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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10년차 장애인의 '탄핵부터 대선까지'...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하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06/16 06:58
  • 수정일
    2025/06/16 06: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0년 전 꽃동네를 나와 서울에서 자립생활을 이어가는 중증 뇌병변장애인 최영은의 탈시설기를 한 편의 이야기로 엮었다. 윤석열 파면부터 대선 이후까지, 그와 나눈 대화와 그가 증언한 글을 석 달간 모았다. 탈시설 장애인이 새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기자말]

▲ 지난 3월 27일 서울 창동역 인근에 있는 집으로 퇴근하는 길 최영은씨(오른쪽)와 정지원 활동지원사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웃어 보이고 있다. 영은씨는 장애인 거주시설 꽃동네에서 20년을 살다 나와 자립생활을 이어가는 탈시설 장애인이다. ⓒ 복건우

"추워서 껴입다 보니 알록달록하네요."

빨간 후드집업을 입고 빨간 전동휠체어를 탄 한 여성이 경복궁역을 빠져나와 민트색 패딩을 덧입었다. 일(24도)·월(21도)·화(21도)·수(24도)를 지나 기온이 뚝 떨어진 목요일(19도) 아침이었다. 휠체어 등받이엔 빗방울이 떨어졌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구호와 노랫소리가 나는 쪽으로 그가 손잡이를 밀고 휠체어를 굴렸다.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에 나선 중증 뇌병변장애인 최영은(34)의 출근길이었다.

윤석열 탄핵 광장(광화문 원표공원·서십자각) 근처엔 '장애인 인권침해 해결'을 외치는 또 다른 광장(서울정부청사 앞)이 있었다. 윤석열 탄핵 전 이곳으로 출근한 영은은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라는 주황색 조끼를 빨간색과 민트색 외투 사이에 껴입었다. 시설에서 살다 나온 장애인들의 '시국선언문'이 영은이 멈춰 선 단상 아래 구호처럼 터졌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한 우리의 긴 세월은 일상이 곧 계엄령 상태였다. 자유가 없고 인권이 없었다. 아직도 시설에 3만 명의 장애인이 남겨져 있다. 감금과 통제 속에서 하루하루 3만 개의 삶이 지워진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작성한 '탈시설장애인 시국선언문' 중)

하루하루 지워진 '3만 개의 삶'(2023년 말 기준 시설 1529곳 2만 7352명 거주) 중 하나였던 영은을 만난 건 지난 3월 27일이었다. 영은은 장애인 거주시설 꽃동네(충북 음성)에서 20년을 살다 나와 자립생활을 이어가는 탈시설 장애인이다. 영은의 이야기는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함께 탈시설한 남편(이상우·38)과의 결혼, 제주도 신혼여행, 임대아파트 이사로 이어졌던 이야기가 이번엔 대선 국면과 맞물려 또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다.

올해 탈시설 10년(2025년 3월 13일)을 맞은 영은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내란 사태와 조기 대선을 함께 통과했다. 지난 석 달간 영은과 나눈 대화와 휴대전화로 주고받은 글들엔 그가 바라는 탄핵 이후 세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 "후배 장애인들"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탈시설 선배' 영은이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탈시설 10년, 평범해 특별했던 '자유'

▲ 영은씨가 서울 경북궁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열리는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 참사 해결을 위한 결의대회’로 향하고 있다. ⓒ 복건우

▲ 영은씨가 음성지원 앱 '진소리'를 사용해 휴대전화 자판으로 글자를 입력하고 있다. ⓒ 복건우

"영은씨 혼자 출근했어요?"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영은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휴대전화 자판을 두드렸다. 오른손으로 '진소리'라는 음성지원 앱을 켠 뒤 자음과 모음을 한 자 한 자 눌렀다. 단어와 단어 사이 띄어쓰기도 빼먹지 않았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 청아한 기계음으로 음성 한 문장이 전달됐다.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함께 왔어요." 영은은 자신의 활동지원사를 "지원쌤"(정지원 활동지원사)이라고 불렀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영은을 지원쌤이 뒤따랐다.

