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사는 세계는 보통의 정서로 설명될 수 없다. 지난 4월 총선 참패 원인은 한동훈이어야 하고, 지난 당대표 선거에선 원희룡 대표가 선출돼 있어야만 하는 세계다. 카드 병정을 거느리며 국정을 주무르고 있는 하트 여왕이 왜 문제인지 왕은 잘 모른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왕이 '목을 베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사형 집행인은 '몸이 없는 머리는 벨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고, 하트 여왕의 남편인 왕은 '모든 머리는 벨 수가 있다'며 하트 여왕을 대신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논쟁을 벌이며 국사를 논하고 있는 기괴한 형국. 하트 여왕은 왕과 재판관을 향해 "선고를 먼저 내리고 재판은 나중에 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대통령은 "집사람이 많이 힘들어한다"며 "활동을 많이 줄였는데 그것도 과하다고 하니 더 자제하려고 한다"고 말했고, "(한동훈이) 나와도 계속 일 해 왔지만 나와 내 가족이 무슨 문제가 있으면 편하게 빠져나오려고 한 적이 있나"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김건희 라인' 참모들을 경질하란 요구엔 "누가 어떠한 잘못을 했다고 하면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얘기를 해줘야 조치를 할 수 있지 않나"라며 거부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회동 사진엔 '김건희 라인' 의전비서관과 한 대표가 같은 프레임 속에서 박제됐다. 굴욕적이다. 하긴, 이상한 나라에 온 건 앨리스의 잘못이지, 애초에 하트 여왕의 잘못은 아니다.
하트 여왕으로부터 '머리를 베어라'라는 선고를 언도받고 재판정에 선 앨리스가 지금 '오멜라스'를 바라보며 걱정을 하고 있는 꼴이다. 소설 속 앨리스는 여왕을 향해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며 "너흰 그냥 카드 한 벌일 뿐이야"라고 외친 후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한 대표는 그럴 수 있을까?
'윤-한 회동'에서 성과가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권 재창출' 의지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당대표에 출마하며 "정권 재창출"을 강조하며 "만약 1년 뒤쯤 그게 저라면 저는 당연히 (대선에)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 범어사를 찾아 '무구무애(인생을 살면서 허물이 없어 걸릴 것이 없다)가 적힌 족자를 받아 들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대선 주자 한동훈의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의지가 없다. 한 대표는 '중도 확장'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의지가 없다.
앨리스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여왕을 향해 반기를 들었듯, 한 대표가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한다면 '차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한 대표는 지금 겹겹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첫째, 한 대표가 인식하고 있는대로 '중도 확장'을 목표로 한다면 대통령과 영부인을 둘러싼 의혹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대통령의 경우엔 한 대표가 약속한 채상병 특검이 해법이 될 것이고, 영부인의 경우엔 김건희 특검이 해법이 될 것이다. 이 경우 대통령 탈당, 나아가 '분당'까지 각오해야 한다.
둘째, 한 대표가 설사 분당을 막고 보수 단일 대오를 유지하며 대통령 부부에 대한 처분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데 성공했다 치자. 본인이 대권을 꿈꾼다면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검찰 대통령'을 연속 두 번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명분을 제공해 줘야 한다. 한 대표가 언급한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는 지금 검찰의 모습과도 같다. 영부인의 범죄 혐의를 방치한 대가로 '영원한 행복'을 구가하고 있는 '검찰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선 친정을 향해 개혁의 칼을 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대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 어려운 일들을 전부 해낼 수 있는가? 욕심을 버리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사즉생이다. 보수를 살리고 본인의 대권을 포기할 때, 오히려 길은 열릴 수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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