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이 내년 1월부터 ‘주 7일 배송’을 도입하기로 했다. 온라인쇼핑과 택배업계 지각변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예고대로 시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장 택배노조와 협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대리점 측도 난색을 표한다. 그 사이 ‘주 7일 배송’ 시작은 이제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22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로 예정됐던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와 전국택배노동조합의 5차 교섭이 대리점연합회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연기됐다.
택배노조와 대리점연합회는 지난 8월 CJ대한통운이 주 7일 배송서비스인 ‘매일 오네(O-NE)’ 도입을 발표한 이후 4차례에 걸쳐 집중교섭을 진행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택배노조는 지난 13일 열‘이 당장 내년부터 ‘주 5일제’와 ‘주 7일 배송’을 도입하려 한다고도 지적했다. 택배노조는 “‘수입 감소 없는 주5일제를 시행한다’던 (CJ대한통운의)발표는 그저 홍보를 위한 공염불에 불과한 것 아니냐”며 “결국 시간만 끌다가 일방적으로 주 7일 배송을 강행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우려했다.
앞서 지난 8월 20일 CJ대한통운은 이르면 내년부터 일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해 주7일간 택배를 받을 수 있는 배송서비스 ‘매일 오네(O-NE)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택배노동자를 대상으로 수입 감소 없는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해 실질적인 휴식권 확대도 함께 추진한다고 했다.
택배업계 고객사들, ‘주 7일 배송’ 도입에 “쿠팡과 경쟁 위해선 필요”
현재 택배업계는 ‘쿠팡’이라는 경쟁사에게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도 마찬가지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택배 시장 점유율은 2022년 40%에서 2023년 8월 말 기준 33.6%로 6.4%p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점유율은 12.7%에서 24.1%로 11.4%p 증가했다.
유통업계에서는 CJ대한통운이 ‘주 7일 배송’ 카드를 꺼내는 것에 대해 쿠팡과의 경쟁을 위해선 필요한 대책이라고 봤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과의 격차가 더 좁혀지는 걸 막으려면 적어도 쿠팡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인 로켓배송과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택배업계 주요 고객사들도 CJ대한통운의 주 7일 배송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택배 시장은 물론 온라인쇼핑 시장까지 장악 중인 쿠팡을 견제하기 위해선 ‘주 7일 배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쿠팡은 여러 판매자의 물건을 미리 직매입해 자체 물류터미널에 보관하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포장 물론 배송까지 한다. 주문은 쿠팡 본사에서 접수하고 배송은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가 수행하는 식이다. 즉 쿠팡은 상품 판매 측면에서 온라인쇼핑 업체들과 경쟁하고, 배송에 있어서는 택배사들과 경쟁하고 있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배송의 강점을 앞세워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크게 앞서나가고 있다. 쿠팡의 올해 3분기 매출은 10조6,9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2%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1,481억원으로 29% 늘었다. 월간 활성 고객 수 또한 2,25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 증가했다.
반면 쿠팡의 경쟁 플랫폼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1번가는 3분기 매출 1,22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5.3% 감소했고, 14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가 이어졌다. 지마켓은 3분기 매출이 2,257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7%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180억원으로 적자규모가 지난해 동기보다 79억원 커졌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주 7일 배송이 가능해지면 서비스의 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라며 “택배사 중에서도 인프라를 갖춘 1위 사업자가 주 7일 배송을 하면 이커머스 업계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쿠팡과의 경쟁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기존에 소비자 입장에선 주말 배송서비스가 쿠팡만 가능했다. 하지만 이젠 다른 선택지가 생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도 주 7일 배송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엔 배송 측면에서 쿠팡과 경쟁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며 “주 7일 배송이 성공적으로 도입만 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쿠팡과의 경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쇼핑 업계는 택배 단가 인상을 경계하면서도 주 7일 배송의 필요성에 대해선 동의했다. 한국TV홈쇼핑협회 관계자는 “주말에도 배송이 가능하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소비자와 판매자 입장에선 환영할만한 일”이라며 “홈쇼핑의 빠른 배송에 더해 주말 배송이 더해지면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비용 부담이 커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TV홈쇼핑협회 관계자는 “주말에 배송하게 된다는 건 일종의 ‘특근(근로시간 외 더 하는 근무)’인 만큼 수수료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TV홈쇼핑 업계 입장에서는 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송출 수수료 부담이 적지 않은 만큼 비용부담이 더 커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택배노조와 협의 없이 현장선 이미 ‘주 7일 배송’ 준비 시작
... 대리점 소장 “일방적인 통보, 울며 겨자 먹기로 추진 중”
‘주 7일 배송’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CJ대한통운이 보여준 소극적인 태도를 두고 비판이 나온다. 택배노동자들과의 교섭에 대리점연합회를 앞세운 데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의 노동조건과 관계가 없는 제3자라고 주장하며 택배노조와의 교섭을 대리점연합회에 미루고 있다.
