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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도 거래…트럼프,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청구서 내밀듯

박민희기자

수정 2025-03-06 07:11등록 2025-03-06 05:00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중심주의와 거래주의로 재편되기 시작한 국제질서의 폭풍이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각)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손해 보는 대표적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며 “한국을 군사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종전 구상에 따르지 않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며 압박한 뒤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역시 안보의 핵심인 주한미군 감축 등을 ‘카드’로 압박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릎을 꿇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세상이 닥쳐온 것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비롯해,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에 거액의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은 2026년부터 5년간 적용할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미국 대선 직전이던 작년 10월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때도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등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 비용을 상세하게 계산해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그 비용을 한국에서 반드시 받아내려고 더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려고 2023년 ‘워싱턴 선언’에 기초해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앞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한·미 핵협의그룹의 핵심은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무기를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북핵에 대응하는 한·미 훈련을 강화·실시하는 것인데, 이를 지속하려면 한국 정부가 거액의 청구서를 감당해야 하는 탓이다.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 대해서도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후보자는 4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지난 6~8개월간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 그것이 지속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며 한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타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국에 비용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하거나, 대중국 견제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바꾸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위협을 방어하는 ‘붙박이’ 군대인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주한미군 지상군 전력을 축소해 전략적 유연성을 늘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은 중국과 직접 관련되는 문제여서 한국의 외교와 안보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전략가들은 중국을 미국 패권에 대한 핵심 위협으로 본다. 이에 따라 중국을 최대한 억제하려면 주한미군이 북한 방어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며,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중국 견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곤경에 처할 우려가 크다. 장용석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을 잘 파악해 대비하면서 주한미군 역할 조정 부분 등에서 필요한 부분은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와 동시에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와 자체 억제력을 강화하고,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해 북한의 위협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세계관에서 동맹과 우방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라는 방기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높이겠지만, 대만 방어를 포기하는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동맹에 제공해온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수록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서도 핵무장론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유사시 즉각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안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재처리 시설이나 권한이 없는 한국으로선 핵 잠재력 확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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