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 5월 결혼식에서 탈시설 중증장애인 이상우, 최영은씨가 함께 신랑신부 입장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영은의 일상은 '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 운동과도 맞닿아 있었다. 영은은 지난 2021년 탈시설을 보장·지원하는 입법을 촉구하는 편지를 작성해 국회로 보냈다. 같은 해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장애인 권리를 알리는 '가짜 정당'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영은에게 탈시설 증언을 제안했던 김정하 활동가는 영은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말했다.
"인권교육 강사로 꽃동네에 갔을 때 영은을 처음 만났어요. 그때 이슈가 뭐였나면, 영은을 비롯한 시설 장애인분들이 휴대전화가 없으신 거예요. 그래서 다음 교육 때 10명 넘게 특장차(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한 차)를 나눠 타고 시내로 가서 휴대전화를 만들었어요. 다들 손이나 발에 맞는 휴대전화를 고르는 동안 영은과 따로 인터뷰를 했어요. 어떻게 시설에 들어가게 됐는지, 시설 생활은 어땠는지, 왜 시설에서 나가고 싶은지, 이런 애기를 나눴죠.
영은은 언어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볼펜을 들고 느린 속도로 글씨를 꾹꾹 눌러썼어요.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미사 드리는 게 싫다고, 그 한마디를 쓰는 데 되게 오래 걸렸어요. 그때 영은이 바라는 게 자립이라는 걸 알았어요. 워낙 꼼꼼하고 야무진 성격이라 두 사람 결혼식도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탈시설의 산증인이죠."
영은은 장애인의 권리를 다루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윤석열 탄핵 전부터(3월 27일) 영은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쇄하는 탈시설지원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다 나와 있는데도 (정치인들이) 무시하고 있어요." 대선 거소투표(5월 27일)를 마친 뒤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는 '혐오 정치'를 비판했다.
"TV 토론을 봤는데 이준석 후보가 여성혐오 발언을 했더라고요. 그걸 할 말이라고 하나? 전장연 지하철 행동에 대한 갈라치기도 했었고요. 저는 지하철 타기 투쟁을 하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후배 장애인들의 탈시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에게 영은이 바라는 점도 분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대선 후보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탈시설을 "일률적으로 조기에 강제하는 것은 섣부르다"라고 말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해당 발언이 현재 시행 중인 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의 취지에 반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영은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단 하나, 탈시설 초반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떠올리며 자립생활에 필요한 정부 지원을 강화해 달라고 말했다. "탈시설 지원을 제대로 제공했으면 좋겠고요.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이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엔 '탈시설' 용어는 없지만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개선', '지원주택 공급 확대' 등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이 담겼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안정된 집"(상우)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도 부부는 함께 전했다. 영은은 지금의 집이 시설과 달리 "편안하고 남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큰 평수의 임대아파트로 가는 게 소원"이라며 영은은 못다 한 말을 진소리로 써 보탰다.
"죽을 때까지. 오빠랑 한 침대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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