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율 목사가 합류한 주민대책위원회는 2019년 3월, 홍천군에 '풍천리 양수발전소 건립 반대' 민원을 접수했다. 당시 홍천군수(허필옹)는 3월 21일 "풍천리 주민들이 원치 않는다면 양수발전소 유치를 하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했고, 홍천군의회는 3월 28일 그 내용을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홍천군은 약속을 번복했다. 군수가 주민들에게 했던 약속은 뒤로 한 채 4월 17일, 주민들의 알권리를 주장하며 주민 설명회를 강행한 것이다. 양수발전소 찬성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고, 박성율 목사가 덧붙였다.
그러나 군의 뜻과는 반대로 주민들은 설명회를 통해 양수발전소 건립이 추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송전탑이 세워지고 고압선이 홍천리 일대를 지난다는 몰랐던 사실도 드러났다. 게다가 양수발전소 설립을 찬성하며 주민 설명회를 유도했던, 'A면 이장 협의회' 이름으로 전달된 주민 설명회 건의서도 이장 한사람의 뜻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민 보상 내용 또한 불충분했다. 피해지역에 가구마다 7500만원의 보상을 준다는 소문에 대해 한수원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토지 강제수용으로 쫓겨나는 주민들에게 시세보다 3~4배 보상을 더 해준다던 것도 공시지가의 감정평가에 기준 하는 보상임도 확인했다. 쉽게 말해 당연한 것을 혜택인 양 포장한 거였다.
실상을 확인한 주민들은 분개했다. 결국 주민들은 2019년 4월 19일 밤샘 농성 끝에 홍천군수로부터 양수발전소 추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재차 받아 냈다. 그러나 두 번째 약속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군수는 끝내 홍천 풍천리양수발전소 사업을 유치했다. 홍천리 주민들의 투쟁은 본격화했다.
민주적인 절차를 외면하는 행정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안에 뛰어드는 만장일치 토론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이며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박성율 목사는 이번 투쟁에서도 주민들이 주도하는 토론을 통해 주민대책위원회 내부 회의를 이끌었다.
"힘을 가진 소수 세력의 다수결로 중대 사안이 결정되는 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모든 활동에서 전적으로 구성원 간에 만장일치를 추구해요.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한 번씩 발언하는 게 기본 규칙인데요. 반대면 반대, 찬성이면 찬성이라고 자기 의견과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예외는 없어요. 회의에서 발언하려면 각자가 공부해야 해요. 공부하다 보면 이 문제에 대해 알게 되고, 주인의식이 생겨요. 자기가 싸우는 이유를 스스로 알게 되니까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겁니다."
처음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던 주민들은 토론이 거듭될수록 자기 의견을 내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토론이 안 끝나서 2박 3일 동안 먹고 자고 한 적도 있어요. 어떤 사안이든지 만장일치를 해야 끝나니까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는 거죠. 회의 중간에 잠깐 쉬면서 담배를 태우다가도 또 서로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면 '죽어도 아니다'라고 했던 사람도 생각이 바뀌어서 들어오기도 하고요."
이러한 주민들의 열정은 작은 성과로 이어졌다. 2024년 7월 1일, 홍천 풍천리 양수발전소 건립에 대한 토론회를 이끈 것이다. 이 자리엔 한수원(사업자), 홍천군(지방정부), 시민단체 3자가 참여했다. 주민대책위원회는 다시금 '끝장 토론회'를 제안했다. 끝장 토론회는 1차 토론회부터 2주 후인 7월 15일에 열렸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한수원 측 홍천양수건설소장은 "홍천군이 양수발전소 개발을 포기하면 한수원과 산자원은 양수발전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마침내 한수원의 양수발전소 계획을 백지화시킬 수 있는 실낱같은 빛이 보이는 듯했다.
이에 주민들은 홍천군수에게 '만장일치 토론회'를 제안했다. 이제껏 주민들이 해왔듯 가장 민주적인 방식인 만장일치를 통해 홍천군과 주민 모두에게 이로운 결정을 내리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홍천군수는 '찬반 토론회'를 주장하며 주민들의 제안에 응답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양수발전소 개발을 포기하길 요청하며 군수의 답이 올 때까지 군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들의 기다림은 나흘 동안 이어졌다. 군청에서 군수의 응답을 기다렸을 뿐인 60~80대 주민 7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퇴거 불응'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 200만~300만 원씩 총 1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 법 앞에서 약자는 영원한 약자더라고요. 판결할 때 피해자의 의견이나 입장은 참조 사항일 뿐이고요... 힘 있는 자들은 편법을 일삼습니다.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법을 이용하는 거죠. 법이 피해자를 공격하는 무기가 돼버리는 겁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우리로서 양수발전소 반대는 투쟁이라기보다 몸부림이에요. 생계를 지키려는 몸부림… (이창후)"
풍천리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을 '몸부림'이라고 한 이창후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양수발전소 건설이 본격화 되어 잣나무 숲이 사라지면, 잣 수확으로 생계를 꾸려온 풍천리 주민들 70~80%의 생존권이 흔들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양수발전소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제일 쉽게 말하는 게 지역경제 활성화예요. 그런데 풍천리는 이미 국내 최대 잣 생산지로 유명하거든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잣을 홍보하고 상품화시키고 잣나무 숲에 트래킹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시키는 등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왜 굳이 100년 된 숲을 없애고 주민들을 내쫓고 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박성율 목사는 홍천리 양수발전소 설립이 경제적 측면으로 봐도 '비상식적'이라고 일갈했다. 양수발전소 건설에 1조 원 이상이 투입되지만 현재 운영되는 양수발전소들도 적자 행진이다. 양수발전소를 굳이 새로 건립할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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