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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의 이론적 문제, 무대를 내려온 ‘연방제’

1. 윤석열 정부의 삼탕 정책, 촌스런 ‘8.15 통일 독트린’
2. ‘연합제’와 ‘연방제’의 40여 년 대결 시대
3. 연방제의 퇴장, 남북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전환
4. 남북관계의 두 가지 경로, 전쟁이냐 평화협정 후 관계 정상화냐?
5. 자주민주통일 노선의 변화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1. 윤석열 정부의 삼탕 정책, 촌스런 ‘8.15 통일 독트린’
윤 정권은 ‘독트린’이란 영어를 연모하여 언젠가 이 용어를 꼭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독트린(doctrine)이란 먼로 독트린, 할시타인 독트린처럼, 일국의 정치지도자가 향후 정책에 대한 새로운 원칙과 교리를 설파할 때 주로 쓰는 미국식 정치 용어이다. 독트린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아무런 새로운 내용이 없는 재탕, 삼탕 통일정책에 독트린을 붙이는 것은 국민 기만이거나 정신질환이다.
윤석열의 ‘8.15 통일독트린’은 한국이 근 30년 동안 유지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통일원칙이나 교리와 비교할 때,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더 후퇴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말은 남북 공존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제도) 확장 원칙에 기초한 남북통일방안이다. 북이 이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마치 북이 사회주의 제도 확장 원칙으로 남한과 통일하자는 제안과 같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독트린이 차이가 있다면 기존 남한의 통일정책이 설정했던 남북 사이의 일정한 공존의 교류 과정 (화해 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마저 생략하고, 노골적으로 남한 자본주의제도 확장을 ‘자유통일’로 포장하여 제시한다는 것이 차이다. 사실상 이승만 ‘북진통일론’의 2024 버전이다. 이는 정치협상에 의한 통일정책 포기선언 이며, 강요와 강제에 의한 공격적 흡수통일 정책이다.
남한에서 첫 통일방안이 나온 것은 생각보다 늦다. 1980년대 초이다. 한국전쟁 이후 멸공을 외치던 이승만, 박정희시대에는 전쟁통일 이외에 평화적 통일방안이 공식적으로 없었다. 정전체제, 즉 전시분단 체제에서 북을 적이 아니라 최소한 상생의 공존의 대상으로 통일을 이야기할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3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첫 작품이 전두환 정부가 내놓은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1982) 인데 급조라서 조금 조악했다. 얼마 안 가 이를 가다듬어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1989, 노태우 정부)이 나왔다. 이 방안을 계승하고 종합하여 완성도를 더 높인 통일방안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94년, 김영삼 정부)이다. 이 방안이 이후 남한의 대표적 통일방안이 되었다.
한국에서 이러한 통일정책이 나온 것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조선(북한)이 조선로동당 6차 당대회(1980년)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남측에 제안한 것이 자극이 되었다. 북이 통일정책의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으로 나오자, 이를 방어적 차원에서 대응할 남한의 통일방안이 절박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북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응하고, 사실상 그것을 비판, 반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통일방안이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과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었다.
남한 통일 방안들의 원칙과 교리는 본질적으로 모두 같다. 원판, 재탕, 삼탕의 통일 방안들의 속 내용은 모두 ‘자본주의 확장’ 통일방안이다. 이 통일방안들의 모순과 한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사실상 통일을 미루자 또는 자본주의 체제로 통일하자’ 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마지못해 평화통일 절차를 표방하지만 속내는 흡수통일이나 자본주의 통일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사실상 상대가 받을 수 없는 ‘통일불가’ 방안들을 통일로 포장하고 있다. 역대 한국의 통일방안들이 反(반) 통일방안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2. ‘연합제’와 ‘연방제’의 40여 년 대결 시대
통일방도에는 ‘정치협상에 의한 통일’과 ‘전쟁에 의한 통일’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남북이 공개적으로 통일정책을 말할 때, 통일방안은 본질상 남북 당국이 합의 가능한 평화적 통일방안을 의미한다. 즉 거족적 남북 정치협상을 통한 통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래 통일방안이란 말은 평화 통일을 의미하며 ‘전쟁통일, 흡수통일, 적화통일의 개념은 배제된다. 북을 자본주의로 흡수통일하거나, 남을 사회주의로 제도통일을 하자는 말은, 통일하지 말고 계속 싸우자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평화통일 방안은 당연히 남북이 상호 주권 실체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려면, 북이 남측 지역정부를 인정하고, 남한이 북측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합법적으로 인정한 기초에서 새로운 통일 중앙정부와 중앙의회를 만들어 새로운 통일국가를 창설하는 방법밖에 사실 다른 방법이 없다. 두 개의 정부를 인정한 기초에서 하나의 단일한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공존 원리에 기초한 가장 합리적 통일 방안이 바로 ‘남북 연방제’이며, 이를 부정할 이유가 별로 없다.
