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감 나라', 송전탑 공사 강행에 수확도 제대로 못해
소수 소비자 위해 다수 생산자가 피해 보는 '에너지 민주화' 현장
» 익어가는 감을 바라보는 밀양 주민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주민들이 반대하는데도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는 이 나라가 어찌 민주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느냐”고 강영자(밀양대책위 상동면 주민는 말한다.
지난 토요일 밀양에 다녀왔다. 밀양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이 뉴스에 밀양이 나온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밀양은 지금 우리사회의 현안 중의 현안이 되어 있다. 몇 해전 영화배우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밀양’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아 세간에 밀양이 널리 알려졌는데 그 영화는 흥행이 성공하지 못해 밀양 홍보(?)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의 밀양은 신문의 사회면을 넘어 정치면, 경제면에까지 오르내린다. 밀양은 단순한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문제라는 말이리라.
송전탑 문제와 관련해 처음 밀양을 찾은 것은 사태 초기인 2007년께였다. 전자파 문제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방문했는데 그때 당시 밀양고등학교 교사였던 이계삼 선생이 차를 갖고 밀양역으로 마중나와 주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귀농하여 소설과 글을 쓰며 살려던 그는 요즘 하루에 서너번씩 휴대폰으로 긴급상황과 성명서를 긴 문자로 기자들에게 보내주는 밀양대책위원회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공설운동장에 많은 주민들이 모였고 시장과 국회의원들이 참가하여 반대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후에도 두세번 더 밀양을 찾아 시청강당 등에서 고압송전선로의 전자파가 건강에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9년부터 3년여간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밀양문제를 의제로 다뤄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종국에는 합의안이 파기되어 버렸다. 지금은 바뀐 밀양시장과 재선이 된 국회의원은 주민들의 입장과 반대편에 서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여러 환경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매년 12월 중순경에 하는 연말행사가 있는데 환경피해시민대회라고 한다. 작년 2012년에는 이 대회에서 밀양주민대책위원회가 환경보건시민상을 수상했고 밀양에서 네분의 여성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등뒤에 ‘송전탑 싫어~’라고 쓰인 붉은 조끼를 입은 이 분들, 모임 뒷풀이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치고는 ‘765반대 쏭’을 멋지게 뽑아 모임의 흥을 돋구었던 기억이 새롭다.
» 2012년 12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환경피해시민대회에서 환경보건시민상을 수상한 밀양송전탑반대주민대책위원회
지난주 밀양에서 이분들을 밀양대책위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강영자 성은희 두 분이다. 공사 재개로 난리가 난 지 2주가 지나 너무 늦게 왔다고 미안해 하는 필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책위원장인 김준한 신부님과 사무국장 이계삼 선생님은 구속된 주민의 구속적부심이 열리는 법원에 간다고 나서던 참이어서 반가운 악수만 하고 얼른 가보시라고 보내드렸다.
사무실에서 잠시 몇마디 나누다가 이럴 게 아니라 현장에 바로 가보자고 하여 나섰다. “잘못한 게 있으면 사람을 잡아가지 왜 남의 핸드폰을 뺏어가서 안 돌려주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라는 말을 안 써요. ‘이 나라’라고 말해요”, “영남알프스는 100m가 넘는 송전탑으로 흉물이 될 거에요”, 트럭 운전대를 잡은 강선생님과 그 옆의 성선생님 두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 송전탑 건설예정지역은 모두 반시로 유명한 곳인데 추수철에 공사가 강행되어 주민들이 수확을 제대로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 송전탑 125번과 126번 공사 반대 농성장으로 가는 길의 ‘반시 주산지 여수동’ 안내석.
지금 밀양은 ‘감 나라’다. 능숙한 운전 솜씨의 강선생님 트럭이 달리는 길가에 주렁주렁 달린 감들이 천지다. 며칠 전부터 새벽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워지고 있어 서둘러 추수를 하지 않으면 못쓰게 된다는데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송전탑 공사를 막느라 추수 때를 놓치고 있는 주민들의 애가 탄다.
상동면과 산외면 경계의 높은 곳에 위치한 송전탑 109번 현장을 먼 발치에서 살펴 보았다. 그리로 통하는 입구 길가에 열 명이 넘는 할매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뒤쪽으로 경찰버스 서너 대와 경찰들이 타고 온 승용차 수십여 대가 곳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가을 햇볕은 따사로웠지만 상동지역에는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이어서 송전탑 126번 농성장으로 이동했다. 부북면과 상동면이 연결되는 산길의 꼭대기에 농성장이 있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 오르는데 왼쪽 계곡에 잘 지은 집들이 십여 채 모여있다. “전원생활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반딧불 마을’이란 곳이에요”, “이 사람들 이제 큰일 났어요. 거대한 송전탑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형편이에요”, “이분들은 반대운동에 참여하지 않나요?”, “적극 나서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전이 내미는 공사동의서에는 사인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주민대책위의 반대서명에는 적극 참여하는 편이에요”
두세번의 경찰 검문을 거친 후에 도착한 곳은 부북면으로 넘어가는 정상에 쳐 놓은 천막 농성장.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80세, 78세 할머니 두 분이 누워있다가 일어난다. 추수철이라 할매들이 교대로 농성에 참여하는데 다음주부터는 사람이 많아질 거라고 한다. 밀양문제를 필름에 담고 있다는 젊은 남자도 천막 농성장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천막의 위치가 송전탑 126번으로 올라가는 산길 입구여서인지 경찰 7-8명이 농성 천막 앞쪽에 늘어서서 지켜보고 그 뒤로 10여개의 대형 천막이 설치되어 경찰이 24시간 농성장을 지켜(?)준단다. 농성장 아래쪽 125번 공사장과 농성장 위쪽의 126번으로 자재를 실은 헬기가 수시로 오고 가고 바닥작업하는 듯 땅땅땅하는 소리와 진동이 온 산을 울려댄다.