출근 전부터 퇴근 후까지 지원쌤은 영은의 모든 동선에 함께했다(오전 9시~오후 10시 활동지원). 영은은 서울 혜화역 인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2016년부터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장애 관련 집회·기자회견에 참석하거나 장애 인식개선 강의에 나서는 등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일을 한다. 퇴근 뒤엔 같은 빌딩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야학 수업을 듣는다. 영은은 2015년 3월 13일 꽃동네를 나와 활동지원을 받으며 이러한 자립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출근길 경북궁역에서 만난 노들야학 교사들이 영은의 탈시설 10주년 소식을 전해 듣고 환한 웃음으로 말했다. "와 축하축하!" "떡 돌려야지!" "언니 다음 달부터 노들 안 나오는 거 아냐?" 한바탕 웃음으로 답한 영은은 진소리를 켜고 자음과 모음을 한 자 한 자 눌러 썼다. 영은의 휴대전화에서 "기뻐요"라는 짧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 경북궁역 승강장에서 만난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들이 영은씨의 탈시설 10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 복건우

영은이 도착한 서울정부청사 앞에선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 참사 해결을 위한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근 장애인 학대 피해가 드러난 장애인 거주시설 울산 태연재활원을 규탄하는 자리였다. 사회자를 맡은 한 활동가가 시설에서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장애인들의 삶을 이야기했다. 꽃동네에 살던 시절 영은의 삶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장애인의 개인 생활을 위한 공간이 손톱만큼도 없었습니다." (결의대회 발언 중)

1995년 다섯 살이던 영은을 포대기에 싼 채로 꽃동네 사무실에 두고 간 아버지를 영은은 지금도 기억한다. 꽃동네에서의 삶은 "무기력하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영은은 식사도, 외출도, 취침도, 기상도 "시간이 짜여 있는 대로 생활"해야 했다. "마치 군대처럼요.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시설에서의 20년은 '군대식 통제'를 떠올리게 했다.

"자리가 없어서 침대 밑에 들어가 잠을 자야 할 정도로 비좁았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지쳐 복도에 앉아있곤 했습니다." (결의대회 발언 중)

결의대회에서 나온 발언의 맥락을 영은이 진소리로 보탰다. "(개인 생활이) 일제히 불가능해요. 아예 단체 생활만 가능한 거죠." 꽃동네에선 외출·외박도 허락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시설에 오시면 '최영은님 부모님 면회 및 외박하고 오심'이라고 적고 나가야 했어요." 영은은 12년간 꽃동네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가 이후 꽃동네에 있는 성인시설로 보내졌다. "제 선택권을 무시하고 성인시설로 보냈다는 게 진짜 화가 나요." 영은이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시설 생활을 마무리한 건 2015년 스물다섯 살이었다. "더 이상 시설 생활이 하기 싫어서 탈시설을 결심하고 시설에서 나왔어요." 꽃동네를 나온 영은은 서울 종로에 있는 자립생활주택 평원재를 거쳐 창동역 인근 주공아파트로 이사했다. 꽃동네 희망의집에서 함께 탈시설한 중증 장애인 상우와 결혼한 후 자립가정을 꾸려 6년째 같이 살고 있다.

탈시설이 곧 온전한 일상을 보장해 주진 않았다. 시설을 나와 처음 접한 지역사회의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려면 정부의 균형 있는 지원이 동반돼야 했다. 영은은 탈시설 직후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이 5~6시간뿐이었다. "내가 시설에서 나와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활동지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센터에서 들었다. 지금은 450시간(보건복지부)에 180시간(서울시)을 더한 월 630시간을 지원받으며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식사하고 싶은 시간에 밥 먹고, 외출할 때 허락받지 않고 자유롭게 나가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을 때 초대하고, 돈도 직접 관리하고 적금도 하고, 모든 일을 제가 다 책임지고 생활하는 것이 좋죠. 무엇보다 제가 시설에서 나간다고 선택했다는 게 제일 좋아요."

▲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 참사 해결을 위한 결의대회’에 참석한 영은씨의 옷매무새를 정지원 활동지원사가 정돈하고 있다. ⓒ 복건우

시설 밖 자유로움은 시설에선 가질 수 없던 '취향'을 확인하게 했다. 영은은 빨간색과 연분홍색을 좋아했고 남편과 삼겹살을 즐겨 먹었다. 집 앞 카페에서 마시는 라테는 바닐라라테든 카라멜라테든 무엇이든 좋았다. 때로는 진소리를 사용하는 대신 "네"라는 짧은 육성이나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영은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 오늘 입은 옷이 알록달록하네요.

"추워서 껴입다 보니까요. 빨간색, 연분홍색을 좋아해요."

- 휠체어도 그래서 빨간색이에요?

"(끄덕끄덕)"

- 이 휠체어는 언제부터 탔어요?

"5년인가? 시설에서 나와서 국산 휠체어를 타다가 이 외제 휠체어를 구입했죠. 탈시설하자마자 국산을 샀거든요."

- 외제가 더 좋아요?

"(끄덕끄덕) 바퀴가 더 크고 잘 나가서 좋아요. 근데 비싸요."

