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에는 ‘지불분리(Payment decoupling)의 오류’라는 이론이 있다. 사람이 돈을 내고 물건을 살 때에는 행복과 불행이 교차한다. 원했던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행복이지만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불행이다.
문제는 인간이 지불의 고통을 뒤로 자꾸 미루려고 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용카드다. 신용카드는 당장 지불해야 할 고통을 뒤로 미루는 행위다. 당장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지 않기에 소비자들은 덜 불행하다고 느낀다. 불행의 크기를 과소평가하기에 씀씀이가 더 늘어난다. 지불분리가 현명한 행동이 아니라 ‘오류’라고 불리는 이유다.
우리가 다들 매월 겪는 엄청난 공포가 두 개 있지 않은가? 첫째, 월급을 받았는데 대부분이 카드값으로 빠져 나갈 때의 공포. 둘째, 내가 이렇게 카드를 많이 썼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봤는데 하나하나 전부 내가 쓴 게 맞을 때의 공포.
결국 아무리 분리를 해도 지불의 날은 오기 마련이다. 그 고통을 미리 쪼개서 나눠놓지 않으면 카드 결제일의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고 말이다.
그날이 다가온다
우리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라는 것을 준다. 학문적으로 이자의 정의는 ‘인내심의 대가’다. 내가 돈을 은행에 맡겼다는 것은 지금 당장 그 돈으로 뭔가를 사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는 뜻이다. 은행은 그 돈을 지금 당장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낸다. 즉 내 인내심이 다른 사람에게 효용을 안겨줬으므로 그 대가로 주는 것이 이자라는 이야기다.
이 과정을 김건희에게 대입하면 이렇다. 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은 절대로 덮어질 수가 없는데, 그걸 3년 뒤로 미루면 그가 치러야 할 대가의 덩치는 훨씬 커질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무려 3년이나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년 뒤에 이 사건이 다시 들춰지면 그때는 명품 가방으로 끝이 날 것 같은가? 내가 유죄라고 확신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이나 양평 고속도로 등의 청구서도 무더기로 날아올 것이다. 그 강도는 김건희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강할 것이다. 5,000만 민중이 겪은 3년 인내심의 대가가 어찌 저렴할 수 있겠나?
내가 남한테 조언 같은 거 잘 안하는데, 김건희에게 하나 하자면 나중에 받아들 청구서 중 최소한 한, 두 장은 지금 받아두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나중에 그 청구서가 한꺼번에 날아들면 절대 감당 못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많이 긁었어?’ 하는 마음에 항목 하나하나를 살펴봤는데 그게 다 당신이 긁은 게 맞을 때 들이닥치는 그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결제일이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이 멀지 않았다. 크레디트 카드 페이먼트 데이 이즈 커밍! 커밍 순!
“ 이완배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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