택배노조는 “현재 4차까지 진행된 집중 교섭에서 사측이 제시한 주 7일 배송 실행안은 회사가 발표한 ‘수입감소 없는 주 5일제는 온데간데없다”며 “현장의 택배노동자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수용하겠다는 내용 또한 온데간데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장 택배노동자들의 의견을 모아 택배노조가 집중교섭에서 의견을 제시하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짜 놓은 안만 고수하고 있다”며 “CJ대한통운은 실제로 택배노동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청취하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꼬집었다.
실제 택배 현장에선 ‘주 7일 배송’ 도입을 위한 근무형태 조정이 시작됐으며, 그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CJ대한통운 소속 대리점 소장 A씨는 “지난주 초쯤 터미널에 있는 지사로부터 내년 1월 5일부터 ‘주 7일 배송’을 도입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그럼 당연히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대리점들 보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택배대리점이 이미 근무 형태조정에 들어갔다고도 했다. A소장은 “대리점별로 상황에 따라 조를 짜서 주말 출근자를 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 대리점 같은 경우 물량이 적은 지역이라 6인1조로 조를 짜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CJ대한통운을 대신해 택배노조와 교섭 중인 대리점연합회는 ‘4인1조’ 근무형태를 제안한 바 있다. 4명의 배송구역을 묶어 평소엔 각자 배송구역에서 택배배달을 하다 일요일과 월요일에 1명씩만 출근해 4명의 구역과 물량을 모두 배송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택배노동자 4명이 돌아가며 일요일과 월요일에 출근해 주 7일 배송을 가능하게 한다는 구조다.
이에 대해 택배노조는 “추가인력 투입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안”이라고 일축했다. ‘4인 1조’ 운영안이 가능해지려면 일요일과 월요일에 한 명이 4명의 구역을 모두 배송해야 하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강도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처럼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며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지만, 현장에선 이미 ‘4인1조’ 등의 방식으로 근무형태 변경을 시작한 것이다.
A소장은 “대리점들도 막막한 상황이다. CJ대한통운이 막무가내식으로 내년 1월 5일부터 ‘주 7일 배송’을 시작한다고만 통보했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우선 조를 짜보기는 하는데, 솔직히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주 7일 배송에 따른 주말 수당 책정에 대해서도 대리점연합회와 택배노조가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미 CJ대한통운은 대리점연합회안을 대리점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조는 교섭 당시 휴일근무수당으로 50%의 추가 수수료 지급을 요구했다. 여기에 책임배송구역 외 다른 구역을 배송할 때 대해도 50%의 추가 수수료 지급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리점연합회 측은 ‘주 7일 배송’ 적용 첫 분기에만 주말 배송시 50%의 추가수수료를 지급하고, 이후 분기마다 10%씩 낮춰 최종적으로 25%의 추가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는 입장을 고수했다.
A소장은 “CJ대한통운은 휴일 근무에 대한 추가수수료를 50%에서 시작해 25%까지 낮추겠다고 대리점에 통보했다”면서 “이 말은 추가수수료로 대리점이 알아서 ‘주 7일 배송’을 하라는 의미다. 사실상 주 7일 배송에 대한 책임을 전부 대리점에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CJ대한통운은 ‘주 7일 배송’ 도입에 대해 말을 아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대리점연합회와 노조간에 교섭이 진행 중이고, 저희도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단계”라며 “관련 내용을 왈가왈부하기에 조심스럽다. 아직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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