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 추모의 밤이 16일 오후 전국택배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 추모의 밤이 16일 오후 전국택배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입만 열면 미제국주의, 미국 타도였다.”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 추모의 밤이 한국진보연대와 자주연합(준) 주최로 16일 오후 6시 서울 서대문 소재 전국택배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이 생전에 “입만 열면 미제국주의, 미국 타도였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이 생전에 “입만 열면 미제국주의, 미국 타도였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날 첫 번째 추도사에 나선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에 대해 “어느 누구든지 간에 분단 시대를 살아오면서 고통과 시련이 없었던 사람은 사실 없다. 물론 그 색깔과 강도가 다소 조금 차이는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이 시대에 90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 일제 치하, 분단 시대,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감옥도 다 갔다 오고 그랬다”면서 고인의 평소의 언변에 대해 이같이 상기했다.

식민지 시대와 분단 시대를 겪은 고인이 필연적으로 미국 반대에 앞장섰다는 의미이다.

권 대표는 “저는 이천재 선생님을 가까이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내 나름대로 참 많이 잘 모셨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까 말이 통하는 게 상당히 많았다”면서 “말이 통한다는 건 뭘 말하느냐, 자기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여기 후배가 말해도 옳은 것은 맞다고 하는 거다. 이게 바로 소통되어진다는 것이고 그게 바로 진정한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다”면서, 고인이 긍정적 의미에서 자존심이 강했음을 상기시켰다

한충목 상임공동대표는 “날카롭지만 올곧게 살았던 그 삶을 후배로서 따라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한충목 상임공동대표는 “날카롭지만 올곧게 살았던 그 삶을 후배로서 따라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두 번째 추도사에서 “제가 집행위원장 하면서 이천재 선생님을 의장님으로 모시고 활동했을 때 이천재 의장님이 저를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불러 짧게는 한 3시간 길게는 한 6시간 동안 말씀을 하셨다”면서 “전국연합과 범민련이 갈등했을 때, 또 8.15통일대회가 두 개 대회 세 개 대회로 예상되고 있을 때, 미군철수민족공동위원회를 만들자 말자 하며 저희들 내부에서 논쟁이 있을 때, 그리고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완전 폐지하는 게 좋을지 7조라도 개정해야 할지 등 그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저를 불렀다”고 상기했다.

그러면서 한 상임공동대표는 “내가 과연 지금 40대 50대 활동가들을 불러서 4시간, 5시간씩 그 후배들과 그렇게 깊은 의논을 하고 논쟁도 하고 그렇게 앞으로 할 수 있을까, 내가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불러서 진보당의 사무총장을 부르고 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을 불러서 역사의 중요한 계기마다 그렇게 진지한 논의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저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고 낮추면서 “그건 아마 이천재 의장님이 갖고 있었던 내공일 것 같다”고 기렸다.

한 상임공동대표는 “이천재 의장님은 말씀하시기를 참 좋아했다”면서 “날카롭지만 올곧게 살았던 그 삶을 후배로서 따라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표했다.

서정길 자주연합(준) 준비위원장은 고인이 생전에  “우리는 미국놈을 몰아내야 해요. 또 그다음에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인 통일을 좀 해야 돼요”라고 말했음을 상기시켰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서정길 자주연합(준) 준비위원장은 고인이 생전에  “우리는 미국놈을 몰아내야 해요. 또 그다음에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인 통일을 좀 해야 돼요”라고 말했음을 상기시켰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세 번째 추도사에 나선 서정길 자주연합(준) 준비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제가 이천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을 맨 먼저 알려주게 된 장본인이다. 제가 그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이 9일 날 저녁 늦은 시간인데, 상주로부터 전화가 와서 알게 됐다”고는 “저는 이천재 선생님과 1980년대부터 가까이 생활을 했다. 저는 농민운동을 하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이천재 선생님과 그 주위 분들과 같이 애썼다”며 고인과 특수관계임을 밝혔다.

서 준비위원장은 “이천재 선생님은 저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미국놈을 몰아내야 해요. 또 그다음에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인 통일을 좀 해야 돼요. 이대로 가면 안 돼요”하고는 “그런데 그것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멀리하셨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명희 전 민중민주당 대표는 “코리아연대에서 민중민주당으로 창당할 때 이천재 선생님은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고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한명희 전 민중민주당 대표는 “코리아연대에서 민중민주당으로 창당할 때 이천재 선생님은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고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고인은 생전에 많은 단체에 몸을 담았는데 94세에 이르기까지 마지막으로 가입한 조직이 민중민주당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추도사에 나선 한명희 전 민중민주당 대표는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당시 유일하게 방북 투쟁을 벌였던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가 이명박 권력에게 탄압받았을 때 기꺼이 고문을 맡아 투쟁에 나섰던 이천재 선생님을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기억한다”고 상기하면서 “코리아연대에서 민중민주당으로 창당할 때 이천재 선생님은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 각종 국제포럼과 비상시국강연, 노숙농성투쟁에 함께하시며 언제나 청년이셨던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기렸다.

