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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한동훈은 윤석열에게 90도 인사하던 사진이나 지우고 차별화 운운하라

 
1988년 노태우는 여소야대 국면으로 내몰리자 이른바 5공 청산이라는 것에 나섰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 청문회가 개최된 것이다.

MBC의 낮 12시 시청률이 무려 56%까지 치솟는 엄청난 열기가 말해주듯 민중들의 5공화국 청산에 대한 열망은 상상을 초월했다. 박철언 등 노태우 정권의 실세들은 5공화국 범죄를 언론에 흘리면서(?) 그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당시 6공 실세가 했다는 말이 “5공화국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면 국민들이 우리를 그들과 한 뿌리라고 생각한다”였단다.

이 말을 전해들은 5공 잔당들이 개빡쳤단다. “그럼 우리랑 니네가 같은 뿌리지 다른 뿌리냐? 같은 고향에서 자라서 같이 육사에 입학했고, 같이 하나회 하고 같이 혁명했는데 같은 뿌리 아니냐고?”라고 반발했다는 것이다. 5공 잔당들이 6공 실세들에 대해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는지 잘 말해주는 일화다.

그렇다면 당시 6공 실세들이 시도한 차별화는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뒀을까? 그게 될 리가 있나? 사람들 머릿속에 전두환과 노태우는 톰과 제리, 남철과 남성남, 사이먼과 가펑클, 이기동과 배삼용, 월레스와 그로밋, 서수남과 하청일 같은 한 세트다.

결국 궁지에 몰린 노태우는 김영삼을 끌어들여 권력의 상당부분을 과거의 적에게 양도하는 지경에 이른다. 잠깐의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으르렁거릴 수는 있어도 전두환과 노태우는 한 뿌리였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동훈의 차별화 시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오늘(21일) 면담을 한단다. 이 칼럼이 매주 월요일 오전에 올라가는 것이라 면담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결과를 보고 칼럼을 쓸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냥 관두기로 했다. 보나 마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보나 마나냐? 한동훈은 윤석열-김건희 부부에 대해 악화된 여론을 등에 입고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윤석열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반응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한동훈의 목적은 “나는 윤석열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한동훈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 웃기는 이야기다. 그 둘이 어떻게 한 세트에서 벗어날 수 있나? 둘 다 검사 출신에 윤석열이 집권하면서 한동훈의 출세길이 열렸는데 말이다. 윤석열 집권 내내 한동훈은 윤석열에게 찍 소리도 못했다. 윤석열이 등장하면 한동훈은 어김없이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지난 22일 밤 11시8분께 충남 서천 서천특화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점포 227개가 불에 탔으며 소방 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진화작업을 벌여 두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2024.1.23. ⓒ뉴스1

그러다가 지금 와서 차별화를? 이게 5공 내내 전두환 따까리 노릇 하다가 6공화국 들어서야 “우리는 5공과 달라요”라고 말하는 노태우와 뭐가 다르냐?

보완재와 대체재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재화 A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때 재화 B의 수요가 함께 증가하면 보완재, 반대로 재화 B의 수요가 하락하면 대체재라고 한다. 커피의 수요가 오를 때 설탕의 수요가 따라 증가하므로 커피와 설탕은 보완재다. 커피의 수요가 오를 때 홍차의 수요는 감소하므로 커피와 홍차는 대체재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전형적인 보완재였다. 둘은 한 세트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동훈이 윤석열의 대체재가 되겠단다. 설탕이 홍차가 되겠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쉽게 되겠냐?

한동훈의 무임승차를 막아야 한다

요 며칠 사이 나는 윤석열-김건희 부부에 대해 ‘내가 더 이상 이들에 대한 비판 칼럼을 쓰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부는 이제 누가 말을 더 안 보태도 그냥 망했다. ‘배 나오고 뒹굴거리는 오빠’ 이야기까지 나온 마당에 어떤 묘약이 이들을 살릴 수 있겠나?

이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국면을 틈타 무임승차를 하려는 자들이다.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년 반 동안 치열하게 투쟁하고 치열하게 진실을 파헤친 수많은 민중들의 노고 덕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평생을 서수남과 하청일로 살아온 한동훈이 듀오 해체를 선언한다. 그리고 은근슬쩍 윤석열-김건희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을 자신의 정치적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이런 염치를 쌈 싸먹은 비열한 부류의 인간들을 수 없이 봤다. 승패가 결정되기까지는 힘 있는 자들에 붙어서 얍실거리다가, 정작 권력자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반대편에 서서 투사 연기를 하는 얍삽한 자들 말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인간들을 무임승차자, 혹은 프리라이더(free-rider)라고 부른다. 그리고 경제학에서는 세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무임승차자를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게 안 되면 그 누구도 돈을 내고 승차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영방송 KBS와 MBC에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을 때까지 찍 소리도 안 하고 정권 편에서 단물을 빨아먹던 인간들이 있었다. 그런 자들이 박근혜 탄핵이 확실시되자 파업에 참여해 민주투사인 양 허세를 떨었단다.

전형적인 무임승차자들인데 안타깝게도 공영방송은 그들을 완전히 색출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도 정권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자기 살길을 위해 공영방송의 임무를 망치는 자들이 잔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90도 인사나 하다가 이제 와서 “나는 윤석열과 달라요”라며 차별화를 하는 한동훈을 절대 용인해줘서는 안 된다. 그걸 인정해주면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무임승차의 비효율을 막을 길이 없다.

오늘(21) 열리는 윤석열-한동훈 면담에서 한동훈이 뭔 소리를 하고 나올지 모르겠는데, 한 마디 확실히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 뭘 하더라도 윤석열에게 허리를 90도로 꺾고 굽실대던 사진이나 지우고 멍멍이소리를 해라. 당시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아이고 허리 분질러지시겠소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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