경찰들은 대형 발전기를 사용하여 밤에 전기를 사용하지만 농성장에는 해 넘어가면 깜깜해진다. 바가 내리면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된단다.
5시가 넘어가자 경찰병력이 20여명씩 두 번에 걸쳐 지나간다. 모두 배낭에 침낭이 꽂혀 있다. 교대병력으로 새로 투입된 듯 하다. 깊은 산속에서 수백여명의 경찰병력이 상주하며 끼니마다 일회용 식기를 사용하며 생활하는 각종 쓰레기가 여기저기 골짜기를 더럽힌다. 안전모를 착용한 한전의 공사인력도 두 줄로 이동한다.
“우리도 경찰 지날 때 인사를 잘 해야 할까봐”, “왜?”, “한전사람들 경찰을 지날때마다 인사를 깍듯이 해. 자기네를 지켜준다고 고마워 하는 거지. 누가 알어? 우리도 인사 잘 하면 경찰이 우리편 되 줄지”, “아이구, 앓느니 죽는다” 밀양알프스 줄기를 지키는 상동면 송전탑반대대책위의 핵심 멤버 두 분의 대화다.
» 송전탑125번 공사가 진행되는 현장을 지켜보며 주민통행을 막고 있는 경찰병력.
» 송전탑126번 공사장으로 입구를 지키고 선 경찰.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한전의 공사인력이다.
» 126번 송전탑공사강행에 반대하는 주민 농성장과 경찰 병력.
오늘은 저녁 6시부터 단장면 용회동 마을회관 앞에서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라서 농성장 천막 입구의 가림막을 내리고 모두 차로 산을 내려왔다. 요즘은 송전탑 공사도 밤에는 하지 않는단다.
하루종일 농성장을 지킨 할머니 두 분은 댁에 내려드리려고 차가 잠시 멈췄는데 운전하시는 강선생님이 돌아와 뒷자리의 우리에게 감을 건넨다. 밀양 감맛을 보고 싶어하는 눈치를 챘나 보다. 달콤한 감맛에 두 개를 금방 해치웠다. 아까 들어갈 땐 안보였었는데 ‘반시주산지 여수동’이라 쓰인 마을입구의 입석이 감 맛을 보고 난 다음에야 눈에 들어왔다. ‘반시’는 조금 납작하고 네모난 모양의 감을 말한다.
문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하는 차 안. “구속적부심이 기각됐다는 문자네. 풀려난다는 말이지?”, “환경연합 이상홍 국장도 풀려났으니 그런 말이겠지”, “아니, 가만, 구속적부심은 우리 쪽에서 신청하는 건데 기각됐다면 풀려나지 못한다는 말이잖아?”, “주민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계속 구속한다는 거야?”
면마다 돌아가면서 열리며 주민들의 힘을 돋구는 문화제가 오늘은 마침 구속된 주민이 사는 상동면에서 열려 모두들 석방 환영 분위기를 기대했던 터라 문화제 행사를 알리는 길놀이 농악소리가 왠지 투박하게 들리는 듯했다.
실망한 주민들을 달래려는 듯 문화제 진행 사회자와 문화패들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를 쓴다. 여러 곳의 농성장에서 모여드는 150명의 사람들로 행사장이 가득 찼고 마을회관 정자를 무대로 한 문화제의 열기는 해 떨어져 썰렁해진 주위를 달구어 갔다.
무대앞에 놓인 몇 개의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와 다름없다! 우리는 강도에 맞서 싸울 것이다!’, ‘보상이 필요없다고 수천번도 더 이야기했다. 한전은 귀가 먹었는가?’, ‘이 억울하고 분한 마을을 누가 알아주겠노’
» 밀양시 단장면 용회동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 문화제. 구속된 이 마을 주민의 구속적부심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에 낙담했던 주민들이 창원지역 문화패의 공연에 다시 힘을 냈다.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을 다녀온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백도명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은 ‘밀양 문제는 한국사회의 에너지 민주화 문제’라고 표현한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 사회는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측면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어, 우리 사회의 일부가 대부분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다른 일부는 이러한 에너지 생산을 위해 대부분을 희생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밀양사태는 우리나라에서 에너지를 사용하여 이득을 얻는 사람과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희생하여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심각한 간극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이는 일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오늘 함께 밀양을 방문한 언론인 안종주 선생은 10월초 <프레시안>에 “국민은 왜 밀양 편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정책은 그 정책의 수요자, 즉 국민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정책 시행 과정에서 지역 주민이나 국민과 심각한 갈등이나 마찰이 빚어졌을 경우 반드시 그 갈등요인을 민주적이고도 합리적으로 해소하고 난 뒤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회는 건강 사회요 그렇게 하지 않는 사회는 불통 사회이며 위험 사회이다.”
글·사진 최예용/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choiyy@kfem.or.kr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