그러면서 한 전 대표는 “대상이 분명하고 목적이 뚜렷한 철학, 분명한 투쟁을 통해서만이 소수의 양심이 다수의 정의가 될 수 있고, 분단 조국이 통일로 완성될 수 있다”, “개량주의의 그 어떤 합리도 그것이 독립된 인격으로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식인의 그럴싸한 낭만에 불과하다”, “진보주의자라면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뿐 아니라 변혁에 대한 준비도 함께해야 한다” 등 고인이 평소에 남긴 금언들을 차례로 환기시켰다.

‘통일 도깨비’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는 김태철 시인.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통일 도깨비’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는 김태철 시인.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이어, 김태철 시인의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선생 추모시’라는 부제가 붙은 ‘통일 도깨비’ 추모시가 낭독됐다.

김 시인은 “빚을 지셨습니까 /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 다시 못 볼 사람아 / 갚아도 갚아도 갚은 것을 잊어버린 도깨비처럼 / 통일 산천에 무슨 큰 빚 지셨다고 / 한 평생 그토록 모질게 / 사셨습니까”로 시작하는 장시를 낭독하며 고인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유족인사에 나선 고인의 친동생인 이규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유족인사에 나선 고인의 친동생인 이규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고인의 친동생인 이규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이 유족인사에 나섰다.

이규재 전 명예의장은 “저는 오늘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히려 하지 못하겠다”고 운을 떼고는 “분명한 건 여섯 살 차이나는 형님인데, 큰 차이는 아닌데, 어려서부터 형님은 내게 큰 스승이었다. 이렇게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지도를 받았다. 이제 그 길이 막혔다. 형님이 제게 너무 많은 영향을 주었다”며 큰 아쉬움과 함께 고마움을 전했다.

이 전 명예의장은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처음에는 먹먹했는데 오늘 추모식을 하니 정말 돌아가셨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고는 “두고두고 우리 형님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며 끈끈한 형제애를 밝혔다.

고인의 약력 보고를 하고 있는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고인의 약력 보고를 하고 있는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영상. 고인과 함께 지난 4월 작고한 마이크를 든 권오헌 전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보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영상. 고인과 함께 지난 4월 작고한 마이크를 든 권오헌 전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보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열창하고 있는  노래극단 희망새.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열창하고 있는  노래극단 희망새.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의 밤 사이사이에는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이 약력 보고를 해 고인의 삶을 되새겼으며, 추모영상을 통해서는 고인의 투철한 활동에 장내가 숙연해졌으며, 또한 노래극단 희망새가 추모노래로 ‘심장에 남는 사람’을 열창해 추모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기도 했다. 행사 마지막에는 참가자들의 합동 헌화가 진행되었다.

추모의 밤을 사회한 원진욱 자주연합(준) 사무처장은 “선생님은 늘 입에 달고 다니셨던 말씀이 통일단결이고 일심단결이고 단결이었던 것 같다”며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의 밤을 사회한 원진욱 자주연합(준) 사무처장은 “선생님은 늘 입에 달고 다니셨던 말씀이 통일단결이고 일심단결이고 단결이었던 것 같다”며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의 밤을 사회한 원진욱 자주연합(준) 사무처장은 고인의 삶과 활동을 회고하면서 생전에 고인에게 “선생님, 왜 이렇게 열심히 현장에 다니시고 또 많은 단체에 가입을 하시느냐고 여쭤봤는데 자주통일운동, 진보운동이 이렇게 분열되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하고 고민하다가 직위는 고문이지만 내가 단체에 속해 현장에 나가서 책상 하나라도 옮기고 머릿수라도 하나 채워주면 그게 통일단결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지 않겠냐며 이렇게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난다”면서 “선생님은 늘 입에 달고 다니셨던 말씀이 통일단결이고 일심단결이고 단결이었던 것 같다”며 기렸다.

이날 추모의 밤 행사에는 발언자들 외에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의 원로 격인 임방규, 김영승, 노수희, 진관 스님, 김승호 선생 등이 7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평생을 민족자주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명동 할아버지’ 이천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은 지난 9일 94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추모의 밤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의 합동 헌화가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추모의 밤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의 합동 헌화가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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