연방제란 사실 별것이 아니다. 남과 북이 각기 독자성을 갖고 내치를 하되, 국방과 외교를 중앙정부에 맡겨 하나의 국호 아래 단일한 국가를 운영하자는 방안이다. 이것을 ‘1민족, 1국가 2정부, 2제도 통일방안’(1122 통일방안)이라고 부른다. 만약 남한이 진정으로 평화통일에 관심이 있었다면,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적화통일 방안’이라 공격하며 연방제 논의 자체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고,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합의 가능한 느슨한 연방제 국가통일방안을 제안해야 했다.
남한이 역대 주장한 통일방안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연합제’이다. 연합제란 국가연합 또는 ‘남북연합’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도 별것이 아니라, 남북이 두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정상회담도 하고 각료회담도 하면서 두 개의 국가운영을 조절하는 연합기구를 두자는 것이다. 이 방안의 장점은 상호공존을 인정하는 것이고, 단점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구성을 영구적으로 미루고, 2개의 국호를 가진 남북 2개의 국가가 계속 병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자는 통일방안이 아니라, 사실상 2개의 나라가 영구 공존하자는 분단유지 방안으로 충분히 오용될 수 있다. 한국의 민주당이 이 정도의 통일정책을 선호했다.
이 연합제 통일정책이 비현실적인, 또 다른 이유는 한반도 정전체제 때문이다. 정전체제(전시체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남북 두 나라가 사이좋게 연합국가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남한의 연합제 통일방안이 이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즉 이는 전시 분단체제 위에 올려놓은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통일방안이었다.
북이 제시한 연방제 통일방안이 한국에서 토론은 고사하고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이자, 금기어가 되었다. 민주당 집권기를 포함하여 한국 역대정권이 통일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정책을 추종하거나 굴복하며 북 정권붕괴를 유도하는 자본주의 흡수통일이나 전쟁통일을 추종했다는 이야기다.
남한의 통일정책에서 딱 하나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에 합의한 ‘6.15 공동선언’이다. 공동선언 2항을 보면, 여기서 처음으로 연합제와 연방제의 절충안이 추상적으로 합의 되었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이 조항은 당시 20년간 평행선을 달리던 남북의 통일방안이 역사상 처음으로 각도를 틀어 교차점과 교집합을 도출하려 한 시도였다. 물론 이 추상적 조항에 대한 해석도 제 각각이다. 민주당은 연합제의 연장으로 보았고, 한국진보는 이를 ‘연합연방제’(또는 연방연합제)로 해석하였고, 북은 이를 남측과 합의 가능한 어떤 형태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염두 해 두었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평화통일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미국이, 이 선언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깨려고 시도했음은 물론이며 오늘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3. 연방제의 퇴장, 남북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전환
2023년 12월말, 조선로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조선은 지난 80여 년의 통일 정책을 평가하며 완전히 새로운 교리와 원칙에 따라 대남, 대미, 대외정책을 내놓았다. 이 결정으로 결국, 평화통일도 연방제 통일방안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지난 칼럼에서 여러 차례 설명했으므로 참조)
남한이 그동안 ‘적화통일’ 방안이라고 저주했던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이 사라져서 이제 남한의 연합제가 승리하고 한반도에는 평화가 찾아왔을까? 결과는 정반대이다. 비참하게도 남북이 주도하는 평화통일 논의도, 남북 정치협상 자체도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조선과 미국의 최종대결의 결과물로 남게 될 한국-조선 관계와 비평화적 방도(전쟁)에 의한 ‘통일 아닌 통일’이다.
북 전원회의 결정의 의미는 한국 당국을 더 이상 통일의 상대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이 그동안 주장한 남북 정치협상에 의한 민족통일 정책을 폐기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을 더 이상 통일의 상대가 아니라 정전협정에 규정된 적으로만 규정한다는 의미이다. 교전상태의 적국이자 영토완정의 대상국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남북의 연합제, 연방제와 통일 논의도 이제 정치적으로 파산했으며 무의미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남북 간 모든 평화통일 논의와 정치협상이 무너진 상황에서 윤 정권이 ‘8.15 통일톡트린’ 이란 것을 다시 발표하니, 한반도 전문가들이 이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듣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상식을 가진 보통 정치인이 할 수 있는 ‘독트린’이 아니다.
통일을 배제한 조선은 차후 한국을 적대국이자 철저히 미국의 종속국으로 대우할 것으로 보인다. 북은 조선-한국 관계 역시 과거와 다르게 독자적 통일 사업이 아니라, 군사적 적대관계 속에 놓인 조-미관계의 하위 종속물로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북의 통일정책 변화로 한국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대북 정치협상, 정치공간도 완전히 상실했다. 미국이 보기엔 한국을 통한 미국의 대북 협상 지렛대를 잃었다. 미국이 다루는 조선(북한) 문제에 한국이 쓸모가 없어졌다. 이는 남북관계가 남북 당국 간 정치협상이나 민족통일전선의 시대가 종결하고, 북이 주도하는 대미 제압 결정론, 북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정론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남북관계의 두 가지 경로, 전쟁이냐 평화협정 후 관계 정상화냐?
