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제는 폐지해야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유권자와 정치를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 점에서 정당공천은 정당의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정당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정당공천이 유지되는 한 중앙정치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방정치가 중앙에 예속되고 지역구도가 강화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적, 물적 자원이 열악한 소수정당에게는 정당공천이 의회 진입에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정당설립요건과 봉쇄조항, 완화 또는 폐지가 바람직
소수정당의 창당과 원내 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당설립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중앙당이 수도에 소재하여야 하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 또 시도당의 당원수는 1천명 이상이어야 한다. 소수정당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정당설립요건을 완화해 다양한 이념과 노선을 표방하는 풀뿌리 단위의 지역정당(local party) 창당이 용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봉쇄조항(electoral threshold)도 마찬가지다. 비례대표 의석배분에 요구되는 봉쇄조항은 현재 정당득표율 5% 또는 지역구의석 3석으로 소수정당에게는 높은 장벽이다. 광역의회선거에서는 봉쇄조항을 완화하고, 기초의회선거에서는 폐지가 바람직하다. 물론, 단순히 소수정당의 창당을 용이하게 하고 의석 획득에 필요한 최소요건을 낮추거나 폐지한다고 해서 당장 의석 확보로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수당 창당을 활성화하고 이들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권자의 지지를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소수당의 입장에서는 당세 확장을 위해 당원과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쏟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비례대표 의석 확대하고 연동형 도입해야
거대정당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비례대표제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지역구의석과 비례대표의석을 독립적으로 배분하는 병립형 방식에서는 거대정당이 비례대표를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거대 양당은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의 비례대표 479석 중 476석을 가져갔다. 병립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광역과 기초의회의 비례의석 규모도 지역구의석의 10%에 불과해 비례성 제고의 도입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규모보다도 배분방식을 연동형으로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연동형을 선호하는 것은 연동형만큼 비례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에서는 지역구의석을 많이 가져가는 정당은 그만큼 비례대표의석이 줄어들고, 반대로 지역구의석이 적은 정당에는 비례의석이 더 배분된다. 비례대표가 지역구선거의 불비례를 보정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연동형의 비례의석 배분은 기본적으로 간단하다. 총의석(지역+비례)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 배분한 후 지역구 당선인을 먼저 채우고 잔여의석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정당득표율에 따른 배분의석보다 지역구의석이 많을 경우 총의석을 뛰어넘는 이른바 ‘초과의석(overhang seat)’이 발생할 수 있다. 초과의석이 발생한 정당의 경우, 지역구의석이 해당 정당에 집중됐기 때문에 다른 정당에는 그만큼 비례의석이 많아지게 된다. 따라서 초과의석을 처리하는 방법은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은 정당의 비례의석을 득표비례로 줄이면 된다. 초과의석이 발생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연동형이기 때문에 병립형보다 비례성이 높다.
국고보조금 배분방식 바꿔야
정당의 정치활동과 조직 운영에 소요되는 정치자금은 당비, 보조금, 전년도이월, 기탁금, 후원회기부금, 차입금, 기타수입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정당의 주요 수입원은 당비와 보조금이라 할 수 있다. 거대정당은 국고보조금의 비중이 높은 반면, 군소정당은 당비의 비중이 높다. 거대 양당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보조금의 비율도 다른 수입원에 비해 가장 높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보조금을 합산하면 전체 보조금의 90%에 육박한다. 반면, 소수정당의 경우 수입의 대부분을 당비에 의존한다. 소수정당의 수입원 중 당비의 비중은 정의당을 제외하면 모두 현저히 높다. 이는 보조금의 대부분이 거대 양당에 돌아가는 구조에서 소수정당의 당비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2024년 선관위가 발간한 2023년도 정당별 수입내역을 보면 거대 양당의 당비는 전체 당비 합산액의 75.9%인 515억 8천6백만원이다. 그에 비해 소수정당은 24.1%(164억 7백만원)으로 거대 양당의 3분의 1 수준이다.
문제는 보조금 배분방식에 있다. 현행 방식은 20석 이상 의석을 획득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50%를 균등 배분한 후, 5석 이상 정당에 5%씩 배분한다. 5석 미만 정당 중에는 최근 총선에서 2% 이상 득표한 정당, 최근 총선에서 의석을 가진 정당으로서 지방선거에서 0.5%이상 득표한 정당, 최근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정당으로서 지방선거에서 2%이상 득표한 정당에 2%씩 배분된다. 마지막으로 잔여분 중 50%는 국회의석을 가진 정당에 의석률에 따라 배분하고, 나머지 절반은 총선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거대정당에만 유리한 배분방식이다.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거대정당에만 전체 보조금의 절반이 돌아가고, 득표수보다 의석수 기준을 우선하여 적용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득표율이 낮은 소수정당 대부분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된다. 보조금은 재정여건이 열악한 소수정당에게는 당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보조금 배분방식을 소수정당에 일정 비율을 선지급하고, 추가로 득표율에 비례해 배분하는 매칭펀드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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