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재용 부당합병’으로 세금 2300억원 유출…‘한동훈 이자’ 3천만원씩 불어

정부, 엘리엇·메이슨 손해배상 소송 패소 불복…“이재용·박근혜에 구상권 청구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4.02.05 ⓒ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승계 과정에서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여파로 정부가 떠안게 된 손해배상금이 수천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부당합병으로 이득을 누린 이 회장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 추진한 불복 소송 탓에 손해배상 원금과 더불어 이자도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부당합병과 관련해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에 지불해야 할 손해배상금 규모는 2,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6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정부가 엘리엇에게 5,358만 6,931달러(판정 당시 환율 기준 약 69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이어 지난 4월에는 정부가 메이슨에게 3,203만 달러(약 438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PCA 판정이 나왔다. 지연이자와 분쟁 비용까지 포함하면 정부가 엘리엇과 메이슨에 줘야 할 돈은 각각 1,500억원, 800억원 수준이다.

엘리엇과 메이슨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를 통해 국제 중재를 제기한 건 2018년이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는 게 이유였다. 합병 당시 엘리엇과 메이슨의 삼성물산 지분은 각각 7.12%, 2.18%였다.

합병을 둘러싼 논란의 발단은 이 회장 승계였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해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 위치에 있었다. 삼성물산 지분이 없었던 이 회장은 자신이 지분 23.23%를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한다. 이 회장으로선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 지분을 낮춰야 유리했다. 실제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 1주에 제일모직 0.35로 산정됐다. 삼성물산은 자산총계가 제일모직의 3배였으나, 기업가치는 제일모직보다 훨씬 더 낮게 평가된 것이다.

합병이 성사된 배경에는 국민연금이 있었다. 지분 11.21%로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했다. 박근혜 정부와 이 회장 간 유착관계가 작용했다는 게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이 회장이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며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건넸고,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이 회장은 이 사건으로 2021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이 확정됐다.

PCA는 정부의 위법한 개입과 엘리엇의 손실 간 인과관계에 대해 “한국 법원이 다른 판결에서 다루었다”며, ‘삼성물산 주가가 삼성그룹에 의해 조작돼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이 산출됐고, 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었다’고 판시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 관련 국정농단 판결을 인용했다.

정부가 미국 헤지펀드에 대규모 손해배상을 지불하는 건 이 회장 부당승계 과정에서 발행한 비용을 국민이 낸 세금으로 때워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는 합병 책임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 국고 손실을 회복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과 문 전 장관, 홍 전 본부장은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고, 이 회장은 이들과 불법행위를 공모한 관계에 있어 구상권 청구 대상이 된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대통령 등 국가공무원들이 이 회장과 공모해 국민연금이 부당합병에 찬성하도록 위법 행위를 했고, 그로 인하여 정부가 제소를 당해 책임을 지게 생겼으니, 실제로 책임 있는 행위를 한 당사자들이 책임을 져야 된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7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조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23.07.18. ⓒ민중의소리
매일 3천만원씩 쌓이는 ‘한동훈 이자’

구상권 청구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지난해 PCA의 엘리엇 판정 직후 꾸준히 제기됐으나, 정부 대응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PCA 판정에 불복해 배상금을 내지 않으면서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 부담은 커지고 있다. 이자가 쌓인다. 참여연대는 하루 이자를 3천만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PCA는 엘리엇과 메이슨 사건의 배상금에 각각 이자율 5%(복리)를 부과했다.

불복 소송을 주창하며 이자 부담을 키운 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다. 법무부가 지난해 7월 PCA의 엘리엇 판정에 불복해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을 때 법무부 장관이 한 대표였다.

당시 한 대표는 직접 브리핑을 하며 전면에 나섰다. 그는 PCA가 국정농단 사건 판결을 인용한 것과 관련해 “국민연금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심판받은 형사 재판 결과는 법리상 궤를 달리하는 사안”이라며 “저는 이 사건을 (특검에서) 수사해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람이고 누구보다 그 전모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2016년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에 참여한 바 있다.

자신감을 보인 한 대표와 달리, 전문가들은 무리수라고 경고했다.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법무부는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국가 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 중재, 즉 PCA의 관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PCA가 국민연금을 사실상 국가기관이라고 본 판단을 반박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부 주장이 국가기관의 행위를 넓게 보는 추세에 맞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실제 영국 법원은 지난 8월, 정부의 취소 소송을 각하했다. 관할 위반 소지가 없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영국 법원 판결에 항소한 상태다. PCA 판정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며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던 한 대표는 그사이 법무부 장관직에서 사퇴하고 정계에 진출했다.

정부는 지난 7월 PCA의 메이슨 판정에 대해서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싱가포르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부의 PCA 판결 불복 과정에서 불어난 이자만 100억원이 넘는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원내대책회의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한 이후 증가한 추가 이자만 엘리엇 65억원, 메이슨 38억원으로 총 103억원이다.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는 “정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이자가 계속 불어난다”며 “정부가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