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에도 30도 넘는 물류센터
일하는 공간 아닌 창고로 분류
"이제 국회가 입법으로 답해야"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물류노동자 폭염투쟁 보고 및 폭염대책 입법 요구 기자회견 ⓒ 김준 기자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물류노동자 폭염투쟁 보고 및 폭염대책 입법 요구 기자회견 ⓒ 김준 기자

계속되는 이상기후로 고온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잇따라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자,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자료를 들고 국회 앞에서 폭염대책 입법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은 올해 기록적인 폭염을 겪고 있다. 서울은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면서 24일 연속으로 밤 기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때아닌 폭염에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30도가 넘는 찜통에서 일해야 했다.

연이은 사상자도 발생 중이다. 지난달 18일에도 제주도 쿠팡 CLS(쿠팡로지스틱스) 서브 허브에 출근해 물을 마시던 조 모씨가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8일에는 대전 유성구 한진택배 메가허브 터미널에서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 A씨가 쓰러지기도 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이 A씨의 온도를 확인했는데 40.9도가 나왔다.

지난 6월 근로복지공단은 고온으로 인한 질병, 열사병과 관련된 산업 재해 통계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열 관련 산업 재해는 코로나 시기 주춤했지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6년간 총 147건의 산업 재해 중, 2018년에 35건, 2019년에 26건, 2020년에 13건, 2021년에 19건, 2022년에 23건, 2023년에 31건이 발생했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28일 오전 경기 구리시 한 택배 대리점에서 택배노동자들이 선풍기에 의존해 더위를 이겨내며 작업하고 있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28일 오전 경기 구리시 한 택배 대리점에서 택배노동자들이 선풍기에 의존해 더위를 이겨내며 작업하고 있다.

야간에도 30도 넘는 물류센터

물류센터는 대부분 넓은 공간에 천장이 높고, 통풍이 잘되지 않는다. 열 차단이나 냉방시설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쉽게 상승하고 유지된다. 정부는 이런 문제로 매시간 15분씩 휴식 시간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지만,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 사항이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는 폭염 시기 온도감시단을 꾸려 폭염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고용노동부가 해야 할 일을 사실상 대신 한 거다.

감시단은 6개 쿠팡물류센터와 다이소 용인 남사 허브 물류센터의 온도와 습도를 체크했다. 그 결과 이번 달 20일 쿠팡 인천4센터 4층의 온도는 오전 8시임에도 불구하고 35.8도, 습도는 52%에 달했다. 같은 날 대구2센터 4층 B동은 36.1도에 습도 57%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대부분 물류센터의 체감온도가 30도를 넘겼다. 

감시단은 인천4센터의 경우, 야간인 19시에도 온도가 30.4도에 달해 “숨이 막히고 심장이 울렁거리는 등 어지럽다고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2024년 온도감시단 활동내용 ⓒ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온도감시단
2024년 온도감시단 활동내용 ⓒ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온도감시단

일하는 공간 아닌 창고로 분류

이들은 건축법 개정을 촉구했다. 현재 물류센터는 건축법상 단순히 물건을 쌓아놓는 ‘창고시설’로 분류된다. 물품 보관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작업자의 안전과 관련한 규정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거다.

건축법 개정을 통해 ‘노동현장’으로 분류된다면 해당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요구사항이 강화될 수 있다. 

쿠팡대책위 물류센터 제도개선 TF 문은영 변호사는 입법을 통한 제도개선 필요성과 입법과제 제안했다. ▲냉난방시설이 설치될 수 있도록 건축법 개정 ▲사업주에게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의무 부여 ▲폭염 상황에서 노동자 판단에 따라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권한 부여 ▲일정 수준 온도습도로 올라갈 경우 고열작업환경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규정 마련이다.

고열작업환경 판단의 경우,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폭염 또는 한랭 등의 기온에 의한 작업환경 위험을 위험인자로 규정하고 있다. 일정수준의 온도 습도가 발생하면 보호조치를 하거나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일부 기준이 존재하지만, 모든 경우에 명확하게 적용되는 기준이 없어 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민병조 공공운수노조 전국 물류센터 지부장은 “신문, 방송 등의 보도를 통해 연일 역대급 더위가 올 것이란 경고가 있었고, 더위로 인한 재해와 재난이 더욱 크고 더욱 많이 발생할 거란 경고가 있었다”며 “충분히 예견되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비하지 않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범죄”라고 국회를 꾸짖었다.

이어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는 안 지켜도 그만인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제 조항으로 재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업장과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엄격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