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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독도 조형물 철거한 안국역...'통행량 과다'라더니 외려 한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8/27 18:11
  • 수정일
    2024/08/27 18: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독립운동 테마역'에 있던 독도 조형물 폐기 처분, 외국인 관광객 눈 의식했나

27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내 독도 조형물이 철거된 자리. '독도 영상'을 송출하는 시설물을 9월 6일 이전까지 설치하겠다는 서울교통공사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4.08.27. ⓒ김도희 기자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역사 안에 있던 '독도 조형물'이 갑자기 철거되고, 폐기 처리된 배경엔 서울교통공사(공사)의 자체적인 "안전사고 위험 존재" 판단이 작용했다. 이때 공사는 독도 조형물을 기준으로 승객 통행량이 과도해 사고 발생 우려가 있다고 짚었는데, 구체적인 현장 조사나 자료도 없이 '안국역 직원의 말'만 듣고 철거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측은 오히려 통행량과 혼잡도를 "수치로 계산하는 건 실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섣부른 철거로 논란을 자초한 공사는 뒤늦게 독도 조형물 '새 단장' 등 수습책을 내놓고 있다.

27일 민중의소리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해식 의원실을 통해 공사로부터 받은 '독도 조형물 철거 경위' 설명을 종합하면, 안국역 지하 3층 대합실에 위치한 독도 조형물은 지난 5월 17일 '서울교통공사 사장 요청 사항'으로 역사 내 방치된 시설물을 조치하는 과정에서 철거됐다.

공사에 따르면 이전까지 독도 조형물을 이유로 통행의 불편이나 안전상 우려를 제기한 외부의 요청, 접수된 민원은 없었다. 대신 공사는 사장의 요청에 대한 안국역 측의 응답을 유일한 철거 당위성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공사는 안국역을 관할하는 경복궁영업사업소를 비롯해 17개 영업사업소에 "역사 내 오래되고 미관을 저해하는 각종 조형물 등을 파악하고, 필요시 이를 철거해 쾌적한 역사 환경을 조성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는데, 경복궁영업사업소는 안국역 독도 조형물을 포함시킨 '역사 내 방치된 시설물 파악 결과'를 5월 22일 공사에 제출했다.

경복궁영업사업소가 철거 의견을 낸 시설물은 독도 조형물 외에도 3호선 경복궁역에 있는 해시계와 안내판 등 총 네 개인데, 이 중 '승객 안전'을 이유로 철거를 제안한 건 독도 조형물이 유일하다. 사업소 측은 "통행량이 가장 많은 역사 중앙에 설치돼 승객 이동 동선에 지장", "통행 시 안전사고 위험 존재로 철거가 타당", "노숙자가 모형 위에서 음식물을 놓고 섭취하는 사례도 다수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의견이 회신 되자, 공사는 곧바로 독도 조형물 철거 작업에 착수했다. 독도 조형물 철거 적절성을 논의한 별도의 내부 회의나 심의 과정은 한 차례도 없었다. "관련 회의록 없음"이라는 공사 측 답변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사 측이 사후에 전한 철거 경위에는 '이태원 참사'와 '코로나'도 추가로 등장한다. 공사 측 담당자는 철거 경위를 묻자 "이태원 사고 이후 지하철 역사의 혼잡도 개선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코로나 종식에 따라 내·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며 "혼잡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오히려 논란이 불거진 뒤 거론된 '2009년 12월 설치한 조형물의 노후화'는 처음에는 큰 고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공사는 경복궁영업사업소 파악 시설물 중 안국역 독도 조형물을 가장 먼저 철거해 지난 12일 폐기 처리까지 마친 상태다. 공사 관계자는 통화에서 "소요 예산, 철거 난이도를 고려해 소액으로 할 수 있는 것, 가장 저렴하고 빨리 끝낼 수 있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진행한 것"이라며 나머지 시설물도 순차적으로 철거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독도 조형물 인근 혼잡도와 통행량을 어떻게 산출했나'라는 질문에 "통행량을 수치로, 계량적 지표로 추산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사의 동선을 잘 알고 있는 건 그 역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역에서 잘 알지 않겠나"라며 "철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안국역에서) 줘서 본사 부서에서 검토하고 철거했다. 가장 효과적인 건 역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안국역 관계자는 통화에서 '독도 조형물 철거에 영향을 미친 역사 혼잡도·통행량 측정 기준'을 묻는 질문에 "공사 측에 문의하라"며 "내부 정보라 자체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고 답을 꺼렸다.