지난 5년 동안 영은이 휠체어를 타고 다닌 거리는 2961㎞였다. 영은의 탈시설 10년을 어림잡으면 6000㎞ 가까운 거리다. 삶의 반경이 제한된 시설을 나와 영은이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마음(탈시설 1년차 평원재에 살던 시절)을 장애인권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구술집으로 기록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영은에게 제안한 증언이 책 <나, 함께 산다>(오월의봄, 2018)로 묶여 나왔다.

영은의 구술 인터뷰는 '나는 최영은,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인간일 뿐입니다'로 시작했다.

"꽃동네에서 괜히 나왔다 싶은 마음 안 들었냐고요? 후회는 안 했어요. 시간이 약이니까. 참았어요. (…) 시설에서 나와 산 지 그래도 벌써 1년이 지났어요. 그 1년의 느낌이라면… 솔직히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요. 불과 1년 사이 생활이 확 바뀐 거죠. 탈시설을 결심한 순간부터,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삶을 살고 있는 거니까, 스스로도 자꾸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제일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음… 수동(휠체어) 타다가 전동(휠체어) 신청한 거요." (책 <나, 함께 산다> 중)

영은에게 구술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물었다. "망설이지 않았다"라고 한 단어씩 끊어 말한 영은이 진소리로 2분가량 설명을 보탰다.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지역사회로 나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고민 없이 했었죠." 시간이 약이라는 영은의 시간이 휠체어 주행거리처럼 숫자를 더해 10년을 꽉 채웠다. 결의대회를 마친 영은은 '광화문 로얄빌딩'을 휴대전화로 검색한 뒤 휠체어를 다시 힘차게 굴렸다.

결혼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함께 산다'

▲ 서울 광화문 로얄빌딩 지하상가 한 일식당에서 영은씨와 정지원 활동지원사가 식사하고 있다. 영은씨는 음성지원 앱 '진소리'를 사용해 휴대전화로 글자를 입력하고 있다. ⓒ 복건우

"영은이가 쏘는 거야?"

광화문 광장을 걷던 지원쌤이 웃으며 영은에게 말했다. 퇴근 후 점심을 먹기 위해 평소 영은이 자주 가던 로얄빌딩 지하 식당가를 찾았다. 휠체어를 멈춰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은을 지원쌤이 부축해 한 일식당으로 들어갔다. 광화문 직장인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낯설어했지만 두 사람에겐 그것이 익숙한 일상이었다. 영은은 연어덮밥 한 개와 장어덮밥 두 개를 자신의 카드로 한 번에 결제했다.

평소와 달리 외근이 있어 선택한 외식이었지만 영은의 일정엔 사실 '루틴'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닝커피를 마시고 오전 11시쯤 아점(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는다. 씻고 옷을 입고 센터로 출근한 뒤 일을 마치고 나선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듣는다. 집으로 돌아와선 지원쌤과 남편과 남편의 활동지원사까지 넷이서 저녁을 먹고 JTBC '사건반장'을 챙겨 본다. 영은이 남은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지원쌤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영은이 잠 늦게 자요. 새벽 1~2시쯤. 12시간을 자본 적이 거의 한 번도 없어. 저녁 9시쯤 이부자리를 깔아주면 남편이랑 그날 하루 스케줄을 얘기하고, 사회 이슈도 얘기하고, 장애인 관련 유튜브도 보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 얘기도 하고. 영은이 맞지?"

영은이 "네"라고 육성으로 답한 뒤 진소리로 설명을 보탰다.

"시설에선 밤 9시에 취침해야 해서 정말로 힘들었거든요."

▲ 영은씨의 휴대전화 잠금화면은 흰 드레스를 입은 영은씨와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편 이상우씨의 결혼사진이다. ⓒ 복건우

▲ 탈시설한 지 10년, 결혼한 지 6년을 맞은 영은씨와 상우씨의 사진이 담긴 퍼즐이 부부의 집 안방 벽면에 걸려 있다. ⓒ 복건우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5호선 광화문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다시 4호선으로 환승해 창동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퇴근길 내내 영은의 시선은 휴대전화에 고정돼 있었다. 잠금화면이 켜질 때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영은과 검은 턱시도를 입은 상우의 결혼사진이 나타났다. 2015년 꽃동네를 함께 나와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월 60만 원씩 적금을 넣어 2018년 창동역 인근 주공2단지 전세 임대아파트를 얻었다. 4년 뒤엔 계약 기간이 만료돼 건너편 주공4단지로 이사했다.

영은이 휴대전화에 메모해 둔 글에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오빠"라고 부르는 상우를 향한 애정이 녹아 있었다. '오빠랑 같이 탈시설하고 나서 한참 뒤에 오빠가 톡으로 고백하더라고요. 시설에서 널 짝사랑했었다고.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했어요. (…) 저희 부부는 동주민센터에 방문해서 혼인신고를 한 케이스예요.'

