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월24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하는 나라입니다.
폴란드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한국의 우수한 무기를 지원할 의향이 있는지, 한국도 직접 군인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그럴 의향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저희가 인도적 측면에서 그동안 쭉 지원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러-북 협력에 기해서 북한이 특수군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한다면 저희가 그 단계별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또 한반도 안보에 필요한 조치들을 검토해놓고 시행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원칙으로서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에서도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나갈 수 있습니다.”
폴란드 기자의 질문과 연결하면 ‘북한군 활동 여하에 따라 무기를 지원하고 파병할 의향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무시무시한 얘깁니다.
국가원수 역할 할수록 안보 나빠져
하지만 저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더 무서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당한 얼굴에서 ‘내가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부심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불과 사흘 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마주 앉아 화난 표정을 짓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바닥 수준의 국정 지지율, 절대적인 여소야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한동훈 대표와의 갈등은 다 잊은 듯했습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는 조항도 있습니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중요한 외교·안보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10월28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통화했습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통화했습니다. 10월29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습니다. 두 정상은 대표단과 특사를 교환하고 양국 간 정보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10월30일에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에게 우리 정부가 가진 정보와 판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입에 전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도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이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를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김건희 여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목소리가 담긴 녹음을 공개했습니다. 대통령실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고, 명씨가 김영선 후보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리스크’ ‘명태균 리스크’를 넘어갈 수 있을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아무튼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국가의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또한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이자 ‘군 통수권자’ 역할에 치중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의 외교·안보 상황은 전보다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만약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군대를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남과 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을 치르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남북 전쟁은 순식간에 한반도로 옮겨붙을 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입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국제 정세의 변화는 특정 국가나 지도자 한두 사람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러시아에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러시아를 궁지로 몬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에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북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파병 이후 국제 정세가 요동치며 세계는 전보다 훨씬 더 위험해졌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높아가고 있는 것도 북한의 책임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북한을 러시아 쪽으로 몰아붙인 우리와 미국에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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