 

 

 

26일 오후 5시 35분 안국역 대합실. 동그라미 표시는 독도 조형물이 있던 자리. 2024.08.26. ⓒ김도희 기자
26일 오후 6시 45분 안국역 대합실. 이용자가 붐비는 개찰구와 달리 대합실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동그라미 표시는 독도 조형물이 있던 자리. 2024.08.26. ⓒ김도희 기자

출퇴근 시간대에도 한산한 안국역 대합실
'3·1운동 100년역' 구경하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


그렇다면 안국역은 독도 조형물 하나도 둘 수 없을 만큼 붐비는 곳일까. 공사 측의 말만 들으면 안국역은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자는 전날과 이날, 출퇴근 러시아워 시간대에 직접 안국역을 방문했다. "안전사고 우려" 주장과 달리 대합실은 한산했다.

안국역 '출입구 구조'를 보면 대합실 방면으로 유동 인구가 적은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안국역은 두 군데의 개찰구가 있는데, 대합실을 기준으로 개찰구가 양옆에 나뉘어 있다. 인사동·조계사·경복궁·청와대 등 방향으로 가는 이들은 1·6 출구로 통하는 개찰구를, 낙원상가·북촌·익선동 등으로 향하는 이들은 2·3·4·5 출구로 통하는 개찰구를 이용한다. 지하철에서 하차하면 목적지 방향의 개찰구가 있는 계단으로 곧장 이동하는 구조이기에, 중앙에 위치한 대합실을 지나가는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다.

오히려 지하철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심히 관찰하는 이들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안국역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독립운동가의 어록을 새긴 기둥을 볼 수 있고, 승강장마다 붙어있는 3·1운동,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얼굴을 읽을 수 있는 '독립운동 테마역'이다. 잠깐 사이에도 곳곳에서 일본, 중국, 태국,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관광객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댕기 머리를 하고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일가족, 유명 제과점의 빵을 양손 가득 들고 향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독립운동 핵심 거점으로 꼽히는 안국역 인근에는 경복궁, 독립선언문 배부 터(현 수운회관 앞), 3·1운동 이후 다양한 민족운동 집회 장소였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3·1운동에 참가한 시민·학생들을 혹독하게 고문한 경성종로경찰서터(현 낙원동), 독립 만세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 등이 있다.

안국역은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내 최초 '독립운동 테마역'으로 새롭게 꾸며졌다. 때문에 역 곳곳에 독립운동 역사가 기록돼 있다. 안국역 일대에 있는 '3·1 운동 주요 장소' 지도가 영어·중국어 번역과 함께 벽 한쪽에 부착돼 있고, 기미독립선언서와 제헌헌법 사본이 전시돼 있다. 서울독립운동사가 년도 별로 설명돼 있고, 한글로 풀어 쓴 기미독립선언서의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해 새긴 계단이 있다.

이와 같은 안국역의 특색을 고려하면, 오히려 볼거리 중심이었던 역사의 갑작스러운 독도 조형물 철거는 더욱 미심쩍다. 현재 독도 조형물을 드러낸 안국역 대합실의 텅 빈 복도에는 변색되지 않은 바닥 자국만 '독도 조형물이 있던 곳' 흔적으로 남아있다.

부랴부랴 논란 잠재우기에 들어간 공사는 독도 조형물이 있던 서울 지하철역 6곳 중 안국역을 비롯해 이미 철거 조치한 2호선 잠실역, 5호선 광화문역에 독도 관련 영상 자료를 표출하는 벽체형 모니터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본래는 10월 25일 '독도의 날'에 맞춰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공사 측은 "독도의 날에 꼭 맞추지 않고 그전에라도 추진할 수 있으면 빨리하려고 한다"며 '다음 달 6일 전 설치'로 일정을 변경했다.

애초 조형물이 낡고, 독도를 잘 알리려는 취지였다면 왜 철거 전 새 조형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는지, 영상 송출을 선제적으로 진행하지 않았는지, 슬그머니 철거한 뒤 문제가 발생하니 뒤늦게 계획을 세운 건 아닌지 의구심은 짙어지고 있다.

 

 

 

안국역 벽면에 설치된 '서울독립운동사' 전시. 2024.08.26. ⓒ김도희 기자

안국역 승강장에 부착된 김좌진·홍범도 장군 사진. 2024.08.26. ⓒ김도희 기자
'독립운동 테마역'에 설치된 100년 계단. 2024.08.26. ⓒ김도희 기자
27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내 독도 조형물이 철거된 자리. 오전 출근 시간대 걸어가는 시민이 서울교통공사의 안내문을 보고 있다. 2024.08.27.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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