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무려 '트럼프 당선' 예언한 윤 대통령, 참모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다

[박세열 칼럼] 야당 대표의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의 거짓말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11.23. 05:01:15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과 골프 사진이 조작됐다고 말한 것이 김문기와의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부인한 것이라고 봤고,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에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는 발언에 대해선 "국토부의 요청은 있었지만 협박당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강한 부담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며 거짓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례로 금지된 유추해석이 난무해 의문을 자아내는 상황이지만, 기왕 난 판결문에 대한 법리 논쟁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이제 윤석열 정부가 '기치'로 내걸고 있는 '공정'의 문제 차원에서 사안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대통령의 거짓말에 관한 문제다. 법원이 유추해석을 자유롭게 활용하니, 유추해석 가능성이 풍부한 사례들을 몇 개 들어보겠다.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대통령실은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8년만에 골프채를 잡았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전부터 비밀리에 골프를 즐겨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미리 예견하고 골프를 쳤다고 대통령 참모들이 말을 바꿨다. 민망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트럼프 당선을 예견하고 미리 골프를 친 것'이란 변명을 생각해낸 이는 윤 대통령의 '내심의 의사'를 어떻게 부인하겠느냐며 무릎을 탁 쳤으리라.

그런데 사실 이 말도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하나 들면 지난 8월에도 윤 대통령이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당시에는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이 '될' 트럼프의 아들이자 최측근 트럼프 주니어가 마침 한국에 있던 때였다. <CBS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성남 한성대CC에서 골프를 친 날짜 가운데 8월 24일 토요일이 있다. 이 날엔 트럼프 주니어가 한국에, 그것도 윤 대통령과 약 12km밖에 안 떨어진 코엑스에 있었다고 한다. 만약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을 예측했다면 골프채를 잡지 말고 당장 트럼프 주니어를 만나러 갔어야 했다.

자, 8년 만에 골프채를 잡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에도 골프채를 잡은 적이 있다. 그러자 트럼프 당선을 예견하고 미리 골프 연습을 해 왔다고 했는데, 정작 트럼프의 혈육이자 최측근이 한국에 왔을 땐 그를 외면했다. 몇 겹의 딜레마인지 모르겠다. 트럼프 당선을 예견했다면, 8년만에 골프채를 잡았다고 한 게 이미 거짓말이 된다. 이 거짓말을 '트럼프 당선을 예견했다'는 말로 대체하려니 눈 앞의 '황금 인맥' 대신 골프채를 잡고 있었던 '바보'가 된다. 자, 거짓말쟁이인가, 바보인가.

그러다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대체 골프는 왜 친걸까? 왜 골프 친 사실을 숨긴 걸까? 하나 더, 대체 누구와 골프를 쳤을까? 윤 대통령이 골프를 치던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를 붙든 경호원들이 "동행자를 취재하러 왔느냐"고 물었다는데 '동행자'가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극비리에 만나 골프를 쳐야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정권이었으면 단 한번의 거짓말로도 사달이 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선 자잘한 거짓말이 계속된다. 대통령의 거짓말 논란은 한두번이 아니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채상병 순직 사건을 '보고받은 날' 격노했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채상병 '사망 날' 본인이 국방부장관을 '질책'했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나열하면 답변을 회피했다. "누구한테 10원 한장 피해 준 적이 없다"던 장모가 사기로 감옥에 간 것도 그렇고, "수천만 원의 손해"를 봤다던 김건희 영부인의 주식투자에선 오히려 수십억 이익을 봤다는 검찰 수사 내용이 공개됐다. '손바닥 王'자를 해명하면서 윤 대통령 측은 "세정제로 지우려 했다"고 말했는데, 김건희 영부인은 "거절할 수 없어서 쓰고 갔다(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통화)"고 앞뒤 안 맞는 말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점점 무뎌져 가고 있다. 애초에 이걸 노렸던 걸까.

정치 브로커 명태균과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영부인의 교유(交遊) 행위는 어떤가. 대통령실은 명태균과 관계를 두고 지난 10월 8일에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뒤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인 2021년 7월 초"에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에서 한 번, "얼마 후" 다시 자택에서 한번, 딱 두 차례 만났다고 설명하면서 "(대선 경선)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말했다. 전부 다 거짓말이다. 대통령과 함께 명태균을 만난 것만 4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대선 경선 이후, 당선인 시절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날에 명태균과 윤 대통령이 통화한 육성까지 공개됐다.

명태균과 처음 만난 시점도 주장이 엇갈린다. 대통령은 2021년 7월 초라고 했는데, 명태균은 언론 인터뷰에서 2021년 6월 18일이라고 날짜를 콕 찍었다. 명태균은 이후 6개월동안 매일 수차례 대통령 부부와 통화를 했다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에 선출된 날은 2021년 11월 5일. 이후로도 두달간 "매일 수차례", 심지어 부부가 함께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 '교유 행위'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다. 처음 한 해명이 명백한 '거짓말'이라는 말이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갈무리

 

무려 '예언자'의 반열에까지 등극했는데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면 되나? 안된다. 그래서 대통령은 참모가 거짓말을 했다고 사실 관계를 수정한다.

"제가 대선 당선 이후에 (명태균에게) 연락이 왔는데 그게 무엇으로 왔는지는 모르겠다. 제가 전화번호를 지우고 텔레그램에는 이름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텔레그램폰으로 온 것인지 전화로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축하 전화를 받고. 저도 어찌되었든 명태균 씨도 선거 초입에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고 자기도 움직였기 때문에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분명히 있다고 비서실에 이야기했는데, 언론에 관계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대변인이나 그런 입장에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야기하기 어려우니 경선 뒷부분 이후에는 사실상 연락을 안 했다 하는 그런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다."(11월 7일 기자회견)

'비서실이 거짓말 했다'는 단순한 말을 참으로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거짓말이 무서운 점은 거짓말 한 사람을 더이상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 익숙해지다보니 이 '진솔한' 해명에도 의심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게 된다. '나는 사실을 말했는데 비서실이 잘못했다'는 건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뻔 했는데 문책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만약 대통령실이 처음 한 해명이 '대통령의 말' 그대로 옮긴 게 맞다면? 대통령의 대국민 해명은 거짓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대통령이 말한대로 비서실이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던 건가? 자칫하면 대통령이 '위증 교사'로 몰릴 수 있으니 신중한 답변을 꼭 듣고 싶다.

윤 대통령이 '교유'한 명태균의 이력을 보면, 그는 거짓의 산을 쌓아 온 사람이다. 이미 과거에 여론조사를 수시로 조작해서 수천만 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번번 선관위에 적발되면서도 여론조사 업체명을 바꾸고 똑같은 조작 수법을 수년 째 써 왔다.

지난 대선 국면이었던 2021년 9월엔 "젊은 애들 응답하는 계수를 올려서 홍준표보다 윤석열 2~3% 더 나오게 해달라"고 거짓 조작을 지시한다. 거짓말을 무시로 하던 사람과 대통령 부부가 어울려 다녔다는 것 자체로도 이런 망신이 없다.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화가 나는 것보다, 대통령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모습에 절망하게 된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판결이 확정된다면 야당 대표의 거짓말은 대통령 출마를 못하는 정도에서 그치겠지만, 대통령의 거짓말은 국정 신뢰를 허물고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