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실험과 재분배 정치의 실증적 근거
기본소득에 대한 회의론은 주로 '근로 의욕 저하'와 '재정 부담'에 집중된다. 그러나 최근의 해외 실험 결과들은 이러한 우려가 실증적 근거를 갖지 못함을 보여준다.
핀란드의 2017-2018년 기본소득 실험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무작위로 선발된 2,000명의 실업자에게 월 560유로를 조건없이 지급했다. 수급자들의 정신적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현저히 개선되었고, 생존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자 오히려 더 적극적인 경제 활동이 나타났다.
케냐에서 진행 중인 GiveDirectly의 장기 기본소득 실험 역시 유사한 결과를 보인다. 12년간 매월 22달러를 지급받는 마을과 일시불로 지급받는 마을의 대조군을 비교한 결과, 기본소득 수급 마을에서 창업과 교육 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특히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러한 실험 결과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기본소득은 게으름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창의성을 촉진한다. 생존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면 개인은 더 장기적이고 의미있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가장 현실적 장애물은 재원 마련이다. 이는 기술적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의지의 문제다. 포괄적 조세 개혁을 통한 다각적 접근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토지보유세 강화다. 토지는 개인이 창조한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의 산물이다. 지하철역 주변 땅값 상승은 개별 토지 소유자의 노력이 아닌 사회적 투자의 결과다. 토지 보유에 따른 세금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면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면서 안정적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탄소세와 환경세 도입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재원 마련을 동시에 달성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탄소 배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내재화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에도 부합한다.
셋째, 디지털세 신설이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창출하는 막대한 부가가치에 대한 합당한 과세가 필요하다. 이들 기업은 한국의 디지털 기반시설과 인적 자원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지만, 세금은 본사 소재국에만 납부하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사회적 신뢰 회복과 포용적 성장 모델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한 재분배 정책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전략적 투자다.
현재의 극심한 불평등 구조는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한다.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20배 격차는 단일한 사회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분열은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위협한다.
결국 분배 우선주의는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질적 전환을 추구한다. 소수의 승자 독식 구조에서 벗어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포용적 성장 모델로의 전환이다. 이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미래 사회의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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