남북관계는 현재 한국전쟁 이후 최악이다. 온 국민이 평화적 남북관계를 바라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 보수언론에서 이제 북이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고, 차후 시간이 지나면 북의 체제 안정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 양국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보는데 이는 오류이다.
조선(북한)이 한국에 대해 교전 중인 적대관계를 선언한 심각한 마당에, 굳이 한국과 장미 빛 관계 정상화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한국-조선 관계를 추론하자면 북은 우선 한국전쟁이 산생한 구조적 적대관계가 청산되어야 한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현재 평화적 한국-조선 관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실 정치에서는 이미 사라진 통일제안이나 가능치도 안은 어설픈 ‘대화협의체‘ 아니다. ‘정전체제’를 종결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길뿐이다.
역사적으로 정전체제를 종결하는 방도는 전쟁을 재개하는 것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뿐이다. 과거와 같은 어중간한 상태의 한국-조선 평화관계를 계속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현재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먼저 평화협정 가능성 문제를 보자. 평화협정 문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이 자신의 생사 운명 결정 문제에 대해 이러저러한 의견 제시는 고사하고 아예 결정할 권한이 없는 종속국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미(또는 남북미) 평화협정에서 이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다. 1953년 정전협정의 서명자이자 한국의 군작전 지휘권(전쟁 지휘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다. 만약 한국정부가 자주적 입장에서 북과 평화협정을 하자고 하면 미국은 그 싸가지 없는(?) 한국 정권부터 교체하려 할 것이다. 이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조선과 미국이고 한국이 종속변수 처지라는 의미이다.
평화협정이 성사되려면 미국의 ‘대조선 정책’이 변하는 길 밖에 없다. 평화협정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포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과 조선이 상호 일정 양보하는 길은 지난 트럼프-김정은 조미정상회담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문제는 조선 핵문제와 연동되어 있는데, 지금 조선은 핵무력을 포기하거나 핵을 두고 미국과 협상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아예 국가 헌법에 못을 박았다.
조선의 핵무력 증강 정책의 최근 양상은, 조선이 단순히 국가 핵무력완성 유지나 양적 증강문제를 넘어서, 전략 전술핵무기의 최첨단화, 인공지능화, 다종화로 미국을 압도하는 질적 군비경쟁으로 넘어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북이 미래 예상하는 평화협정의 함의는 양보협정이 아니라, 미국의 패퇴 인정이라는 것을 뜻한다.
평화협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한반도 문제의 중요 경로 중 하나는 불행히도 전쟁 가능성이다. 과거 상황과 상당히 다른 점은 북(조선)도 한국 평정 수복 전쟁을 전면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근 반세기만의 중요한 정책변화이며 조-미 강대강 대결의 현주소다. 차후 북을 침략하거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북도 한국을 수복평정, 편입하겠다고 공식선언했다. 미국이 사실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도, 북이 통일을 폐기하고 수복 평정 정책으로 전환한 부분이다. 이에 관해서 지난 칼럼에서 여러 번 해설했으므로 생략한다.
조선과 미국사이에는 이미 핵 억제력이 작동하고 있다. 즉 외교적으로 미국이 조선 핵을 인정하든 안하든, 현실적으로 양국이 전략핵으로 상대를 핵 보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인정하는 관계라는 의미이다. 이는 한반도 전쟁 양상이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구상 온갖 동맹을 엮고,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동맹을 찬미하며 강조하지만, 막상 전쟁이 발생하면 조선과의 싸움이 미국의 안보와 운명을 직접 결정하는 전쟁이 된다는 것부터 우선 유념해야 하는 전쟁이 되었다. 실제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이 자국의 안위를 위해 한국을 배신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이 전쟁문제에 대해 여러 위기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지만, 전쟁의 시기와 장소, 작전에 대한 예상, 예측 능력은 이 방면 최고 전문가들의 능력 범위도 벗어난다. 전쟁이란 예상치 못한 경우와, 복잡한 경로가 많으므로 결코 단순치 않다.
분명한 것은 현재 최첨단 전략, 전술핵을 보유한 조선에 대해, 한국이 ‘즉강끝’으로 이길 수 있다는 윤석열 정권의 호기는 망상이자 자멸 수라는 점이다. 탄핵과 정권 위기로 사리분멸을 못하는 패밀리 범죄집단 정권이 온 국민을 끌어들여 생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미국이 태평양 멀리 남의 땅에서 벌어지는 핵전쟁을 정책으로 논할 수 있다 치자. 그러나 한국 국민을 대표하는 한국의 위정자 말에서 이제 북과 전쟁 이야기가 나와서는 절대 안 된다.