창동역에서 휠체어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영은의 집에선 두 사람의 기념일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안방 벽면엔 탈시설 10년과 결혼 6주년을 맞아 걸어 놓은 퍼즐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분홍색 옷을 입은 영은이 휠체어에 앉은 상우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두 사람의 다정스러운 웨딩 사진과 여행 사진도 안방 액자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걸려 있었다.

거실엔 영은이 증언으로 참여한 책 <나, 함께 산다>와 두 사람이 신혼여행으로 찾은 제주 삼달다방의 이야기를 담은 책 <사람을 잇다 사람이 있다 삼달다방>(미니멈, 2023)이 함께 꽂혀 있었다.

영은·상우 부부는 2019년 결혼식을 앞두고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전하며 '탈시설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나갔다. 두 사람은 결혼식 본식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 최영은·이상우가 시설이 아닌 바로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너무나도 많지만..." 새 정부에 하고 싶은 말

▲ 탈시설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부부가 되기로 결심한 상우씨와 영은씨. 영은씨는 지난 2019년 5월의 신부가 됐다. 서로 누가 더 좋아하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눈빛교환을 하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이희훈

▲ 지난 2019년 5월 결혼식에서 탈시설 중증장애인 이상우, 최영은씨가 함께 신랑신부 입장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영은의 일상은 '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 운동과도 맞닿아 있었다. 영은은 지난 2021년 탈시설을 보장·지원하는 입법을 촉구하는 편지를 작성해 국회로 보냈다. 같은 해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장애인 권리를 알리는 '가짜 정당'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영은에게 탈시설 증언을 제안했던 김정하 활동가는 영은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말했다.

"인권교육 강사로 꽃동네에 갔을 때 영은을 처음 만났어요. 그때 이슈가 뭐였나면, 영은을 비롯한 시설 장애인분들이 휴대전화가 없으신 거예요. 그래서 다음 교육 때 10명 넘게 특장차(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한 차)를 나눠 타고 시내로 가서 휴대전화를 만들었어요. 다들 손이나 발에 맞는 휴대전화를 고르는 동안 영은과 따로 인터뷰를 했어요. 어떻게 시설에 들어가게 됐는지, 시설 생활은 어땠는지, 왜 시설에서 나가고 싶은지, 이런 애기를 나눴죠.

영은은 언어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볼펜을 들고 느린 속도로 글씨를 꾹꾹 눌러썼어요.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미사 드리는 게 싫다고, 그 한마디를 쓰는 데 되게 오래 걸렸어요. 그때 영은이 바라는 게 자립이라는 걸 알았어요. 워낙 꼼꼼하고 야무진 성격이라 두 사람 결혼식도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탈시설의 산증인이죠."

영은은 장애인의 권리를 다루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윤석열 탄핵 전부터(3월 27일) 영은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쇄하는 탈시설지원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다 나와 있는데도 (정치인들이) 무시하고 있어요." 대선 거소투표(5월 27일)를 마친 뒤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는 '혐오 정치'를 비판했다.

"TV 토론을 봤는데 이준석 후보가 여성혐오 발언을 했더라고요. 그걸 할 말이라고 하나? 전장연 지하철 행동에 대한 갈라치기도 했었고요. 저는 지하철 타기 투쟁을 하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후배 장애인들의 탈시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에게 영은이 바라는 점도 분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대선 후보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탈시설을 "일률적으로 조기에 강제하는 것은 섣부르다"라고 말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해당 발언이 현재 시행 중인 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의 취지에 반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영은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단 하나, 탈시설 초반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떠올리며 자립생활에 필요한 정부 지원을 강화해 달라고 말했다. "탈시설 지원을 제대로 제공했으면 좋겠고요.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이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엔 '탈시설' 용어는 없지만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개선', '지원주택 공급 확대' 등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이 담겼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안정된 집"(상우)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도 부부는 함께 전했다. 영은은 지금의 집이 시설과 달리 "편안하고 남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큰 평수의 임대아파트로 가는 게 소원"이라며 영은은 못다 한 말을 진소리로 써 보탰다.

"죽을 때까지. 오빠랑 한 침대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웃음)."

▲ 지난 2019년 결혼한 영은씨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있는 결혼반지. 서울 종로구 예물당에서 맞춘 동반지다. ⓒ 복건우

▲ 탈시설한 지 10년, 결혼한 지 6년을 맞은 영은씨와 상우씨가 집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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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은#탈시설#장애인#꽃동네#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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