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얼차려 중 쓰러졌다가 이틀만에 숨진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얼차려(군기훈련)는 규정에 의한 행위지만, 그것이 규정의 내용을 벗어나고 지휘자의 명령이 우선되면 폭력이고 가혹행위가 된다. 수십 kg 완전군장으로 뜀박질을 시켜 근육이 녹아내리는 패혈증 쇼크에 이르게 한 건, 과도한 군기훈련이 아니라 폭력이다. 때리고 굴려서라도 팡팡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오래된 군사문화의 폐습이 드러난 것이다. 여전히 이렇게 군대가 유지된다는 현실이 놀랍고 무섭다.
가혹행위를 지시한 중대장을 비롯해 일선 간부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당연히 엄격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초급 장교에 지나지 않는 이들에게만 책임을 물으면 끝날 일은 아닐 듯하다.
사단장과 고위급 장교들이 신병들의 인권과 안전을 우선하고 규정의 절대 준수를 지시했다면, 초급 간부가 신병을 상대로 패혈증이 올 정도의 완전 군장 체벌을 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12사단 신병 죽음의 가해자는 중대장이나 초급 간부만이라고 할 수 없다. 더 높은 직위에 있는 이들에게도 반드시 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야 이거 수변을 어떻게 내려가냐?" "못합니다 선배님 이거 하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그 장화 신고 들어가면 지금 못하고 물이 더 빠져야지"(포11대대장-포7대대장 2023년 7월 18일 통화 녹취)
임 전 사단장은 들어가란 지시도, 그런 권한도 없었다고 부인해 왔지만, 속속 드러나는 사건의 정황에 따라 그가 가장 먼저 지목되어야 할 사건의 책임자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상병 사망 사건을 재검토한 뒤 내놓은 첫 보고서에 따르면 임성근 전 사단장은 위험성 평가를 하던 부하에게 "병력 투입 안 시키고 뭐 하냐, 병력들 빨리 데리고 와"라고 투입을 다그쳤다. 지휘자의 단순한 판단 잘못이라고도 볼 수 없다. 현장 지휘관의 위험성 평가 여건을 보장하지 않았고, 사고 후에도 장병들의 안위보다는 언론의 노출을 걱정했다.
"얘들 언론 이런 데 접촉이 되면 안 되는데(...)하여튼 저 트라우마 이런 부분은 나중 문제고 애들 관리가 돼야 하거든." (임 사단장-포7대대장 2023년 7월 19일 통화 녹취록 중)
사고 보고를 하는 대대장에게 임 사단장은 함께 있던 병사의 트라우마보다 언론 접촉을 차단하라고 지시한다. 채상병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사고가 아니다. 임 전 사단장이 구명조끼나 안전 장비보다는 해병대를 상징하는 적색 티 입는 것을 강조하고, 부하들의 고언조차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시스템과 규정보다는 지휘관의 명령이 우선되고, 굴리고 윽박질러서라도 군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낡은 군사문화가 채상병과 12사단 신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로 보고된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해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일명 '격노설'을 두고 사실인가 아닌가 오랜 공방이 있었다.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은 지난달 23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느냐"며 "국가를 운영하면서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을 두고 다 격노설이라고 포장해서 심각한 직권남용을 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질에 벗어간 공방이고 대통령이 화내면 안 되는냐는 신동욱 의원의 주장은 치졸한 말장난이다.
국민이 군을 걱정하고 지켜야 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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