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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서 확산되는 위험천만한 전쟁 개입론...“소시오패스적 발상”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10.01. ⓒ뉴시스


부정확한 북한군 참전설을 빌미로 우리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도를 넘은 주장이 여권에서 확산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직접 공급 방안을 시사했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파병된 북한군에 인명 피해를 입혀 대북 심리전에 활용하자는 내용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포착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공동언론발표 자리에서 “우리는 대원칙으로서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더 유연하게 북한군 활동 여하에 따라 더 유연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원식 안보실장과 한기호 의원의 메시지 내용은 충격적이다. 같은 날 ‘이데일리’ 카메라에 포착된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한 의원은 신 실장에게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된다면 북괴군 부대를 폭격, 미사일 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써먹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신 실장은 “넵 잘 챙기겠습니다. 오늘 긴급 대책회의했습니다”라고 답했다. 한 의원이 이어 “파병이 아니라 연락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보냈고, 신 실장은 “그렇게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

북한 파병설에 관한 정보의 정확성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 비해 여권에서 언급되는 이러한 대응 방식은 다소 과도해 보인다. 이렇게 강경 일변도의 대응 발언들이 여과 없이 나오는 일이 누적·확산되는 건 분명한 불안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들의 반복이 자칫 빌미로 작용해 북한과 수위 높은 말싸움이 오가면서 남북간 군사적 긴장에 불을 지피거나,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 입장에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레드라인을 넘나들기라도 한다면 지금보다 높은 차원의 안보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군·정보 당국이 현재까지 확보하고 있는 정보는 북한군 3천여 명이 러시아 동부 연해주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전부다. 지난 6월 양국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맺은 이후 그에 따른 새로운 군사·안보 협력 차원인지, 전장에 용병으로 투입하기 위한 목적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보다 더 높은 정보력을 가진 미국도 북한의 전투병 파병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3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했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군의 이동 목적에 대해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패트릭 라이더 대변인이 그 전날 북한군 이동과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 관계 각각의 측면과 수년에 걸친 양국의 정보·훈련 교류는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오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비준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 조약 4조의 이행과 관련된 협상을 (북한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북러 조약 4조는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면 다른 한쪽이 지체 없이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푸틴 대통령의 말은 전황에 따른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다. 객관적인 현재의 전황을 러시아가 현재 동맹국의 군사 원조를 받을 만큼 시급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군 파병 정보에 관한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판단과 우리 여권의 대응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야권에서는 우려와 비판이 거세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전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만약 트럼프가 당선이 돼서 전쟁을 끝내면, 만약 그 전에 우리가 살상 무기를 보내버리면 전쟁이 끝난 상태에서 한러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며 “우리가 왜 이렇게 앞서가느냐”고 꼬집었다.

설사 전투병 참전설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서도 김 의원은 “북한도 비판해야 되고 러시아도 비판해야 되고, 한미일이 같이 공조해야 되는 문제가 분명히 맞다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미리 입장을 정해놓으면서 우리 스스로 올가미를 맬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90여 명은 25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윤석열 정권의 전쟁 조장, 신북풍몰이 규탄대회’를 열고, 정부·여당의 긴장 조성 국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신 실장과 한 의원이 주고받은 메시지와 관련해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사주하고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들여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겠다는 저 극악무도한 발상을 우리가 용서할 수 있나”고 했다.

또한 “(이들은)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들여 정권이 맞이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며 “정권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생명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희생할 수 있다는 소시오패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 발언에 대해 “추가적으로 더 드릴 말이 없다”고 했고, 신 실장-한 의원 메시지 내용과 관련해서는 “의례적인 응대였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 강경훈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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