터뷰 도중 서울여대 학생들이 유 위원장을 찾아왔다. 유룻 후보가 선거 때 내걸었던 ‘윤석열 심판’이라고 적힌 대형 외벽 현수막을 제공했고, 학생들은 수업 프로젝트에 활용했다. 버려지는 폐현수막으로 ‘업사이클링(새활용) 북 파우치’를 만들어 유 위원장에게 내밀었다. 그의 기호(번호)가 선명히 들어간 파우치였다.

하루하루 청년들과 소통을 넓혀가느라 바쁜 유 위원장의 꿈은 ‘진보집권’이다.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정책이 실현된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고, 빨리 보고 싶습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으로 대변되는 진보정책들이 있었지만 지금 시대엔 더 새로운, 더 많은 정책들이 요구되잖아요? ‘주민이 정치의 주인’이라 여기는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유 위원장은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어느 역할이든 기꺼이 잘 해내야겠다”는 결심을 세운다고 했다. 어느 요리에나 잘 어울리는 재료이며, 그의 별명이 된 ‘감자’처럼 말이다.

조혜정 기자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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