5. 자주민주통일 노선의 변화 불가피
조선로동당 전원회의 결정 이후, 통일의 당사자이자 한 축인 조선(북한)이 통일정책을 폐기하면서 불가피하게 연방제통일, 남북 합작 평화통일 가능성도 멀어졌다. 대신에 ‘평정에 의한 한국편입’, ‘영토완정’, ‘전쟁에 의한 국가병합, ‘흡수통일’ 등의 용어가 부상하고 있으나, 이는 원칙적으로 남북 합작에서 벗어난 통일시도로, 통일개념에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진보의 자주민주통일 정치노선과 통일운동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자주민주통일 노선이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한국의 독자적인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운동’이고 또 하나는 남북을 포괄하는 ‘민족 통일국가 수립운동’이다. 즉 자주민주통일 운동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운동’ + ‘민족통일정부 수립 운동’의 이중 과제를 의미한다.
원래 한국진보가 예상한 유력한 통일 경로는, 한국에 민주정권이나 자주적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평화적으로 민족통일이 가능하다고 본 경로이다. 보수언론에서는 한국진보가 한국을 사회주의 정권으로 체제전복한 후에 북과 적화통일 시도한다고 악의적으로 선전하는데, 한국진보는 그러한 구상을 하거나 시도를 한 적이 없다.
북도 남한의 자주정부 수립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실에서 남한에 박정희, 전두환 군사 파쇼정권은 무너뜨렸으나 자주정권이 집권한 적은 없다. 4.19 혁명, 6월 항쟁, 촛불항쟁도 미국의 한국정치 간섭을 중단시키고, 자주권을 찾아와 자주정권을 수립하는데 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민주당 정권도 자주정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보적 민주정권이었으나 미국의 한국내정 간섭에는 꼼짝 못했다. 국가보안법도 폐지하지 못하는 중도보수정권 정도였다. 문제는 앞으로 설사 민주당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도, 또 장기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크게 개선될 여지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북이 소모적 통일 협상과 연방제를 폐기한 근본 이유로 보인다.
통일운동이란 궁극적으로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 국가형태가 앞서 설명한 연방제 또는 연합연방제 통일 방안이었다. 그런데 이 목표를 통일 당사자 한 축이 폐기하였으므로, 한국진보 혼자 이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자주민주통일’ 노선 가운데, ‘민족통일국가’ 수립노선이 사라지고 한국 변혁 과제인 ‘자주민주화’ 노선으로 전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즉, 차후 한국의 통일운동의 목표와 내용, 지위와 역할도 달라 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한국진보의 초기 반응은 두 가지 경향으로 보인다.

1)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 (자주민주통일 불변론)
2)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되,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는 경향. (기존 통일관련 운동 전면 폐기, 자주민주론)
이 경향은 모두 새로운 환경에서 진보운동을 잘하자는 충정에서 나온 경향으로, 긍정적 공통지점을 찾는 것이 과도한 비판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진보의 통일운동에서 남북 교류 협력의 영역은 자동적으로 사라졌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따라서 정세의 근본적 변화 없이 복원이 불가능하다. 한국진보가 통일운동 명칭을 폐기하든 그대로 쓰든 기존 통일운동에서 새로운 환경과 정세에 맞지 않는 부분은 정리하고, 여전히 긍정적이고 중요한 다음 내용은 계승해야 한다고 본다.
1) 반미자주화 운동 (미국의 한국 내정간섭 폐절. 주한미군 철수)
2) 반전 평화운동, 평화협정 추진운동
3) 북 바로알기운동 (조선 바로알기)
4) 민족 동질성 회복운동 (민족자주의식, 민족언어, 민족역사, 민족문화 공유운동)
크게 보면 이러한 운동은 지난 시기 시도했던 통일국가 건설 운동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면한 전쟁 위기를 막고 장기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 또는 통합하는 여건을 조성하는 운동 (통일 여건조성 운동)에 해당한다. 따라서 기존 남, 북 ,해외 3자 연대 조직이 통일명칭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진보가 다시 정리한 통일운동을 내용으로 그 명칭을 계속 써도 무방하다고 본다. 또 여전히 남북 민족이 하나 되어 번영하길 원하는 한국대중의 요구도 통일이란 개념 이외에 대체할 다른 용어가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최근 한반도는 평화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상호 고도의 전쟁 억제력으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쉽지 않은 전례 없이 복잡하고 긴장된 이중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장기적 대치정세의 움직임은 당연히 한국 국내정세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다. 국내 정치에서 ‘계엄’ 이란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탄핵정국과 제2의 촛불항쟁으로 발전하는 국내 정세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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